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의 발달로 최근 의약품의 해외직구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약사법으로 온라인 의약품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가 사용에 한해 해외직구가 가능하도록 한 관세법이 합법의 영역을 만들어 내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약사사회에서는 상충되는 두 법이 빠른 시일 내에 정비되지 않으면 ‘의약품 대면 판매 원칙’이라는 절대 명제도 흔들릴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해외직구 규모는 2,123만건(15억8,000만 달러)으로 전년 같은 기간(1,494만건, 13억2,000만 달러) 대비 건수는 42%, 금액은 20%가 증가했다. 보통 연말에 해외 대규모 할인행사가 몰려있는 만큼 2017년의 20억 달러를 돌파한 해외직구 규모는 2년만에 3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자가 소비를 전제로 해외 의약품 통관을 허용하고 있는 관세법으로 인해 해외 온라인 의약품 구매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오남용 예방과 방지를 위해 약사와 환자가 직접 대면해야 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도록 한 약사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관세법상 일반약은 자가 사용 목적이면 3개월치 또는 6병까지 국내로 들여올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150달러 이하인 경우 관세와 부가세가 면세된다. 전문약 역시 처방전이 있으면 같은 조건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최근 관세법을 악용해 타인명의나 자가사용으로 위장해 의약품을 비롯한 물품을 구입하고 불법적으로 유통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관세청은 기존 선택 기재사항이었던 ‘개인통관고유부호’를 반드시 기재하도록 ‘특송물품 수입통관사무처리에 관한 고시’를 개정, 지난 6월 3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의약품을 판매하는 해외 직구사이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해외직구 사이트들은 합법적으로 해외 의약품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관세법의 상세한 내용과 함께 필수 기재로 변경된 관세청 개인통관고유부호를 어떻게 발급받을 수 있는지 상세하게 안내하며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문약의 경우 처방전이 없으면 해외직구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규제의 손길은 사실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판매국 기준으로 일반약, 건기식 등으로 분류돼 있으면 국내에서 전문약에 해당돼도 처방전 없이도 통관이 가능하다는 구매 후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에 온라인 판매자들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 소비자의 전문약 불법 구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포장용기를 변경하거나 허위 처방전을 동봉하는 것은 기본이고 세관 통과 시 모든 성분을 검사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성분명을 누락하기도 한다. 이 같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전문약의 해외직구가 늘면서 부작용 사례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약사법과 관세법이 상충되면서 대면 판매 원칙 훼손, 오남용 및 부작용 위험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대책이 현재로선 없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문 취급업자 또는 수입자가 아닌 일반인이 인터넷망을 이용해 의약품을 해외직구로 수입·구매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본회의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해외직구 관련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약사법뿐만 아니라 관세법도 함께 개정이 돼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다만 관세법은 기재부가 담당하고 있어 부처간 실무적인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며 “약사법과 관세법의 체계가 다르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부처간 시각이 다를 수 있어 조율이 쉽지는 않다. 앞으로 의약품 해외직구 문제가 지속적으로 공론화 되고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면 급물살을 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약사사회는 합법적인 의약품 해외직구 창구 역할을 하는 관세법의 개정 없이는 의약품 온라인 불법 판매 근절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또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 될 경우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의약품 대면 판매 원칙이 무너지면서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김범석 약국이사는 “우리나라는 약사법으로 온라인 의약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부처가 다르다고 이 같은 대원칙에서 벗어나는 법을 그대로 두면 악용 사례가 늘고 국민들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관련법 개정이 쉽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건강이 달려있는 사안인 만큼 약사회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편 사회적으로도 공론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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