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방 보형물로 인해 희귀암 환자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환자등록연구를 한다고 밝혔지만 연구 자체의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환자등록연구의 ‘설계’를 위한 연구수준이면서 마치 환자등록연구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것처럼 홍보를 해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 이에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던 환자들 역시 격분하고 있다.

지난 1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성형외과학회는 국내에서 유방 보형물과 관련해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이하 BIA-ALCL)’ 환자가 보고됐다고 전했다. 당시 식약처는 “식약처는 현재 수입·제조업체와 함께 부작용 발생으로 인한 치료비 보상 등 대책을 수립 중이며 이달 말부터 유방 보형물 부작용 조사 등 환자 등록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약처는 인공보형물을 시술받은 환자들이 부작용 등의 문제를 제기할때마다 대안으로 ‘환자등록연구’를 제시해 온 것이다.

하지만 팜뉴스 취재 결과 9월부터 진행된다던 환자등록연구는 그야말로 ‘연구용역’ 사업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8월 28일부터 ‘인공유방 부작용 조사를 위한 환자등록연구’란 이름의 연구용역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 환자등록연구의 취지는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토대로 인공유방 이식 환자의 부작용에 대한 연구를 실시하고 해외 환자등록연구현황을 조사한 뒤 비교·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환자등록연구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식약처는 10개월간 6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으며 연구를 수행할 역학 분석 담당 교수를 비롯한 입찰을 완료, 이르면 내주 중 연구 계약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 등 해외 의약품 규제당국이 엘러간 인공유방 보형물에 대해 진행한 ‘환자등록연구’와 이번 식약처의 ‘연구용역’사업은 엄연히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식약처가 발표한 환자등록연구를 위한 연구용역은 말 그대로 ‘계획’에 불과한 초기 단계 수준”이라며 “환자등록연구의 설계를 위한 용역 연구를 마치 환자등록연구를 시작하는 것처럼 발표해서 국민들과 환자들을 호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ALCL에 대한 위험성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이번 연구용역 사업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이미 국내 환자가 발생한 상태다. 위험성이 표면 위로 드러났다. 환자등록연구를 위한 계획은 2~3개월이면 충분히 세울 수 있는데 10개월짜리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 엘러간 인공보형물 교체 수술을 받은 A 씨는 “환자등록연구가 바로 진행될 줄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고작 6000만원 짜리 연구용역이란 점이 너무 화가 난다. 10개월 동안 환자들이 ALCL이 발병할 수도 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다른 병이 생길 수 있는데, 식약처가 책임은 질 수 있냐”고 반문했다.

이번 연구용역에 배정된 예산에 대해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의 의사는 “예산이 6000만원 배정된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연구자 한 명의 인건비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며 “환자등록연구는 환자 1인당 검사비, 데이터 관리자 인건비 등 어마어마한 비용이 든다. 6000만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환자 A 씨도 “돈의 크기를 보면 식약처의 의지를 알 수 있다”며 “인보사 사태에 대한 환자 장기 추적 조사비용은 500억 이상으로 계산됐다. 겨우 6000만원 짜리 연구용역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실제 인보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식약처는 최초 투여 후 15년간 인보사 투여환자 전체에 대해 유전자 검사 등을 실시, 이상반응(종양발생 등) 추적조사 계획을 밝혔다. 환자는 등록 후 6개월 안에 1차 검진을 마치고, 매년 1회씩 10년 동안 관리를 받고 이후 5년은 문진 등으로 확인하는 등 6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인보사에 대한 장기추적조사 계획이 진정한 의미의 ‘환자등록연구’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식약처는 환자등록연구 기반 구축을 위한 시스템 마련 역시 환자등록연구를 진행한 것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식약처 의료기기안전평가과 관계자는 “이번 환자 등록연구는 의료기기쪽에서 최초로 진행하는 것”이라며 “환자등록연구는 설계가 잘못되면 결과에 굉장히 많은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어떻게 연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 먼저 심평원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통해 유방암으로 재건수술을 받은 5700명과 ALCL를 포함한 부작용과의 인과관계를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음으로 미국, 영국 등 이미 환자등록 연구를 시행한 해외 사례를 분석해서 인공유방 이식 환자등록연구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환자들의 다급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오래 걸려도 제대로 연구를 해야 한다. 환자등록연구를 위한 디자인이 정말 중요하다. 예산 역시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식약처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의사는 “연구용역 결과가 10개월 뒤에 나온다면 구체적으로 환자등록연구를 시작하는 시점은 재원 마련 등을 생각할 때 훨씬 늦어질 것”이라며 “이제 연구용역을 시작할 정도라면 그동안 식약처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수만명의 피해자가 희귀암에 걸릴 수 있는 응급상황인데 식약처의 인식이 너무 안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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