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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바이오 투자 ‘쪼그라드는’ 연구역량, 왜?
‘늘어나는’ 바이오 투자 ‘쪼그라드는’ 연구역량, 왜?
  • 최선재 기자
  • 승인 2019.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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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 등장하는 바이오 육성 전략…키워드는 ‘일자리 창출’
업계 “정부, 과제에 일자리 강요”…NSC급 논문 수 감소 이유

정부가 제약 바이오 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는데도 네이처 등 세계 최고 권위지의 논문 게재 건수는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과학 연구 역량의 질적 저하가 일어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보통 집권 3년차에 성과를 내기 위해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내걸어왔다. 집권 1년차는 ‘허니문’, 전임정부의 실정으로 ‘면피’를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집권 2년차는 개혁을 ‘과도기’라는 방어 전략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집권 3년차는 다르다. 집권 3년차 대통령의 성과가 자신의 치적과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물론 후임 정부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 3년차에 제약 바이오 산업 육성에 눈을 돌려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신약 강국 드라이브’를 기치로 내걸고 규제개혁을 포함한 산업육성지원책을 마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집권 3년차 당시 ‘제약 바이오 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우리나라의 바이오 분야 잠재력은 매우 크다”며 “바이오시밀러,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입증했다”고 선언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4개 부처는 2017년까지, 제약바이오 분야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그렇다면 그 많던 ‘돈’은 어떻게 투자됐을까.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부터 2017년까지 제약 바이오 분야에 대한 정부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2013년 2조8770억원, 2014년 2조9730억원, 2015년 3조3019억원, 2016년 3조3341억원, 2017년 3조4946억원이 투입됐다.

같은 기간 신약개발 연구개발비도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2013년 3120억원, 2014년 3238억원, 2015년 3408억원, 2016년 3896억원, 2017년 4436억원을 기록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10년 집권 기간 동안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에 나선 결과다.

문제는 ‘투자’는 급속도로 증가한 반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역량’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분석한 ‘국내 NSC 논문발표 현황’(2009~2018)에 의하면 2009년 바이오 관련 NSC 논문은 총 21편이 게재된 이후 2014년 40편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점’을 찍은 이후 2015년 28건, 2016년 31건, 2017년 31건으로 하락했다. 지난해 게재 건수가 38건을 기록하면서 소폭으로 올라갔지만 40건을 기록한 2014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 업계 종사자는 “NSC는 말 그대로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다”며 “NSC에는 시장에 강력한 한방을 던질 수 있는 ‘게임체인저’ 논문이 실린다. 바이오 관련 논문 게재 건수가 줄어든 것은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과학 연구 환경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네이처(N), 사이언스(S), 셀(C)은 ‘과학계 3대 저널’로 NSC로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일으킨 연구 결과는 주로 이 저널들을 통해 먼저 발표된다. 연구자가 평생 한번 논문을 게재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과학저널이다.

인용지수(IF, Impact Factor)는 저널이 인용된 횟수를 나타내는 수치를 나타내는데 네이처의 2018년 임팩트 팩터는 43.070, 사이언스는 41.063, 셀은 36.216를 기록했다. 다른 SCI급 논문 저널에 비하면 압도적인 인용 횟수다.

익명을 요구한 박사급 연구원은 “NSC는 절대적인 개수가 정말 중요하다. 임팩트 팩터 자체를 다른 저널과 비교할 수 없다”며 “NSC에 실리려면 전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어야 한다. 이미 알려진 연구 성과는 실리지도 못한다. 워낙 창의적이기 때문에 후속 연구의 주된 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인용 횟수가 높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제약 바이오 관련 논문이 NSC 학술지에 게재된 비율은 한 나라의 바이오 기술 수준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어 “우리나라의 바이오 관련 NSC 관련 논문 개수 감소는 상당히 걱정된다”며 “바이오 관련 논문은 돈만 내면 실어주는 저널들도 많기 때문이다. 연구기간이 보통 3~5년이란 점을 감안해도,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기반이 허약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투자 방향이 연구 역량 강화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육성 방안이 ‘일자리 창출’과 맞물리면서 정부 투자의 기본취지가 어긋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연구자들에게 지원금을 줄 때 조건 없이 자유롭게 연구하라고 하면 NSC급 게임체인저 논문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며 “하지만 고용지표가 안 좋아지면 어김없이 과제 조건에 ‘일자리 채용’이란 키워드가 붙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R&D 자금을 주면서 일자리를 만들라는 뜻인데 이럴 땐 힘이 빠진다”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별 연구만 강조되고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생긴다. 신약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연구 논문이 나올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보다는 ‘일차리 창출’에 방점을 찍는 투자책으로 연구자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는 것.

이전 대통령들과 다름없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22일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의 일환으로 연간 4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물론 이번에도 대대적인 투자의 최종 목적은 ‘일자리 30만개 창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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