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역사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의 개설을 추진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 반발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의협 측은 의료영리화, 감염 위험성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일부 개원의들은 찬성 의사를 드러내면서 의사 사회가 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여론이 엿보이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내에 시민편의형 의원·약국 임대차 입찰 공고를 냈다. 강남구보건소의 수리 거부로 사업이 잠시 중단된 상태지만 대한의사협회는 1일 "지하철 역사 내 의료기관 개설을 시도하는 행위는 의료를 포퓰리즘과 돈벌이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전형적인 의료영리화의 일환이다"고 강력 비판했다.

의협 측 반대 주장의 가장 큰 논거는 ‘감염’이다. 의협은 “지하철 역사 내 의료기관은 위치적 특성, 즉 유동인구가 많은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그만큼 감염위험이 높다. 특히 화재 등 재난 시에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신속한 대피가 어렵다"며 "여러 가지 사유를 감안해 의료기관 개설 장소로는 부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선 의사들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의협이 반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사람이 많은 곳은 어디든 감염이나 화재에 대한 위험이 높아진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그 부분을 따로 통제하면 된다. 환자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곳이 지하철역이다. 신규 의사들은 서울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갈 곳이 없다. 먹고살기 힘든 현실에서 의협이 이런 부분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고 성토했다.

의협이 꺼낸 ‘감염 카드’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지하철역 내 의료기관 개설의 ‘빗장’을 푸는 것이 장기적으로 의료계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지하철 디지털미디어시티역(6호선)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들어서 있는 상황이다. 2016년 4월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역사에 의원과 약국을 유치하기 위해 '메디컬존' 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당시 의협을 포함한 의사 단체는 거세게 반발했고, 수개월간의 유찰이 이어지면서 사업이 무산될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역사 내에 의원급 의료기관이 개설된 것.

그렇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견은 어떨까. 7월 2일 오후 5시경 기자가 강남구청역을 찾았을 당시 시민들은 대체로 찬성 의견을 전했다.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지하상가 전경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지하상가 전경

A 씨(54·여)는 “지하철역에 병원이 생긴다면 편할 것 같다. 접근성이 워낙 좋기 때문”이라며 “의협이 환자간의 감염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근다’는 얘기와 똑같다. 감염은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지하철역 주변 의원들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라는 뜻이다. 시민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B 씨(85)는 “평소에 귀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갈 때가 많다”며 “몸이 거의 종합병원 수준인데 역에 이비인후과가 있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임플란트 시술을 받은 이후로 갑자기 치통이 올 때도 많은데 지하철역에 치과가 개설되면 상당히 편리할 것 같다”고 밝혔다. 환자들의 ‘편의성’ 측면에서 역내 의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 측의 또 다른 논거는 ‘의료 영리화’다. 의협은 “단순히 유동인구가 많다는 위치적 특성과 국민편의를 이유로 내세워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의료 포퓰리즘이고 의료상업화를 위한 시도다”며 “환자 안전이나 보호보다는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사무장병원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의사들은 의협 측의 의료영리화 주장은 ‘확대해석’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앞서의 의사는 “현행법상 의원급 의료기관이 지하철역에 의료법인의 형태로 들어갈 수 없다”며 “더구나 입원 병동은 2층 이상의 건물에만 설치가 가능하다. 지하실에는 입원 병동을 설치할 수가 없다. 대형화 시킬수 있는 공간도 아니다. 거대자본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의협이 궁여지책을 찾다보니 억지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협 측의 세 번째 논거는 ‘공익성’이다. 의협 관계자는 “지하철 역에서는 환자에 대한 위험 관리가 어렵다”며 “지하철역은 환자가 제대로 된 환경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곳이다. 무조건 편의성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의료기관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호프집이나 매점처럼 아무 장소에나 지어질 수 없다. 공사가 임대 수익에만 골몰한 나머지 의료기관들을 유치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료계 일각에서는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의사는 “지하철은 유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응급환자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장소다”며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경우에 1차 의료기관은 환자들에게 필수적이다. 환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1차 의료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할 수 다. 지하철역 내부를 시민들에게 열면, 1차 의료기관을 살리는 것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사회 내부의 갈등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 측은 사업 추진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의사들이 지하철 역 내 상가에 대해서 문의를 많이 해왔다”며 “이번 정책은 수요에 따른 업종다변화에 방점을 두었다. 의료영리화나 임대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임대료도 싸고 권리금도 없는 데다 인구가 많은 곳에 의사들의 수요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향후 구청과 협의를 통해 사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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