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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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폐증 치료제 개발에 대한 연구 논문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게시판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자폐증 환자의 가족들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연구 성과들을 주목하고 있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들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청원인 A 씨는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자폐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아이의 아빠다”며 “자폐 치료제인 발로밥탄이 임상시험 3상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뉴스도 봤다.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 자폐아 숫자는 이전보다 많아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밝혔다.

실제로 자폐증(자폐스펙트럼) 환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환자는 1000명당 7.6명의 유병률을 보이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자폐증을 포함하는 발달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4년 1만5680명에서 2018년 2만94명으로 28% 늘어났다. 자폐증이 대부분 생후 36개월 이전에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아 환자들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그동안 자폐증 치료제 개발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애정 호르몬의 일종인 옥시토신(oxytocin)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꾸준히 보고됐다.

2010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연구진은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옥시토신 1회용량 투여로 자폐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옥시토신 스프레이를 흡입한 자폐증 환자들이 공정함(fairness)과 같은 사회적 개념을 인식하고 상대방과 눈을 맞출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일본 하마마쓰 의대 연구팀도 옥시토신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의하면, 연구팀은 2개의 임상 시험에서 옥시토신 또는 위약을 스프레이 형태로 매일 2회씩 각각 20명과 108명에 투여하고 표정을 관찰했다. 6주 투여 이후, 옥시토신을 투여한 환자는 투여하지 않은 환자보다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옥시토신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오랜 시간 이뤄졌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소아정신과 홍순범 교수는 “옥시토신은 산모들이 분만할 때, 자궁수축작용을 하는 호르몬이다”며 “감정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준다. 옥시토신이 분만 자체뿐 아니라 아이와의 감정적인 교류에도 도움을 준다는 뜻이다. 자폐증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이기 때문에 옥시토신이 도움이 될거란 가설에 기반한 연구가 10년 이상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옥시토신과 같은 계열인 바소프레신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호르몬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미국에서 연구 성과가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과 카렌 파커 교수 연구진은 지난 5월 바소프레신을 자폐아의 코를 통해 분무한 결과, 사회성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6~12세 자폐아 17명에게 4주 동안 바소프레신 비강 스프레이를 투여하고 자폐아 13명에게는 위약을 줬다. 논문에 따르면, 바소프레신을 분무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과 비교했을 때, 사회성 평가에서 개선된 결과가 도출됐다.

반대로 바소프레신을 억제하는 기전의 약물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FDA로부터 혁신치료제로 지정받은 로슈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료제 발로밥탄(balovaptan)은 바소프레신 1a(V1a) 수용체 길항제 계열의 경구용 약물이다. 지난 3월 로슈 측은 성인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앞선 두 연구는 바소프레신을 촉진하거나 억제한다는 측면에선 기전 자체가 다르지만, 당초 타깃으로 삼았던 바소프레신이 자폐 증상 완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한다.

삼육대 약대 정재훈 교수는 “바소프레신은 옥시토신과 달리 혈압을 올리고 신장에서 물의 재흡수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한다”며 “소변이 몸 밖으로 나가지 않고 피로 들어가게 해서 혈액양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최근 바소프레신이 부족한 사람에게서 자폐 증상이 나타난다는 연구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자폐증 치료제로 시판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는 “자폐증은 뇌신경 발달과 관련된 문제다”며 “고혈압은 정상 수치 범위에 있다가 혈압이 올라가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반면 자폐증은 유전적 영향 때문에 뇌 발달에 장애가 생긴 경우라서 원인 자체를 밝히기 어렵다.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폐증은 사회적 관계가 떨어진다는 점이 핵심이다”며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또래 관계에 관심이 없고 기계나 컴퓨터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사회성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한계가 크다. 근본 원인인 뇌발달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임상시험 ‘대상자’의 연령과 특성에 따라, 자폐증 치료제 효과가 ‘제각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의 홍순범 교수는 “환자들은 기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연구 대상자의 나이가 중요하다. 자폐증은 보통 만2~3세 때 진단하는데 임상연구 대상자로 적합하지 않은 연령대다. 대부분의 연구들이 청소년이나 성인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효과가 제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스프레이로 뿌리는 형태이기 때문에 비강구조에 따라 약물 전달이 다를 수 있다. 옥시토신은 주목할 만한 약물이 맞지만 앞으로의 연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 데이터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 보면, 치료제의 시판이 아직은 ‘시기상조’란 뜻이다.

바소프레신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출신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자폐증 환자들의 특성은 자기표현이 없다는 것”이라며 “바소프레신은 소변양을 감소시킨다. 소변을 보지 못하면 방광에 쌓이는데 자폐증 아이는 언어표현을 할 수 없다. 방광에 손상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바소프레신이 획기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전문가들은 자폐 치료제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교수는 “옥시토신 연구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자폐증 인구는 적지만 병원에는 환자가 상당히 많이 온다. 임상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만큼 정부의 도움도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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