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니티딘에 이어 니자티딘 사태가 불어닥친 가운데 해당 원료의약품을 만든 제조소인 인도의 ‘솔라라’社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이 회사의 원료를 사용한 니자티딘 계열 제품만이 NDMA 기준치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본지 취재 결과, 솔라라사의 원료를 갖다 쓴 국내 업체만도 20곳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보건당국이 전수조사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니자티딘 계열 의약품 13개 품목에 대해 판매와 처방을 중단했다. 니자티딘 성분 원료의약품 4종의 제조번호 및 93개 완제의약품을 수거해 검사한 결과 NDMA가 잠정 기준치(0.32ppm)를 초과했기 때문이다. NDMA은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 있는 물질이다.

이번에 공식적으로 회수 조치된 13개 의약품은 전부 인도 솔라라사의 원료를 사용했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총 93개 품목 중 회수 조치된 13개와 생산실적이 없는 24개를 제외하면, 56개의 다른 의약품은 살아남았다.

문제는 국내에서도 상당수 제약사들이 솔라라사의 원료를 사용 중이라는 점이다.

지난달 29일까지 업데이트된 식약처 원료의약품 등록현황에 따르면 솔라라사의 원료를 등록한 의약품은 35개. 일동제약, 한미약품, 안국약품,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 다수의 제약사가 솔라라 원료를 기반으로 하는 성분의 의약품들을 유통하고 있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솔라라사의 원료를 사용 중인 모든 제품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라니티딘과 니자티딘은 화학구조 자체가 NDMA를 형성하기 쉽다는 이유로 판매가 중단됐지만 이것은 입증된 것이 아니다. 단지 추정일 일뿐”이라며 “NDMA 발생원인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만큼 같은 원료소에서 제조하는 모든 성분의 의약품을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식약처는 전문의의 의견과 달리, NDMA 검출 경로가 밝혀졌기 때문에 다른 의약품에 대해서는 검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NDMA 성분 검사는 특정 원료 제조사를 국한해서 조사하기 보다 성분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르탄류나 티딘류 계열 성분도 화학구조상 유사성 때문에 제조공정 과정에서 NDMA가 혼입됐다고 결론내렸다. 솔라라사 원료에 대해 추가 조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식약처 원료의약품 현황에 의하면, 국내 제약사들이 시중에 유통 중인 솔라라사의 원료로 제조된 성분은 가바펜틴, 덱시부프로펜, 오셀타미비르인산염 등 6개다. 11개 제약사가 판매 중인 가바펜틴 성분은 신경병성 통증 치료제로 쓰이는 약물로 일반적으로 장기간 투여된다. 덱시부프로펜도 필요한 경우 장기간 투여될 수 있는 해열·소염 진통제다.

앞서의 전문의는 “솔라라사의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에 대해 환자들이 장기 복용시 추가 검사의 필연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불순물이 검출된 발사르탄은 물론 라니티딘도 장기간 복용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회수조치를 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앞서 발사르탄과 라니티딘 사태가 터졌을 때마다 ‘평생동안’ 복용을 전제로 NDMA 노출에 대한 잠정 관리기준을 설정했다. 장기 투여 가능성이 있는 가바펜틴 또는 덱시부프로펜 계열의 의약품만이라도, NDMA 검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의가 내린 결론이다.

더구나 솔라라사는 NDMA 검출 ‘전적’이 있는 원료 의약품업체다. 호주 보건당국(TGA)은 최근 10개 제약사의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 135개 중 24개 제품에서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비록 잠정관리 기준인 0.3ppm을 초과하지 않았지만 24개 제품은 전부 솔라라사가 공급한 원료를 이용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제약사들에게 향후 NDMA 발생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 평가 결과를 내년 5월까지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약회사들은 앞으로 모든 합성의약품 전체에 대해 NDMA 검출 여부를 확인해 제출해야 한다”며 “솔라라사 원료가 충분히 걸러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식약처는 ‘니자티딘 사태’ 후속 대책 발표 당시 '아질산기'와 '디메틸아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적으로 미량 분해·결합하거나, 제조과정 중 아질산염이 혼입돼 NDMA가 생성된 것으로 추정했다. 식약처가 제약사들에게 평가 의무를 부여한 원료의약품 NDMA 평가 항목에 주로 ‘아질산나트륨’ 혹은 ‘아질산염’이란 키워드가 삽입된 이유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식약처가 소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식약처가 안일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유럽의약품청(EMA)은 모든 합성의약품이 NDMA 검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에게 검사를 지시했다. NDMA 발생 원인 자체가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제적인 위기관리 차원에서 해당 제조소에서 만든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을 우선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EMA는 지난달 3일 NDMA 검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제약사들에게 모든 의약품에 대한 시험 검사를 하도록 요청했다. 일단 NDMA 존재 가능성을 전제하고 위험이 높은 의약품을 6개월 이내에 평가하라는 지침인 것.

EMA는 당시 “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NDMA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회사는 필요한 경우 적절한 예방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화학구조식이 유사한 제품을 넘어서서, 모든 화학적 합성 의약품에 대한 검사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식약처 대응과는 상반되는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화학구조식이 비슷한 제품이 아닌 이상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어느 회사든 품질 관련 이슈가 생긴다면 자사 품목과 원료 공급처들을 꼼꼼히 따져볼 것”이라며 “그러나 세부항목들을 일일이 따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칙적으로 원료 공급사측에서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품질 관리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니자티딘에서 검출된 NDMA 역시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진 성분들에서 발견되고 있다”며 “인도 제조소에서 NDMA가 나왔다고 해서 해당 회사 원료를 못 쓰는 것은 아니다. 화학구조가 비슷한 성분들을 위주로 검사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완제품 제조사인 제약회사와 원료 공급사간의 특수성이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같은 제조소의 원료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제약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게 일동제약 측 입장이다.

원료의약품 업계에서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원료의약품 수입 업체 관계자는 “주원료가 공정을 전부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제약사들에게 같은 원료를 사용했다고 해서 제약사를 타깃으로 잡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약사들은 난리가 날 것”이라며 “식약처 검사로 원료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생산은 물론 매출에 타격이 바로 온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원료의약품 제조소를 바꾸거나 NDMA 검사를 추가로 진행하라는 건 전부 죽으란 얘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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