오문성 회장(한국조세정책학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턱없이 초라한 수준이다. 대형 제약사들이 R&D(연구개발) 투자에 1천억 원을 투입하며 자화자찬 하는 동안 글로벌 빅파마들은 1조원 이상을 쏟아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Pharmaceutical Executive가 발표한 지난해 톱50 글로벌 제약기업에 우리나라 토종 제약사는 찾아 볼 수 없다.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가 최근 발표한 APAC(아시아 태평양 지역) 제약사 순위에서도 톱10 중 9곳은 일본이 차지하고 한국은 전무했다.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정부는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지는 그간 법학, 회계학, 행정학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조세정책 방향을 제시해 온 한국조세정책학회 오문성 회장을 만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당면한 조세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지원과제에 대한 이슈를 짚어 봤다.

 

≫ 조세정책학회, 후세대 위한 ‘알림의 통로’

이날 기자와 만난 오문성 회장은 학회 역할에 대한 중요성부터 먼저 강조했다. 재정지출에서 조세정책의 비중이 날로 더해가는 만큼 한국조세정책학회가 후세대를 위한 알림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오 회장은 “학회는 현재 조세정책 측면에서 시의성 있는 주제와 전통적인 주제 중 합리적인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종합학문으로서 조세정책의 이슈를 깊고 넓게 연구함으로써, 학회가 한국의 조세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조세정책의 좌표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IT 한계 드러내…제약산업 조세지원 ‘당위성’ 분명

오 회장은 조세는 정부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일뿐 아니라 경제 활성화와 소득 불평등 해소 등 다양한 정책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고려한다면 IT산업에 한계를 느낀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통해 미래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조세 지원은 그 당위성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 회장은 제약바이오 분야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만큼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의 하이리스크가 존재하지만 미래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오 회장은 무턱대고 제약산업에 대해 조세지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국가 경쟁력을 감안해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타업종과의 형평성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면서 “현재 재정 지출이 많은 정부가 세수가 줄어드는 세제 확대지원 카드 사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 해외 선진국, 기술수출 세금 감면 기업 규모별 차등 없다

세제 개편에 대한 업계의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크게 3가지다.

우선 혁신형 제약기업의 기술대여 거래에 대한 조세감면 도입이다. 제약 산업의 기술거래 형태는 대학, 연구기관, 바이오벤처 등으로부터 물질도입 기술을 제약사가 이전받고 이를 추가 연구 개발해 다시 글로벌 제약사에 대여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여기서 현행 기술대여 거래에 대해 세금을 25% 감면하는 제도는 중소기업에만 적용된다.

문제는 기술거래 총 계약의 대부분(90%)은 대기업이라는 점이다. 제약산업육성 지원 특별법에 따른 ‘혁신형 제약기업’을 포함해 실제 혜택이 대형 제약사에게도 돌아가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배경이다.

오 회장은 “중소제약사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다만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대형 제약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며 “해외 사례에서도 영국, 스위스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기술 이전 소득과 대여이익에 대해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대부분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별도로 차등 적용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 ‘세액공제초과액 환급제’ 도입엔 공감…합리적 방안 모색해야

업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또 있다. R&D 비용 세액공제 이월기간 확대와 초과공제액 환급제도 도입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R&D 비용 세액공제에 대한 기간을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낸 세금이 없더라도 공제받지 못한 세액 공제액을 환급해 주는 ‘세액공제 초과액 환급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오 회장은 “현재는 연구인력에 대한 개발비에만 10년이 적용되고 있는데 여기에 신성장동력기술을 추가해 10년으로 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는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포함된 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바이오 기업들이 이월기간 확대에도 불구하고 사업초기 결손금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세액공제 초과액 환급제도를 도입하자는 부분은 공감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법인세제 안에서 시행된 적이 없는 파격적인 제도인 만큼 충분한 준비 기간과 합리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제약산업 특성 인정해야…현행 법리 검토 ‘시급’

의약품품질관리(GMP) 시설투자 세액공제에 대한 일몰기한에 대한 업계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오 회장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의 현행 법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오문성 회장은 “조특법은 과세의 공평을 기하고 조세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목적이다”며 “업계가 처한 상황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를 감안해 상황에 맞춰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특법상 일몰기한이 10년 이상의 장기화나 영구화 되어 있는 법조문은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일몰 시점이 되기 전, 정부가 일몰기한의 연장을 미리 예고하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른 법률 조항에서도 연장요구가 있을 경우 일몰 기한이 연장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오 회장은 정부가 다른 산업에서도 시설투자에 대해 세금 공제를 줄이는 추세에 대해서도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현재 제약산업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며 “거액의 자금이 들어가는 시설 세액공제는 R&D 기반이 중요시 되는 제약산업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차별화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오 회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내용에만 관심이 모아져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신중하게 재정지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다”며 “세출을 늘릴 때에는 승수 효과가 큰 쪽에 지출하는 게 맞다. 제약바이오산업이 조세 정책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집중돼야 하는 이유다”고 덧붙였다.

오문성 회장

법학박사·경영학박사·행정학박사과정수료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국세청 국세정보공개심의위원회 위원장

국세청 국세심사위원회 위원

조세일보 조세정책연구소 소장

한양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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