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진규 (param123kr@naver.com)

 

뮌헨 중앙역에서 티켓을 사고 무인 보관함에 맡겨둔 짐을 찾아 늦은 오후 열차로 출발한다. 한국에서 어떻게 가면 좋을지를 물어봐도 알아서 찾아 오라는 식의 무뚝뚝한 응대가 독일 방식인가 싶기도 해서 적잖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을 것이다. 무거운 짐들과 익숙하지 않은 철도 시스템 그리고 최종 목적지는 주소 외에는 아는 것이 없으므로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한다면 난감할수 있으나,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길을 나선다. 뮌헨 중앙역에서 ICE를 타고 가다 Nuremberg 중앙역에서 RE로 갈아 타면 되는 경로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독일은 ICE(Intercity Express), IRE(Interregio Express), Regional Express 그리고 Regional-bahn, S-Bahn등으로 그 목적에 맞게 철도 시스템이 잘 구분되어 있다. 요즘은 구글에서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그 방법을 기초로 독일 철도 시스템인 DB(https://reiseauskunft.bahn.de)에 접속하면 일정에 맞는 승차권을 쉽게 예매할 수 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 좌석 예약 여부, 자전거를 가져갈수 있는지 등의 다양한 정보도 제공한다. 인터넷 예약이나 자동 발매기 이용이 불편하다면 공항이나 철도역에서 목적지 주소만 알려 줘도 가장 효율적인 티켓을 제안해 주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찍 예약을 하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수 있는 장점이 있으므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바로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이번에 탄 ICE는 한국의 KTX 보다는 천천히 가지만 흔히 영화에서 보듯 6개의 객석들이 각각 독립된 방의 형식(Compartme nt)으로 되어 있어 한국(Couch형-열린구조)에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동양인이 독일의 지방도시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같은 칸에 앉은 현지인들이 가끔 쳐다본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고 밤열차가 달리는 동안 잠시 잠시 생각에 잠긴다. 혼자 하는 장거리 기차여행, 그것도 독일에서 하게 될 줄이야. 눈 내리는 어둠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길고 긴시간 동안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만들어 보기에 충분히 좋은 기회다.

약간의 낭만을 더할 요량으로 음료 한 병을 주문했는데, 미안할 정도로 복잡한 몇 개의 열쇠를 풀고 판매대를 열어야 냉장고가 나오고 그 냉장고 문을 열어 콜라 한 병을 꺼내 주고는 다시 반대의 절차로 판매대를 닫고 잠근다. 아차.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웃으며 건네는 손길 뒤로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Classic Coca-Cola 라고 적혀 있는 마르고 길쭉한 형태의 콜라는 처음 보는 특이한 병모양이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시골역 느낌이다. 약간의 번화가 정도는 기대를 했는데, 역내 간이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택시 찾기에 급급할 정도다. 택시로 밤길을 달려 호텔에 도착을 하니 몇 몇 눈에 익은 친구들이 보인다. 체크인을 하고 로비에 내려가 맥주 한잔을 받아든다. 겨울의 호프(HOF Saale)는 평균 기온으로는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지만 변덕이 심하고 때로 차의 안쪽 유리까지 얼 정도로 기온이 급강하 하기도 한다.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웬만한 도로는 상시 눈길임을 각오하고 다녀야 한다. 여기에 오면 공식일정 외에 꼭 만나야 할 친구가 있다.

그룹의 재무를 담당하는 총 책임자로 필자와 또래가 비슷한 여성 CFO, G다. 한국을 방문한 그 어떤 외국 손님도 공항 픽업을 가지 않는 필자가 처음으로 공항 픽업을 가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 모든 한국 일정을 같이 지원해줬던 친구로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아시아 방문은 필자와 만날 때가 처음이었고, 그 첫방문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배려와 지원이 고맙다고 독일에 오면 꼭 같이 식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회사의 공식 일정을 피해서 따로 식사를 하기로 했었다.

약속과 원칙에 철저한, 융통성 없고 원리 원칙만 강조하는 등의 수식어가 붙은 독일 사람들에 대한 흔한 선입관과는 달리 여기 HOF Saale에 있는 동료들은 순수하고 친근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서로 챙겨 주려는 마음과 배려해 주려는 마음이 그들의 원리 원칙보다 앞서는 곳이다. 찬바람 부는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훈훈한 이야기가 매일밤 호텔바에서 이어지는 그런 곳이다. 특히나 총재무책임자인 G는 야근 업무를 뒤로 미루고 기꺼이 필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눈이 깔려 어두운 길을 달려 도착한 작은 식당.

 

 

인터넷에는 나오지 않는 로컬 식당이다. 바깥 외관과 실내가 잘 정비되어 있고, 나름의 인테리어 원칙을 잘 지키는 그런 곳이다. 화려한 미슐렝 보다는 이 친구와 잘 어울리는 편안한 로컬 레스토랑이다. 외국인에게도 무난한 음식과 맥주를 주문하고 사업에 대한 이야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은퇴를 하면 숲속에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이 친구는 언제든 마음이 내킬 때면 찾아 오란다. 언제라도 환영이라고. 심지어 몇시간이 걸리는 공항까지 픽업을 나오겠다고까지 한다. 가족들이 같이 모여 앉아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같이 나누어 보자고 한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도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것이라고. 그러나 궁극적으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족을 대하는 마음은 동서양을 떠나서 같을 것이라고. 그냥 예전부터 알아왔던 옆 동네 친구와 같은 제안이다. 밤이 늦어 호텔까지 데려다 주고는 다시 한 시간을 달려야 집에 도착한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고맙다는 말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호텔로 돌아오니 바에는 각 국에서 온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묻어 난다. 잠시 앉았다가 방으로 올라간다.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전체 저녁식사를할 때에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장난 삼아 Cheek Kiss를 해주는 동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는 친구 그리고 진지하게 비즈니스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 등.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방문한 이방인에게 옆집 친구를 대하듯 해주는 동료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한다.

모든 일정을 끝낸 날은 G라는 친구가 쇼핑을 포함한 번화가 구경을 시켜 주겠단다. 아쉽게도 스페인과 이탈리에서 온 친구들의 차를 얻어 타고 공항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다음 방문 때 좀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는 것으로 여운을 남긴다. 회사를 떠나서도 언젠가 이친구는 또 만나게 될 것이다. SNS가 발달한 덕분에 멀고도 먼 거리와 시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업데이트 하면서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게 되면 반드시 이 곳을 다시 찾아 친구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 친구들도 아시아를 방문한다면 한국을 꼭 포함해서 일정을 잡을 것이라 확신한다. 체코와도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일정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왠지 차가울 것같고, 무뚝뚝할 것 같은 또한 원리원칙과 효율성만 따질 것 같은 독일인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사람이 살아가고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국가나 민족 또는 문화적 차이보다는 사람 그 자체에 의미를 더 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친구의 메시지가 정겹다.

Whenever you are in Europe, please let me know. Would be a ple asure for me having you as my gu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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