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교수(호서대학교 제약공학과)

그 어느 때 보다 다사다난 했던 2019년의 제약·바이오산업. 기해년(己亥年) 한 해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하나가 바로 ‘인보사 사태’다.

이마저도 뇌리에서 금새 지워지나 했더니 묵혀있던 더 큰 악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국내 신약개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따지지 않고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 셈이다.

그렇다면 학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을까.

본지 취재진이 만난 이종혁 호서대학교 제약공학과 교수는 잇따른 국내 신약개발의 실패 이유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제약기업들의 조직 문화에서부터 지금의 재앙이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교수로부터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국내 신약개발의 10년, 20년 목표점을 알아봤다.

 

이종혁 호서대학교 제약공학과 교수

≫ “신약개발 실패의 진짜 이유, 정작 당사자는 모른다”

이종혁 교수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신약개발 실패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구조적인 문제다”며 “회사는 외부 투자를 받은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 신약 개발 과정 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은 연구를 진행할 자금과 인력 모두 부족한 데다 시스템까지 미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제의 본질을 밝혀야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민감한 사안들이 들어 있어 감추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다”며 “대표적인 예가 인보사 사태다. 이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업 문화와도 연관이 있다. 제약사 고유의 조직문화와 대표들의 오너십 등이 연결된 일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10위권 안에 드는 대형제약사 중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투자 대비 결과가 기대 이하인 경우 구조조정과 같은 압박이 가해지는 게 현실이다.

이 교수는 “현업의 연구자들은 사고가 나면 곧장 책임론에 휩싸인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며 “애초부터 1,000개를 시도해서 1개의 성공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신약 개발 분야다. 그런데도 일이 잘못되면 역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해고하는 게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풍토다. 반드시 개선돼야 하는 기업문화”라고 강조했다.

≫ ‘입바른 소리’ 하는 자=‘내부의 적’ 인식…“신약개발 미래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신약들을 보면, 임상 연구의 방향성과 시장의 니즈가 따로 노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시장에서 팔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이러한 문제를 회사 내부에서 누군가가 지적을 한다해도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보상심리가 먼저 앞서는 게 한국 제약기업들의 현주소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경우 자금력을 기반으로 여러 신약개발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로지 하나의 연구에만 목을 매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잘못되면 주가는 반토막이 난다. 기업들이 실패를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종혁 교수는 “사실 임상 실패라는 표현도 잘못됐다”며 “수 많은 연구가 실패하는 경우는 빅파마들도 모두 겪는 일이다.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제대로 찾는 것이 관건이다. 이렇게 발견한 문제를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하다. 문제를 왜곡하는 순간 더 큰 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은폐 문화는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어떤 자리에 있을 때 문제가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은 기업이나 정부 모두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인 셈이다.

공시나 의무적인 보고를 통해 규제를 가하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경영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더 많다”며 “대표적인 예가 오픈이노베이션이다. 대대적으로 홍보는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사례는 드물다.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자존심의 문제 때문에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해외 규제 ‘롤모델’ 지향하는 정부 정책 ‘문제’…“한국형 모델 시급”

이종혁 교수는 바이오헬스 산업을 미래먹거리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기존의 정책에서 AI나 빅데이터와 같은 내용들만 추가된 수준이라는 것.

이 교수는 “AI나 빅데이터가 제약·바이오와 접목되려면 최소한 두 산업 중 하나는 완성이 되어 있어야 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도 않고 국내 실정에도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종혁 교수는 해외 규제를 따라가는 롤모델 지향적인 국내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해외 정책을 들여오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지부터 살펴야 한다”며 “약가제도의 경우 일본이나 유럽 등에서 좋은 점만 추려 도입하다 보니 일관성도 없고 제도끼리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약가제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무작정 해외 제도를 들여오기 보다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무엇보다 국가의 정책 방향성이 명확해야 한다”면서 “다만 문제는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결국 기존 사업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 다수의 기득권자들의 강력한 반발은 불가피하다. 정부 정책과 더불어 경영자의 의지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이유다”고 강조했다.

≫ 강점 살리는 것만이 ‘살길’…파이프라인 다양화도 ‘급선무’

이종혁 교수는 만성질환 치료제 시장이 이미 과포화상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항암제나 세포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첨단바이오 분야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이미 재생의료 분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강점이 있는 분야를 선택해서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도 강화해서 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또 그는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당장의 성과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신약 개발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존재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약을 개발하려면 일본의 사례처럼 강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에겐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며 “정부차원에서도 컨트롤타워를 설치해 산발적으로 지원되는 연구개발 비용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파이프라인을 다양화 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이 풍부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할수록 위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며 “우리나라처럼 임상시험에 한 번 실패했다고 주가가 반 토막 나는 경우는 글로벌 제약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종혁 교수는 우수한 연구 인력을 발굴해 낼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초가 탄탄해야 장기적인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연구개발 분야의 지원과 관리를 일원화 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며 “지금도 좋은 아이템을 갖고 개발되는 사업들이 여럿 있지만 컨트롤 타워가 없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워 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신약개발에 단일화 된 컨트롤 타워가 존재한다. 신약 개발에 관련한 예산과 지원, 관리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일본 제약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점들을 개선해야 한다. 기본이 튼튼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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