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진 회장(한국약제학회)

최근 주목받던 혁신신약들의 임상 실패 소식이 연이어 나오면서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누군가는 신약강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시행착오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방법론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고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대표적인 학계 인사인 이범진 한국약제학회장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팜뉴스 취재진은 이 회장을 만나 국내 신약개발의 수준과 문제점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향후 성과를 가시화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 수십년의 투자‧지원에 비해 부족한 결과물, 왜?

“부족한 전문 인력과 혁신신약에만 쏠려있는 시선 때문”

전 세계 1경 정도의 바이오헬스시장 중 의약품 분야가 1,300~1,400조원 규모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비중은 2% 남짓이다. 교수생활을 시작한 27년 전에도 제약바이오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혁신신약의 육성과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개별 기업들에게는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정부가 그동안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R&D 인력, 즉 스페셜리스트가 부족한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인력 양성 구조를 보면 기초 지식을 갖춘 인력 배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성공적인 신약개발을 위해서는 품질, 인허가, 레귤레이션, 특허 등 모든 분야의 인재가 두루 필요한데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을 보면 우수한 인력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 현재 국내 인력풀로는 신약개발에 필요한 전문가를 수급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인구가 적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 스위스 노바티스 등이 빅파마로 도약하기 전 우수 인력을 어떻게 수급했는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부족하면 해외 인력의 직간접 고용 등 인적 네트워크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 인력의 적절한 확충과 수급이 이뤄진다면 자본, 시설 등의 인프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최근 복지부 지원을 받아 혁신개량신약의 글로벌 진출 모델을 선정할 때 다소 놀랐다. 대형제약사도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고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량신약 개발에 필요한 전문 인력도 제대로 수급이 안되는데 혁신신약은 정말 먼 얘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개발비 확보가 필수적인데 국내 매출 TOP 10에 이름을 올린 회사조차도 대부분 신약 개발과 캐시카우를 연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지원과 더불어 회사들이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개량신약과 약물전달시스템 등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모두 혁신 신약에만 목을 매고 있다.

개량신약과 약물전달시스템 등으로 글로벌 경험을 쌓고 이것이 혁신신약 개발과 연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념과 자본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학생에게 대학원 교육을 한다고 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따라갈 수 있겠나. 국내 신약 개발 환경이 초보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냉정한 평가 위에 현실적인 목표가 수립돼야 한다.

≫ 잘 만든 개량신약, 혁신신약과 비견될 부가 창출 가능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개량신약의 중요성‧가치 부각돼야”

정부가 지난 2017년 ‘제2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옛날에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블록버스터 제품을 살펴보면 혁신신약도 있지만 개량신약임에도 수천억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제품들이 있다. 혁신신약만이 성공이라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개량신약을 혁신신약으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이 부분도 동의하기 어렵다. 개량신약 그 자체가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량신약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해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혁신신약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는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개량신약을 왜 낮춰 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 역시 개량신약의 잠재력을 저평가 하고 있는데 이는 큰 실수다.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복지부가 글로벌개량신약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고 제약사들이 글로벌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성공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세계 시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지금처럼 기술이전에만 집중하면 언제 글로벌 시장에서 경험을 쌓을 것인가.

혁신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성공적인 세일즈를 위해선 영업‧유통 기반과 네트워크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개량신약을 통해 이러한 부분을 연습해 보고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역량을 증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량신약은 리스크가 적지 않나. 혁신신약 개발에만 매몰되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신약 개발부터 판매까지 전 주기를 글로벌 시장에서 완주해 보는 경험은 제약사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매출을 창출할 수 있고 신약과 연계할 수 있는 개량신약의 아이템을 발굴하는데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모든 분야가 국제적인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혁신신약 개발만 부르짖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업과 매출이 우리 주도로 진행되는 글로벌 선례가 많아져야 발전도 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도 글로벌 시장에서 전 주기를 완주한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의 신약개발 방식처럼 제품 개발에만 자본을 투입하고 국내 시장에 머물러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글로벌 위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 바이오벤처의 독자적 신약개발 추진은 ‘위험한 선택’

국내‧외 대형제약사와 공동개발 및 기술수출이 ‘이상적’

직원 몇 십명을 데리고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투자를 받아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국내 바이오벤처다. 연구 속도, 독창성, 투자 유치 등이 성공의 관건인데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파이프라인을 끌어올 수 있는 좋은 창구다. 큰 회사들도 관심을 갖고 직‧간접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만큼 장려를 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빅파마도 수많은 바이오벤처에서 아이디어와 파이프라인을 조달받는다. 따라서 파이프라인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국내외 회사와 연계해 공동개발을 하거나 기술수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바이오벤처가 신약개발을 완주하겠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무모하다고 보고 있다. 협업을 중심에 둬야 한다.

대형제약사와 중견제약사는 글로벌과 연계되면서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약개발 역량이 부족한 만큼 개량신약이나 플랫폼개발과 같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최우선 가치로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자본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혁신신약에 도전해야 지속가능한 R&D 투자도 가능하다. 매출을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 투자 원칙이 만들어 져야 한다. 다만 신약개발 역량이 어느정도 갖춰진 기업은 안주하지 말고 좀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려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 개량신약 독자 개발마저 버거운 것이 국내 R&D 현실

‘밑바진 독에 물 붓기’ 보다 성과 내는 것이 우선

현재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개량신약 개발도 독자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장에 나온 혁신신약이 몇 개나 되는지,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큰 돈을 쓰고도 효용을 못 내는 것보다는 작은 돈이라도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약개발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발전과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정부의 신약개발 지원 방식도 재검토 돼야 한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혁신신약에만 지원을 할 것이 아니라 성공 가능성이 보다 높고 제약사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개량신약으로 눈을 돌려 지원해야 한다. 특히 글로벌 진출과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개량신약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정상적인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실패인 것인지 아니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투자와 연구개발이 이뤄졌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시장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인 만큼 엄정하게 대처해야 하겠지만 전자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영역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 ‘건전한 실패’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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