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은 R&D 비용을 투자하는 제약사 로슈와 노바티스의 본고장인 스위스보다도 우리나라의 R&D 투자가 더 많다는 황당한 보고서가 나왔다. ‘보건의료 R&D 통계’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다름 아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만들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최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전 세계 주요국 및 국내 R&D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공개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진흥원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보고서에서 단순 오타라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통계 오류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

‘보건산업분야 민간 기업 R&D 투자 현황’이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의 ‘국가별 기업 R&D 투자 현황’에서는 우리나라 제약사 11곳이 연구개발에만 74억200만 유로, 한화로 약 10여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R&D에 투자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1개 제약사가 평균 9천여억원의 비용을 투자한 셈이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253개 기업이 R&D에 727억2,500만 유로(약 95조8,371억원)을 지출했다고 했다. 미국 제약사 1곳이 평균 3,800억여원을 투자할 때 우리나라 제약사들은 2.34배 많은 비용을 연구개발에 쏟고 있는 이른바, ‘빅파마’였다는 의미다.

스위스의 R&D 지출 규모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이 나라의 13개 기업은 연구개발 비용으로 14억2,500만 유로(약 1조8,779억원)를 지출했다. 보고서대로라면 스위스의 R&D 규모의 우리나라의 1/5 수준밖에 안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R&D 통계' 보고서 발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R&D 통계' 보고서 발췌

이같은 수치는 최근 5년간 전 세계 32개국의 R&D 민간 기업수와 예산을 기록한 ‘EU Industrial R&D Investment Scoreboard’의 각 연도별 자료를 진흥원이 취합하는 과정에서 단순 오류가 발생한 데에서 비롯됐다.

보건의료분야 보고서는 좁게는 이해당사자와 민간기업의 사업에 활용되고 넓게는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 정보의 중요성 때문에 보건산업진흥원이나 보건의료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 다양한 연구 및 사업 수행기관이 만들어지고 보건복지부 출연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의 R&D를 포함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시점에서 진흥원은 기본적인 수치확인조차 되지 않은 보고서를 버젓이 대중에 공개했다. 이로 인해 전세계 제약사 R&D 현황은 이상하게 왜곡돼 혼선을 빚고 있었다.

실제 이 보고서에 나온 전 세계 제약사들의 R&D 비용은 대부분 이상하다.

일단 지난해 전체 32개국 485개 제약사는 연구개발에만 1,535억6,100만 유로(약 202조3,627억원)를 지출했다. 이는 5년 전 391곳의 제약사가 총 1,086억300만 유로(143조1,170억원)를 투자한 금액보다는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가별 세부적인 기록은 작년 자료만 봐도 큰 폭의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일본 제약사의 한해 R&D 비용 124억1,200만 유로(2016년 기준)는 1년새 갑자기 24억4,500만 유로로 줄었다. 18억4,200만 유로를 투자하던 중국은 그 기간 119억6,100만 유로로 그 규모가 6배 이상 늘었다. 제약강국인 스위스 역시 187억7,100만 유로에서 1년 새 14억2,500만 유로, 프랑스도 69억1,500만 유로에서 34억400만 유로로 두 곳 모두 R&D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다.

이에 비해 덴마크는 30억7,800만 유로에서 168억4,400만 유로로 연구개발 투자를 5배 가량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5억300만 유로에서 74억200만 유로로 15배 가까운 R&D 투자를 강행한 국가로 표현됐다. 인도도 16억3,700만 유로에서 47억6,800만 유로로 연구개발 규모를 대폭 늘렸다고 표기했다.

아무리 제약사별로 파이프라인에 따라 당해년도 R&D투자 예산이 달라질 수 있다고 쳐도, 글로벌 빅파마를 보유한 나라가 하루아침에 투자를 10배 이상 줄이고, 반대로 우리나라가 그 만큼의 예산을 투입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같은 의문은 이 보고서의 ‘R&D 투자 상위 50개 기업 현황_제약’에서 단순 오류라는 것이 드러남으로써 풀렸다.

앞선 표와 같은 출처를 참고했다는 이 현황에는 지난해 기준 글로벌 R&D 투자 1위인 스위스제약사 로슈의 연구개발 비용이 88억8,500만 유로로 기재됐다. 한화 약 11조7,087억원으로 그해 스위스 13개 기업이 통틀어 지출한 R&D 예산이라던 1조8779억원 보다도 10배 많았다.

당연히 지난해 기준 4위를 기록한 스위스의 노바티스 예산도 73억3,100만 유로(9조6,608억원)로, 국가별 R&D예산 통계는 오류로 드러났다.

여기서 같은 기간 스위스보다 5배나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는 우리나라는 50개국에 포함된 제약사가 한곳도 없었다. 지출이 대폭 늘었다는 덴마크도 ‘노보노디스크’가 최근 1년간 지출한 R&D가 19억3,200만 유로로, 전년도 19억9,600만 유로와 별반 차이가 없어 19위에 그쳤다. 덴마크의 ‘룬드백’도 3억5,100만 유로를 투자해 42위를 기록했지만 금액으로만 봤을 때는 47위를 했던 전년도 3억5,500만 유로보다 줄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R&D 통계' 보고서 발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R&D 통계' 보고서 발췌

하지만 이러한 통계 오류는 본지가 해당 부서에 확인을 요청한 후에서야 인지가 됐다.

보건산업진흥원 담당자는 단순 실수임을 인정하면서 관련 데이터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본지에 다시 보낸 자료를 보면 한두 국가의 수치 오류가 아닌 아예 국가자체가 서로 뒤바뀌면서 발생한 오류였던 것.

이에 진흥원은 4일 ‘보건의료기술종합정보시스템’ 자료실에 수정된 파일을 재게재 했으며 이같은 수정공시 내용을 안내했다.

이같은 통계 자료가 공개되면서 업계에서는 보건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큰 착오라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것은 단순 실수라고 보기에는 큰 문제”라며 “정확성을 기해야 하는 공공기관의 통계데이터가 이렇게 황당하게 나온 것은 기본적인 산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의료계 한 관계자도 “기본적인 점검도 하지 않은 잘못된 정보가 공개돼 이를 활용할 때 큰 오류를 범하게 한다”면서 “이번 문제는 보건산업진흥원이 발표한 통계 전체에 대한 신뢰에 의구심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 4일 보건의료기술종합정보시스템에 '보건의료 R&D 통계' 보고서의 수치 오류에 대해 안내하고 정정공지를 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지난 4일 보건의료기술종합정보시스템에 '보건의료 R&D 통계' 보고서의 수치 오류에 대해 안내하고 정정공지를 했다.

 

이같은 사실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흥원의 실수로 인한 착오가 맞다. 앞으로 검증을 강화해 이러한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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