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균섭 교수(서울아산병원)

우리 정부는 그동안 ‘블록버스터급’ 글로벌 신약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를 해왔지만 국내 신약의 글로벌 경쟁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뒤늦게 터진 안전성 이슈로 품목 허가가 취소되는 경우 주가는 요동쳤고 환자들의 희망은 한순간에 꺾였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은 사례도 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에도 대형 악재들이 터져 나왔다.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허가 취소에 이어 코스닥 시총 2~3위 신라젠의 임상시험이 실패하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신약 개발 역량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오는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다. 반면 미국 등 신약개발 선진국들에서는 혁신적인 신약이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신약 개발의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팜뉴스 취재진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특집 기획으로 ‘약리학의 대가’인 서울아산병원의 배균섭 교수를 만났다. 선진국들의 신약 개발 과정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토대로 ‘신약 강국을 위한 과제’를 분석해봤다.

 

서울아산병원 배균섭 교수

임상약리학자는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에서 신약후보 물질 탐색, 전임상, 임상 개발로의 중개 과정에서 약물의 임상약동학/약력학적 특성과 안전성을 탐색하는 1상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자료 분석으로 신약개발의 핵심적인 정보를 생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임상약리학자는 사무실에 갇혀 임상시험의 계획과 평가만을 진행하는 것만도 아니다. 임상약리학이 환자 가검물로부터 약동학, 약물대사 등을 분석하는 실험실 작업만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환자의 약물이상반응, 상호작용을 다른 임상의들에게 자문해주는 것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신약 개발 전반에 걸친 모든 기능을 아우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하는 주인공이 바로 임상약리학자다. 서울아산병원의 배균섭 교수는 199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서울대병원 임상약리실(현재 임상약리학과)에서 수련을 받았다,

2002년 이후부터는 서울아산병원 임상시험센터 및 임상약리학과에서 주로 건강자원자 1상 임상시험을 수행해오고 있다. 배균섭 교수는 미국 화이자와 USC(남가주대학)에서 미국의 신약개발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국내 제약사 신약 30개중 4개 품목은 허가가 취소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의 신약에 대한 허가는 1993년 7월 SK케미칼 ‘선플라’를 시작으로 2018년 7월 CJ헬스케어의 ‘케이캡’까지 총 30개다. 숫자도 적고 품목 허가 취소 개수도 생각보다 많았다. 배균섭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먼저 팜뉴스 취재진은 배균섭 교수가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상황의 ‘현재’를 어떻게 진단하는지를 물었다.

배균섭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투자한 것에 비하면 국내 신약 개수가 적다고 볼 수 없다”며 “신약개발이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투자 금액과 허가된 신약개수, 우리나라의 투자 금액과 신약개수를 비교해보면 그동안 우리나라의 투자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신약 개발 역량은 국가의 경제적 ‘부’가 어느 정도 쌓여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며 “FDA의 허가 인력은 식약처의 몇 십배에 달한다. 무조건 미국을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다.다만,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열린 토론을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한 ‘최적의 답’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규모상 미국 등 선진국과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을 단순 비교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신약개발의 ‘글로벌 경쟁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글로벌 빅파마들의 신약개발 성공률은 ‘100%’에 육박

특히 배균섭 교수가 주목한 것은 ‘신약개발’에 관한 통계다.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 확률은 ‘9.6%’로 알려져있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의약품 후보물질이 임상 1상부터 품목승인까지 모든 과정을 통과하는 경우는 9.6%에 불과하다는 것. 한국바이오협회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중인 9985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하지만 배균섭 교수는 글로벌 빅파마들의 신약개발 성공률은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배균섭 교수는 “신약개발확률이 10% 미만으로 굉장히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후보물질을 위한 선도물질 (리드)의 발굴 단계에서는 성공률은 10만분의 1이다. 여기서부터 따지면, 확률이 작게 나온다. 하지만 화이자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개발성공확률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고 전했다. 여기서 성공에 대한 정의는 시장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미국 시판허가(FDA NDA)를 받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신약 개발 성공률 통계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오해가 있다는 게 배균섭 교수의 핵심 논지다.

