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국과 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허가된 신약에 대한 ‘재평가 도구’를 개발해왔다. 우리 보건당국도 최근 항암제 등 기등재 고가 신약을 평가하기 위해 ‘한국형 모델’을 만들면서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형 재평가 시스템에 핵심축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실제임상자료(RWD)에는 오류가 많은 만큼 이를 최종 약가 반영까지 재평가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의 평가도구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발표됐다.

이날 해외 선진사례를 들여다 본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고가 항암제 등에 대한 급여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급속도로 늘고 있는 만큼 신약 등재 이후의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급여 등재 후 약제를 공정하게 퇴출시키는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하다. 보건당국이 ‘한국형 모델’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뛰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달 '면역항암제의 등재 후 실제 임상자료에 근거한 사후평가 연구'에 대한 용역을 맡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지난 5월 '의약품 가치평가 방안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 제안요청서를 공개하고, 연구자를 모집했다. 이들 두 기관은 미국임상종양학회의 항암제 가치평가 도구(ASCO-NHB) 등 해외사례를 적극 참고하면서 ‘한국형 시스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학계에서도 가치평가 도구를 주목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류민희 교수는 최근 열린 '바이오헬스 산업의 미래, 신약 개발이 답이다' 토론회에서 ‘항암제 등 바이오 신약 가치평가 도구’에 대한 해외 각국의 사례를 공개했다.

 

류 교수에 따르면, 미국임상종양학회는 2015년 효능(임상적 이익), 안전성(독성), 그리고 효율(비용)의 측면에서 항암제의 가치를 정의하고, 3가지 요소를 결합한 기준을 통해 항암제의 임상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유럽임상종양학회의 항암제 가치평가 도구(ESMO-MCBS)는 ‘새로운 보조치료법 또는 새로운 잠재적 근치 가능한 치료법, 근치적 치료가 어려운 치료법’ 등의 기준을 정하는 방식으로 항암제를 평가한다. 특히 두 기관은 환자의 ‘삶의질’과 ‘증상완화’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류 교수는 “일부 고가 항암제의 경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치료 효과와 비용효과성이 불확실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며 “암 분야의 세계적인 양대 학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 와 유럽종양학회를 중심으로 항암제 등 신약의 ‘임상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이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고가 항암제에 대한 접근성 강화와 더불어 건보재정의 건전성, 지속성을 위해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신약의 가치평가 도구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도 이같은 움직임을 향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취지가 아주 좋다. 단순히 비용 효과성 평가에 의존해서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겠다는 뜻인 만큼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제 관건은 ‘실제임상자료(RWD), 실제임상근거(RWE)’다.

앞서 보건당국이 추진 중인 한국형 모델은 RWD와 RWE를 전제로 항암제를 재평가한다는 계획이다. 즉, 허가 당시 임상 자료가 아닌, 시판 이후의 실제 데이터를 수집해 재평가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제 임상현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재평가 도구로 활용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의사는 “실제 진료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오류가 많다”며 “특히 임상 허가를 위해서는 무작위 배정과 이중맹검이 필요하다. 하지만 RWD에는 무작위배정이나 맹검과 같은 절차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오류가 많고 신뢰하기 어려운 데이터라는 뜻”이라며 “물론 오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평가 도구를 마련할 때 통계학자와 데이터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류민희 교수도 토론회 말미에 “미국과 유럽의 가치평가도구는 수년에 걸쳐 개발됐다. 실제 임상 현장에 도입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ASCO의 평가 툴들은 세밀하게 다듬어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평가 결과의 약가 반영은 더욱 쉽지 않다”며 “우리 실정에 맞게 신중하게 접근해 가치평가 도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보건당국이 ‘한국형 시스템’의 미래를 그릴 때 전문가들과 류민희 교수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