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최근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의료기기 업체는 물론 국내 대형제약사와 바이오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슬리포노믹스 시장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마치 컴퓨터와 같다. 전기 신호로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프로세서(CPU)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꼭 전원을 꺼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장이 난다. 우리는 이렇게 전원을 끄는 것을 ‘잠’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상당히 위험하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유진 교수는 “현대인들에게 수면부족과 같은 증상은 흔하다”며 “그러나 수면부족이 반복되면 인지 능력과 주의력이 저하돼 주간 졸림과 같은 증상을 겪을 수 있으며 특히 산업 현장에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면장애를 겪게 되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의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며 “대표적으로 불면증과 수면무호흡증이 있는데 수면무호흡증의 경우 뇌졸중을 발생시키거나 심혈관 질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늘 컴퓨터의 전원을 꺼줘야 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적절한 수면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면장애가 뇌졸중이나 심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전세계적으로 슬리포노믹스, 즉 ‘수면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는 분위기다. 슬리포노믹스는 '수면(Sleep)'과 '경제학(Economics)'이라는 단어를 합친 것으로, 수면 관련 산업을 뜻한다. 최근 소득수준이 상승하며 수면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며 탄생한 신조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료에 따르면 이웃 나라 중국은 2010년부터 수면산업 시장이 연평균 24%의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38조 원으로 추산된다. 일본도 9조 원에 달한다. 제약 강국인 미국은 무려 45조 원을 기록 중이다.

국내 슬리포노믹스 시장은 여전히 잰걸음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성장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국내 수면시장 규모를 약 2조 원으로 추정했다. 한국수면산업협회도 국내 수면산업 규모가 지난 2012년 5000억원에서 올해 3조원대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가구업체들이 슬리포노믹스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까닭이다. 특히 수면무호흡증 완화를 겨냥한 모션베드(침대)를 내세워 수면 산업 시장을 공략 중이다.

모션베드 업체 관계자는 “일반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면 베개로 경추 각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모션 베드는 경추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 경추 각도를 15도 정도로 맞추면 수면무호흡증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슬리포노믹스가 의약품 시장에서도 유망한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SK바이오팜은 수면장애신약인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을 개발했다. 솔리암페톨은 기면증 및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과도한 주간 졸림증을 치료하는 신약이다. 솔리암페톨의 글로벌 상업화 권리를 인수한 재즈 파마슈티컬스는 임상 2, 3상을 진행했고 지난해 3월 미국 시판 승인을 받았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전임상 단계에서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되던 중, 수면장애 질환 쪽 적응증으로 개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재즈사와 제휴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대형제약사가 슬리포노믹스의 가능성을 먼저 인지하고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

바이오 기업들도 슬리포노믹스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휴온스는 희귀한 형태인 ‘전자약’이란 이름으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전자약(Electroceuticals)은 전자(electronic)와 약품(pharmaceutical)의 합성어로 약물 대신 전기자극으로 질병을 치료한다.

휴온스 관계자는 “올해 7월 전자약 전문 스타트업 업체인 ‘뉴아인’과 전자약 공동개발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며 “‘전자약’이란 단어는 편의상 쓰는 용어다. 우리가 흔히 먹는 경구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자극과 같은 저주파 치료를 통해 통증을 완화하는 새로운 방식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중이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이 슬리피노믹스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수요’ 자체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남서울대학교산학협력단이 분석한 ‘수면산업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최근 3년(15~17년)간 우리 국민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으로 OECD 평균 8시간 22분 대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면장애 질환자 수는 2013년 65만명에서 2018년 91만명으로 연평균 6.9% 증가율을 보였으며 수면장애 관련 의료비는 2013년 530억 원에서 2018년 1천102억 원으로 연평균 15.8%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전체의료비 연평균증가율이 10.4%임을 감안한다면 꽤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위에서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학생 A 씨(26세)는 “불면증에 걸리면 잘 수가 없다”며 “몸은 피곤하고 졸음이 쏟아지는데도 잠에 들지는 않는다. 어쩌다가 잠이 들어도 깊이 잠들지 않고 금방 깨버려 개운하지가 않고 오히려 피로가 쌓인다”고 말했다.

직장인 B(31세·여) 씨는 “수면장애를 겪게 되면 계속 졸리고 피곤한 상태가 지속돼 직장에서까지 날카롭고 예민하게 된다”며 “잠을 자기 위해 온갖 행동을 했다. 빗소리를 계속해서 듣기도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주곡을 틀어놓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또 B 씨는 “하지만 전부 허사였다. 이렇게 계속 잠을 못 자다 보니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빠졌다”며 “자괴감이 커져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국회 역시 법안 발의를 통해 슬리포노믹스 산업 진흥에 나선 배경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회도 발을 맞추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지난달 22일 ‘수면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 취지에 따르면 ▲ 수면산업이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전략적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 소비자를 위한 관리 체계를 마련해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법안이다.

윤종필 의원실 관계자는 “수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만큼 관련 법안의 필요성도 함께 커졌다”며 “법안 통과로 수면산업의 위한 기반이 조성된다면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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