배 교수는 “글로벌 빅파마들을 기준으로, 신약 개발 비용을 약 3~5조원으로 잡는다면, 신약이 정부 허가를 받을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며 “3조~5조를 투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은 수없이 많은 실패를 감내할 수 있다는 뜻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어떤 한 물질의 성공확률이 1%이고, 유사한 것을 100번 시도하면 그중에 적어도 한 개 이상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라고 반문하면서 “여사건의 확률로 계산하면, 1-[(0.99)^100]이다. 모두 실패할 확률의 여사건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63% 내외의 확률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즉 사건 A가 일어날 확률을 p라 하면 사건 A가 일어나지 않을 확률은 1-p이다. 사건 A에 대하여 사건 A가 일어나지 않을 사건을 A의 여사건이라고 한다. 1-[(0.99)^100], 모두 실패할 확률의 여사건에 따르면 성공 확률은 약 63%가 나온다는 것이 배균섭 교수의 계산이다.

한 번 시도할 때 성공확률은 1%라면, 100번을 시도해서 최소한 한 번 이상 성공할 확률은 약 60%다. 여기에는 수없이 많은 실패들이 포함돼있다. 성공확률 1%짜리 물질들을 1000번 시도하면 약 99.99%가 나온다.

≫ 글로벌 빅파마 엄청난 자본력, 스크리닝 능력 ‘압도적’

배균섭 교수는 “화이자는 자본력이 있기 때문에 조단위 투자 계획을 잡는다”며 “그래서 개발 단계에서 성공확률을 예측한다. 거의 확실하게 신약이 성공할 것이라고 계산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신약 개발에 투자하는 비용 자체가 적기 때문에, ‘성공확률 만분의 1이라고? 그럼 어떻게?’라고 놀라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글로벌 빅파마는 엄청난 자본력으로 미국 대형 제약사는 만개의 리드 중 개수를 줄여나간다. 임상 1상 단계로 오는 건 한 두 개 정도다. 확률을 높이면서 가지치기 하는 것”이라며 “성공확률이 높은 것만 남는다. 리드단계에서는 소요되는 비용은 천만원, 백만원 단위일 수도 있다. 신약 개발 성공률 계산 방식이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빅파마들의 ‘거대한 자본력’이 신약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 수밖에 없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 배균섭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이들은 신약 개발 확률에 모든 실패와 기회비용을 다 포함하는 것은 물론 이자비용, 금융이자, 다른 산업 투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도 고려한다고 한다.

신약 개발에 나서기 전에 이미 ‘단가’가 나온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성공할 수밖에 없는 신약 개발이 이뤄지고, 신약 파이프라인 확보부터 최종 개발 과정에서 ‘리스크’가 생겨도 재빠른 포기나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이 신약 개발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배균섭 교수는 “국내 제약사는 3조~5조를 투자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실패를 감내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에서 계산하면 신약 개발비용 몇 백억이 나오는데 빅파마들의 기준은 몇 조 단위다. 자본에 따라 계산 방식은 물론 예측 능력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거기서 결정적인 역량차이가 나온다”고 밝혔다.

때문에 국내 제약사와 미국 등 해외 선진국의 신약 개발 성공률에 대한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것이 배균섭 교수의 의견이다. 배균섭 교수는 “우리가 지닌 자본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우리가 몇 백억 수준으로 글로벌 빅파마들을 흉내내기 어렵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신약 개발에 도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미국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진다”

다만, 배균섭 교수는 몇 가지 예로 국내 신약 개발의 문제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실패를 했을 때 그 책임을 자신이 진다”며 “사회공적부조나 정부가 지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면 항상 자신에게 최적의 상태로 쓰게 돼있다”며 “다른 사람의 돈이면 최적의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균섭 교수는 주유소의 예를 들었다.

주유소별로 기름값의 차이는 크다. 다른 사람이 비용을 부담하는 자동차는 기름값이 비싼 주유소에 가지만, 자신이 기름값을 내야 한다면 기름값이 싼 주유소에 가는 편이라는 것이 배균섭 교수의 의견이다.

