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간 효자품목이었던 위궤양치료제 ‘라니티딘’의 회수조치에 제약업계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번 라니티딘 사건은 연신 ‘이례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의문점도 많다.

그동안 별탈없이 판매돼 온 의약품에서 뒤늦게 NDMA(N-니트로소디메틸아민, WHO 국제 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인체발암 추정물질(2A))가 검출된 사실 자체가 ‘이례적’이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FDA보다 앞서서 전 품목 회수조치를 한 것 또한 ‘이례적’이다.

정부가 NDMA 발생원인조차 분석하기도 전에 2700억원대 라니티딘 시장은 사실상 퇴출 단계에 접어 든 것이다. 이에 269품목을 제조·유통해 온 133개 제약사는 제조는 물론 수입, 판매중지에 따른 회수 및 환불 등에 비상이 걸렸다.

≫ 날벼락 떨어진 ‘라니티딘’에 억울한 제약사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이 비단 ‘이례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제조 과정 상의 과실이나 결함으로 인해 회수 조치됐던 일련의 사례와 달리 이번 사건은 그 누구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렵다.

식약처는 NDMA의 검출 원인이 라니티딘에 포함된 ‘아질산염’과 ‘디메틸아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적으로 분해·결합해 NDMA를 생성하거나, 비의도적으로 제조과정에서 아질산염이 혼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예측불가능한 발암물질 검출 문제는 속속 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도 NDMA 발생 가능성이 높은 성분을 선정해 수거·검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업계는 라니티딘을 대체할 티딘 계열 의약품이나 개발 중인 의약품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실제 식약처가 지난 26일 저녁, 라니티딘 성분 제제관련 제조(수입)사를 대상으로 한 설명회에서도 그 불안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재발방지 대책으로 NDMA가 검출될 수 있는 성분을 조사해 목록화한다고 했는데 이를 공개해줄 수 있냐”면서 “라니티딘을 대체할 의약품을 제약사가 개발해야 할텐데 이미 개발하고 있는 의약품에서 또 NDMA가 나오면 어떻하냐”고 질의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티딘 성분에서도 NDMA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이러한 성분 의약품에 대해서도 추가 시험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이에 식약처 의약품정책과는 우회적으로 제약사 스스로 관련 시험을 해봐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NDMA 검출 가능성이 있는 성분 공개는 계획하진 않았지만, 이미 일본은 리자티딘도 검사한 자료를 제약사로부터 받고 있다고 답했다.

≫ 잘못없다면서 책임은 다 져라...기댈곳 없는 제약사

이런 와중에도 133개 제조(수입)사는 라니티딘을 더 이상 시장에 내놓지도 못하고, 내놓은 의약품마저 회수하면서 이로 인한 매출손실과 이미지 하락까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약바이오협회가 공식적으로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실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수와 환불, 안내 등을 위해 추가 인력을 확보하고 비상체제에 들어갔다”며 “매출손실도 그렇지만 그 외적인 비용도 만만치않지만 어느정도다라고 말도 못한다. 한번 무너진 이미지는 회복이 쉽지않은 만큼 자칫 국민안전보다 돈을 더 따지는 제약사로 낙인찍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기술의 발달로 또다른 의약품에서도 NDMA 검출이 확인될 수 있다”면서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전면 회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국민에게 의약품에 대한 공포감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도 했다.

다른 관계자도 “인체유해검사도 하지않고 회수조치부터 하는건 지나치다. 유해기준도 그렇고 FDA보다 엄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서 온전히 손실을 감수해야한다. 기댈곳 하나 없이 자구책으로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 전문약만 연 매출 2380억원...3개사 매출만 890억원

이번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의 유통금지로 당장 제약사들이 받는 매출 손실은 2700억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이중 일반약과 비급여를 제외한 전문약만 238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라니티딘 성분의약품의 매출이 1200억원대에 달하며 제약사별로 많게는 연간 575억원대의 손실이 예상된다. 연 매출 10억원 미만대가 5곳 미만일 뿐, 대웅제약과 일동제약, 대웅바이오는 최소 100억원 이상의 손실이, 10여곳은 40억원 이상 70억원 미만의 매출이 당장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개량신약 1개를 개발하는데 소요된 시간과 비용까지 감안하면 증가하는 의약품 개발R&D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실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에 따르면, 국내 연구개발중심 제약·바이오기업이 1개의 개량신약을 개발하는데에는 개량유형별로 차이는 있지만 평균 3.7년의 시간과 30.1억원의 비용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허가를 받은 대웅제약의 '알비스, 알비스D'의 경우도 대표적인 개발성공 개량신약으로 꼽히고 있다. 이번 판매중지 조치로 인해 연간 575억원어치의 공급물량을 회수하는데 드는 간접비용까지 추가 손실이 예상되며 주력상품에 이은 타 상품의 매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알비스의 판매중지가 가스모틴SR정으로 대체가 된다면 이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지만, 오히려 특정 제약사에 대한 기피로 이어진다면 8년간 22억원을 들여 개발한 가스모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또한 이번 회수조치로 인해 라니티딘을 생산유통한 제약사와 제품 정보는 대중에 공개되는 만큼 해당 제약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다.

현재 식약처 등의 라니티딘 관련 정보공개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소비자원의 자료 등을 토대로 리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의약품의 리콜사태는 지난 2009년 원료에 탈크가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120개 제조업체의 1122개 품목이 판매중지, 회수조치됐지만 시간이 지나 잊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 발사르탄 사건으로 또다시 의약품 리콜사태가 이슈화 됐고 이제는 의약품도 안전정보 제공대상에 포함돼 국내 리콜정보 뿐만 아니라 해외 리콜정보 등 소비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제공된다.

≫ 제약사 잘못으로 오인될까 전전긍긍...정부 손실액 지원 불가방침

때문에 업체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제약사의 잘못이 아닌 불가피한 일임을 국민들이 인지해주길 기도하는 심정으로 정부의 조치에 유구무언하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 일각의 우려와 달리 26일 진행된 식약처의 설명회에는 220여명의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지만 감정을 억누른채 정부의 지원을 요구했다. 물론 NDMA의 위해성 기준과 향후 인체안전성검사 계획, 반품과정상의 가격차이 등 구체적인 질의도 나왔다.

그 외에는 수입원료의 문제로 인한 책임문제에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김명호 과장은 “개별 업체간의 계약에 의해 이뤄진 일인만큼 국가가 직접 개입하기는 어렵다”고 답했으며 향후 재정적 지원에 대해서는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제품의 문제로 인한 회수는 제조사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외국도 이미 라니티딘 의약품을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NDMA의 검출원인은 해외에서도 아무도 모른다. 원인을 알면 제거방법도 알겠지만 그렇지 않은 만큼 우리나라는 잠정적인 판매중지를 할 수 밖에 없다”며 “공정상의 문제가 있던 발사르탄과 달리 NDMA가 균질하지 않은 약품이라 솔직히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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