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밍아웃(암과 커밍아웃의 합성어)’을 외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투병기를 공개하면서 암환자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내고 있다. 수많은 누리꾼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는 이유다.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11만3059명으로 집계되고 있다(1월 28일 현재). 2009년 법원이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김할머니 사건’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셈이다.

‘웰다잉’을 바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죽음은 이제 더이상 ‘금기의 단어’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암환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너도나도 채널을 개설하고 있는 까닭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영상을 통해 암으로 인한 ‘절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유쾌하고 재미있게 암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것.

유튜브 채널 ‘암환자 뽀삐’의 메인 동영상 제목은 ‘24살에 난소암 3기 환자가 된 이야기’다. 하지만 영상 속 주인공들 대화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뽀삐는 “출근도중 지하철 안에서 두 번 쓰러졌다”며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쓰러진 건 아니고 정신을 잡을 정도의 ‘쓰러짐’이었다. 정말 아팠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초음파를 봤더니 ‘혹 모양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1년 12월 12일 결국 수술방에 들어갔는데 8시간이 지나고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다”며 “난소랑 자궁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술직후에는 암인지 몰랐지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뽀삐는 영상 속에서 울지 않았다. 그저 태연하게 ‘암밍아웃’을 고백했다.

뽀삐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유는 뭘까. 그는 다른 영상에서 “숨는 암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암 투병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라며 “암환자들 역시 일반인처럼 재밌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유튜브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뽀삐의 채널에는 ‘항암치료와 일 병행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암환자도 혼자살 수 있다’ 등 암환자에 대한 편견을 잠재우기 위한 콘텐츠가 가득하다. ‘암환자의 운동법’, ‘항암약 부작용’ 등 다른 암환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영상도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전혀 없다. 절망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노래하는 뽀삐에게 약 2만명의 누리꾼이 지속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까닭이다.

또 다른 유튜브 크리에이터 ‘블랑베키’는 메인 동영상에서 “저는 직장암 4기 환자다”며 “발랄하고 사랑스런 두 아들을 돌보는 엄마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밝혔다. 영상 속에서 블랑베키는 침착하고 당당한 표정으로 ‘암밍아웃’을 외치고 있다.

블랑베키는 “직장암 수술 6개월 뒤 장루복원 수술과 폐암 수술을 연이어 받았다”며 “보통은 암환자들의 몸과 마음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감사한 마음이 크다. 다른 직장암 환자들도 부정적인 글이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염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은 에너지를 품으면 빠른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블랑베키는 주로 시카고, 일리노이 등 미국 지역 여행기는 물론 소소한 일상을 찍은 모습을 담은 영상을 공개 중이다. 의자를 사기 위해 가구점에 가거나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는 장면은 누리꾼으로 하여금, ‘마치 암환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게 할 정도다.

직장암 환자들은 인공항문(장루)을 만드는 수술을 받으면 평생 또 다른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복부와 회음부 일부를 잘라내 암이 생긴 직장과 결장의 일부를 절제한 뒤 대변의 배출 통로인 장루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랑베키는 또 다른 영상에서 “처음에 장루를 마주했을 때 생각 외로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의연한 모습으로 오히려 직장암 환자들을 위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는 “장루판이 뜨는 현상이나 냄새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방수테이프를 적당한 크기로 길게 잘라서 붙이면 장루가 들뜨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뽀삐와 쁠랑베키에게 암은 더 이상 ‘절망의 메타포’가 아니다. ‘암밍아웃’을 당당히 외치면서 자신의 투병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암환자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깨부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유튜브 채널이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있는 이유다.

최근 암환자의 투병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김만진 MBC 교양 PD는 “요즘 사람들의 화두는 죽음이다. 죽음과 질병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전보다 훨씬 늘었다”며 “그런 측면에서 암환자들이 유튜브 채널에서 자신의 질병을 유쾌하게 스토리텔링하는 것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삶을 긍정하고 끝까지 살아가는 모습이 남다른 감동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