신약 개발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이 유치한 투자자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발언이다.

예를 빗댄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배균섭 교수는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답답한 점은 운전이다”며 “운전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비슷한 속도로 가던 옆줄 앞차가 깜박이를 넣으면 보통 악셀을 밟는다.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자신보다, 앞에 있고 속도차가 심하지 않으면, 양보를 해줘야 한다. 오히려 앞차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감히 내 차선에 들어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다보니 들어가는 사람도 깜박이 신호를 켜지 않거나 무리하게 들어가고 절대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배균섭 교수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운전면허 지침에는 뒷 차의 양쪽 전조등이 모두 보이는 경우에만 차선 변경이 가능하다. 뒷 차가 계속 가까이 붙으면 자신이 다른 차선으로 변경을 하라고 되어 있다.

배균섭 교수는 또 다른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과 달리 사기범죄가 많은데”라며 “이것은 양보하지 않고 반칙이라도 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운전태도와 일맥상통하는 일종의 관습같다. 최근 신약개발이 엎어진 부분들도 그런 관습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조급증이 있으면서 사기를 쳐서라도 앞으로 빨리 나가야한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 첨생법 “산업혁신과 안전성, 두 역할 한 몸에 맡길 수 없어”

배균섭 교수는 첨생법의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첨생법은 신속 심사 및 조건부 허가 제도를 통해 신약 허가 일정을 최대 4년 앞당기겠다는 것이 골자다. 첨단바이오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 마련 및 시판허가 후 장기간 추적관리 의무화로 안전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배균섭 교수는 “첨생법의 방향은 맞다”며 “안전성을 강화하는 방안과 패스트트랙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약에 따라 다르다. 고혈압, 당뇨 등 기존의 만성병에 대해서는 안전성을 더욱 강화시켜야 하지만 치료법이 없는 영역에서는 안전성에 대한 경중을 따져 국가 지원으로 신약 개발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첨생법 추진과 동시에 한 사람에게 상반된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며 “식약처 직원 한 명 또는 부서에게 ‘우리나라 신약 발전을 위해 제약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라’는 명령과 ‘국민의 안전보건을 위해 신약 심사를 까다롭게 하라’는 두 가지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식약처에 자꾸 양쪽을 전부 맡기려고 한다”며 “하지만 ‘안전’과 ‘산업혁신’이란 두 가지 가치를 한사람이 생각하게 만들면 안 된다. 조직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 쪽 업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전성을 물고 늘어지고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하는 전문가와 산업을 진흥시켜야 하는 전문가의 역할은 다르다”며 “서로 대화하면서 경쟁하게 해야 하는데, 한 사람 또는 단일 조직이 같은 역할을 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첨생법 시행을 기회삼아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분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신약 개발 촉진 위해 ‘네거티브적’ 사고 필수

배균섭 교수는 마지막으로 국내 신약 개발의 촉진을 위해서는 ‘네거티브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일반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를 따른다”며 “불법을 규정하고 나머지는 합법이다. 우리나라는 상위법은 네거티브 규제 같지만 일선 실무단위로 내려오면 전부 포지티브 규제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포지티브는 합법을 정해놓고 그 외의 나머지는 자동으로 불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뀌어야 신약 개발에 발전이 있다”며 “미국은 불법 아니면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창조적인 것을 시도하는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허용 여부만 따지기 때문에 생각이 거기서 머무른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신약에 관련된 가이드라인 역시 포지티브 규제가 대부분이다. 실무진에서의 여러 가지 행정규제가 그런 기준에 맞춰진다”며 “FDA는 다르다.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제약사가 새로운 방법으로 입증하면 논의해서 받아들여줄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경직돼있다”고 설명했다.

배균섭 교수는 인터뷰 내내 쉽고 간결한 언어로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 발전방향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를 설명할 때는 엑셀을 직접 구동하는 방식으로 설명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약리학의 대가’인 그의 제언을 통해 대한민국 신약 강국으로 우뚝 서는 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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