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류 의약품 처방 관련 통계가 공개되자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한쪽에는 최근 들어 무통분만이 증가했기 때문에 나온 자연스러운 통계치라고 보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기존 수기에 의존하던 처방행태가 이제는 전자시스템 기록 도입으로 뒤늦게 데이터로 잡히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2018 급여의약품 청구현황'에 따르면, 전체 요양기관에서 488만 2000건의 의료용 마약의 급여청구가 이뤄졌다. 이는 2017년(450만 건) 대비 8% 증가한 수치다. 향정신성 의약품도 2017년(358만 5800건)에 비해 3% 증가한 367만 9500건이 청구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류 의약품 처방건수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의원급 의료기관의 마약류 급여 의약품 처방건수와 처방액이 급증했다는 것.

‘팜뉴스’가 25일 의료용 마약의 종별 처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원급 의료기관의 2018년도 의료용 마약의 급여 청구액은 13억3200만원으로 전년대비(11억17000만원) 19%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상급종합병원(15%)과 병원(11%)이 의원급 의료기관의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처방건수 증가율(7%)에서도, 의원급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14%)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통계의 기준 시점을 앞으로 당기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의료용 마약 처방의 ‘상승세’는 더욱 돋보인다. 최근 4년간(2015~2018) 의료용 마약의 급여 청구 자료를 살펴보면, 급여 처방액은 137% 늘어났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2018년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 건수 역시 8153건으로 전년대비(7313건) 11% 증가하면서 종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종합병원과 병원급(5%)을 제친 수치다. 최근 4년간 향정약 급여 청구건수에서도 의원급 의료기관은 26%p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마약류 의약품 처방 ‘상승세’를 이끈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산부인과’다. 이 곳의 2018년 의료용 마약 처방 건수는 43건이다. 이는 전년대비(29건) 약 48% 늘어난 수치다. 산부인과가 소아청소년과(33%)와 마취통증의학과(13%)를 제치고 전년대비 증가율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한 것. 산부인과는 이 기간 처방액에서도 30%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향정신성 의약품 관련 통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산부인과 처방액(26%)은 정신의학과(12.8%)를 제치고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처방건수(15%)도 재활의학과(10%) 보다 많은 등 다른 과들을 압도했다.

그렇다면 산부인과의 마약류 처방 실적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의사는 “요즘 환자들은 마취를 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궁 내 피임기구인 루프를 빼달라고 할 때도 마취를 요구한다. 통증을 참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혈관에다가 주사를 넣고 시간별로 모든 수술의 통증에 대해 적극적으로 마약류 약물을 쓰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무통분만이 굉장히 늘었다”며 “원래 무통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요즘은 모든 산모가 무통분만을 해달라고 한다. 무통분만을 하면 산통이 상당부분 경감된다”고 말했다.

펜타닐은 산부인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마약성 진통제다. 펜타닐을 국소 마취 형태로 주입해 감각신경만 차단하고 운동신경은 살리면서 산통을 조금이라도 약하게 만드는 것이 무통분만의 주목적이다.

통계도 이같은 흐름을 입증해왔다. 제일병원이 ‘2015년 한 해 동안 무통분만 시행건수’를 집계한 결과 임신 37주 이상 단계에서 자연분만을 시도한 초산모 1550명 중 1450명(94%)가 무통분만을 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당시 이 병원의 무통분만 시행률 3.8%였던 점을 고려하면 임산부들의 무통분만 선호 현상은 ‘대세’로 자리잡은 것이다.

물론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이번 통계는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 도입으로 정부의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나온 착시현상”이라며 “원래 의료용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 데이터를 수기로 기입했는데 이제는 전자시스템에 기록할 수밖에 없다. 산부인과에서 쓰는 펜타닐이나 프로포폴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뒤늦게 데이터로 잡히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식약처는 지난해 5월 18일부터 마약류취급자 및 승인자가 마약류 제조·수입·유통·사용 등 모든 취급 내역을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보고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펜타닐, 프로포폴 등 마약류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마약류 안전관리망 구축이 주된 목적이었다.

앞서의 전문의는 심평원의 통계가 자칫 산부인과에게 마약류 오남용의 이미지를 덧입힐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산부인과가 마약류를 많이 쓰는 것처럼 보이는 점이 유감이다”며 “지난해 상반기까지 마약성 의약품에 대한 재고가 남아있었지만 하반기에 새로 약을 구입하고 마통에 입력하면서 착시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통계가 많이 잡혔다는 이유로 우리가 마치 마약를 무분별하게 쓰이는 것처럼 국민들이 오해할 수도 있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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