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벤다졸 이슈’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당뇨병 환자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유튜버는 펜벤다졸이 당뇨병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후기를 연이어 올리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위험천만한 행위’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환자단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최근 당뇨병 환자들에게 개 구충제인 펜벤다졸의 복용 후기 영상이 유튜브에서 주목 받고 있다. 이 약의 항암 논란 여파가 당뇨병 환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실제로 유튜버 A 씨는 지난달 29일 ‘펜벤다졸 복용 9일차, 혈당 수치가 좋아졌다’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그는 “28살에 제1형 당뇨 판정을 받았고 저혈당으로 사경을 헤맸다”며 “펜벤다졸 복용 이후 평균 혈당 수치가 내려가고 있다. 하루하루 힘이 솟고 컨디션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펜벤다졸 복용으로 당뇨병 증상이 완화됐다는 뜻이다.

영상 조회수는 4일 현재 7,836건. 시청자들은 폭발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A 씨는 그동안 간이혈당측정기를 통해 공복혈당과 식후혈당 수치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복용후기 영상을 소개해왔다. A 씨는 지난달 31일에도 “6회째 복용했는데 혈당 수치가 점점 좋아져서 인슐린 주사도 맞지 않기 시작했다”는 내용의 체험담도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굉장히 위험천만한 행태”라며 “당뇨병은 표준 요법으로 사용될 수 있는 약이 수십가지에 이른다. 수천명의 임상 데이터가 누적된 약들이다. 당뇨병 환자가 임상 데이터가 없는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우려했다.

다른 약사 역시 “수많은 제약사들이 치료제를 개발했을 정도로 매출 유인이 높은 것이 당뇨약”이라며 “매년 신약이 나오는 이유다. 전반적으로 의약품 접근성이나 치료효과 기대가 낮은 분야는 아니다. 안타까운 현상이다. 복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뇨병은 치료 옵션이 다양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펜벤다졸 복용을 당장 멈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펜벤다졸 복용 행태가 들불처럼 퍼지고 있다. 유튜버 B 씨는 1일 올린 영상을 통해 “A 씨의 영상을 보고 펜벤다졸 복용을 결심했다”며 “지난달 28일에 혈당수치가 420~430 ㎎/㎗이었는데 펜벤다졸을 3회 복용한 이후 400㎎/㎗ 아래로 내려갔다. 평균적으로 혈당 수치가 내려가는 중이다”고 밝혔다. B 씨도 A 씨와 같이 간이 혈당측정기로 파악한 수치를 시청자들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수차례 복용 후기를 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공복 혈당 수치 변화가 당뇨병 증상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인 것.

앞서의 전문의는 “혈당 수치만으로 당뇨병 증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당화혈색소 검사(HbA1c)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화혈색소 검사는 혈액 내부에 산소운반 역할을 수행하는 적혈구 내 혈색소가 얼마나 당화됐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HbA1c 수치는 총 헤모글로빈의 6% 미만이다. 6.5%의 수치는 당뇨병을 시사한다. 의료계에서는 2~3개월 간의 장기혈당을 나타내는 당화혈색소 검사가 공복혈당 검사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뇨병 위험을 더욱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통한다.

더 큰 문제는 펜벤다졸이 인체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동물약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간독성 등 부작용 위험도 크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

앞서의 전문의는 “만성질환 약으로 펜벤다졸을 복용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동물실험에서 간의 종양이 촉진됐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며 “레트(실험용 흰 쥐) 실험으로 129주 관찰 결과, 큰 쥐에서 발암성이 보고됐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질환을 위한 약으로 당연히 쓰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펜벤다졸은 간독성 때문에 앞으로도 당뇨병 치료제로서 임상 허가가 날 수도 없는 성분이다”며 “당뇨병 환자들의 복용 행태가 굉장히 우려스럽다. 유튜브 영상 삭제 등 보건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동물용 구충제를 드시지 말라는 입장은 당뇨병에서도 동일하다”며 “펜벤다졸을 치료제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치료기회의 적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뇨병 환자들의 추가 복용이 늘어나고 우려가 깊어지는 상황이 초래될 경우 다시 한 번 경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환자단체 측도 당뇨병 환자들의 펜벤다졸 복용 현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제1형 당뇨병 환자들은 식사 전에 인슐린 주사를 반드시 맞아야 한다. 수시로 인슐린 주사를 투여해 혈당 수치를 보정을 해야 하는 질환이 1형 당뇨병”이라며 “하지만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기 위해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펜벤다졸을 복용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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