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시중 은행에서 빌려다 쓴 돈(차입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조한 영업실적으로 인해 차입금 이자마저 감당해낼 수 없는 곳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자 규모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이미 초과한 곳도 다반사다. 이는 국내 상장 제약·바이오기업 5곳 중 1곳에 해당하는 얘기다. 본지는 1분기 연결보고서를 토대로 매출상위 상장제약사 78곳의 차입금 의존도와 이자 규모를 분석해 봤다.
먼저 이번 조사대상 기업들의 평균 차입금 의존도는 17.2%로 조사됐다. 차입금 의존도란 회사의 총자본에서 외부로부터 빌려다 쓴 돈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적정한 차입금은 자금 활용 측면에서 볼 때, 기업의 성과를 높여주고 설비 및 R&D 투자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만큼 그 규모가 보통 30% 미만이면 재무구조가 건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영업성과로도 이자부담을 감당해낼 수 없는 상태일 때는 얘기가 다르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바로 '이자보상배율'이다. 이는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이 이자를 지불한 후에도 얼마나 남았는지를 측정할 수 셈법이다. 만약 그 배율이 1이면, 영업이익과 이자비용이 같다는 의미다. 즉, 이자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는 얘기다.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일때는 이자가 이익보다 더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영업활동에 따른 수입이 없었는데도 이자로만 수십억원을 지불하고 있는 곳도 있었다. 즉, 이자보상배율이 마이너스인 기업들로, 여기에는 JW신약, 명문제약, 메타바이오메드, 동성제약, 에이프로젠제약, 삼성바이오로직스, 코오롱생명과학, 삼성제약 등 8개사가 포함됐다.
이 외에도 녹십자홀딩스(0.4), 차바이오텍(0.4), JW홀딩스(0.5), 서울제약(0.6), GC녹십자(0.7), JW중외제약(0.8), 셀트리온제약(1.3), 신풍제약(1.4), 우리들제약(1.5) 순으로 이자보상배율이 집계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1분기 영업적자를 낸 명문제약은 차입금 1,038억원과 사채 114억원을 빌려써 총 차입규모만 1,152억원으로, 차입금 의존도는 44.5%에 달했다. 연 이자는 1분기에만 11억원을 지불하면서 작년에 지급한 32억원의 이자 비용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 회사는 지난해 49억원의 영업이익에서 65%를 이자를 내는데 썼다.
수 년간 영업 적자를 지속해 오고 있는 에이프로젠제약도 이자비용으로만 2016년 42억원, 2017년 90억원, 2018년 74억원을 지불해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차입금 의존도는 14.7%에 불과했지만 분기 이자비용만 71억원에 달했다. 사실 이 회사의 차입금 규모가 8500억원(사채 포함)을 넘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이 부담한 이자 비용은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향후 이 회사의 성장이 부진할 경우 현재의 차입금 규모는 재무 안정성에 직격타로 작용할 수 있는 상태다.
녹십자홀딩스는 이자보상배율이 작년 2.8에서 0.4로 나빠졌다. 다만 지주사의 특성상 차입금이 많아 대체로 이자 규모가 크다는 점과 1분기에 일시적이었던 실적 부진을 감안하면, 이 회사가 시중은행에서 빌려다 쓴 돈의 규모는 아직까지 직접적인 리스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JW홀딩스도 이자보상배율이 0.5를 기록, 분기 이자만 102억원이 발생하면서 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채와 차입금 규모는 4,268억원 수준이다.
중견 제약사인 신풍제약은 2015년부터 올 1분기까지 이자보상배율이 2를 넘어선 적이 없다. 이는 일시적인 부진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영업을 통한 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고 여기서 남은 돈만이 순이익으로 발생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16년 186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영업이익이 90억원과 70억원에 달했지만 금융비용을 차감한 후 순이익은 각각 20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한미약품(40%)과 대웅제약(32%)은 이자보상배율이 각각 4.6과 5로, 이자를 지급하고도 남을 만한 충분한 여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동제약도 연 이자비용이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지만 이자보상배율은 15를 기록하면서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한편, 차입금의존도가 1%가 안 되는 ‘무차입’ 경영을 하는 곳도 11곳이나 됐다. 신일제약, 부광약품, 일성신약, 디에이치피코리아, 고려제약, 삼진제약, 에스티팜, 쎌바이오텍, 환인제약, 동화약품, CMG제약 등이 돈을 빌리지 않고 자체 조달하는 기업들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시설 및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면서 차입금 규모 부담도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며 “증시 환경이 좋아지면 공모를 통한 유상증자 등과 같은 직접금융을 통해 차입금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금리 인하 추세 속에 은행과 금리를 낮추는 협의 역시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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