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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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신부전증 환자들이 최근 야간 투석 병원을 늘려달라는 청와대 청원을 제기했다. 신부전증 환자는 매년 늘고 있는 가운데 야간에 운영하는 투석실을 갖춘 의료기관의 부족으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모양새다.

만성신부전은 원인질환과 관계없이 신장이 손상되거나 사구체여과율이 분당 60ml 이하인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다. 말기신부전은 신장 기능의 90% 이상 손상된 상태로 사구체여과율이 분당 15ml 미만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장이식이나 투석을 받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환자들이 인공신장시설을 갖춘 의료기관에서 한회 4시간씩 일주일 동안 3회 정도 투석을 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혈액투석 의료기관의 ‘쏠림’ 현상은 신부전 환자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원인이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진동찬 교수가 2013년 발표한 ‘말기신부전 환자의 투석현황’에 따르면, 투석치료 시행 의료기관은 2011년 기준 약 700여개, 혈액투석기는 약 16600여대다. 혈액투석기의 47.3%가 수도권에 설치됐다. 만성신부전 환자들이 혈액 투석을 위해 위험천만한 ‘원정’을 떠나야 하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신장내과 전문의는 “당뇨로 인한 신부전증은 5년 생존율이 위암보다 좋지 않다”며 “뇌졸증, 심근경색은 물론 치료하다가도 사고가 날 수 있는 시한폭탄같은 존재다. 투석도중에 혈압이 많이 떨어져서 사망할 수도 있고 투석 이후에 이동과정에서도 대형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더욱 큰 문제는 의료기관 ‘쏠림’ 현상이 야간투석의 ‘지역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이다. 청원자 A 씨는 6월 19일 “대구에서 낮에 일하고 저녁에 투석을 받고 있는 2급 장애 환자다. 이번에 군산에 있는 새만금개발공사에 최종 합격권에 있는 상태이지만 군산에는 야간투석병원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산에서 일하고 야간투석을 받기 위해 전주로 가는 환자들도 상당하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군산의료원과 같은 국립병원에서는 야간투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간 투석 병원의 ‘태부족’으로 환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거주·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군단위 지역은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남 강진군에 인공신장실을 갖춘 의료기관은 A내과와 강진의료원뿐이다. 두 곳은 야간투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강진의료원 관계자는 “야간투석은 광주광역시까지 가야한다. 야간 투석을 하는 의료기관은 이쪽 지역에 없다”고 밝혔다. 전남 강진에 사는 신부전증 환자들이 야간 투석을 받기 위해1시간 20분 동안 차를 타고 한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신부전증 환자들은 ‘야간투석’에 대한 알권리마저 제한당하고 있다. 야간투석을 제공하는 의료기관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서는 환자들이 ‘혈액투석’ 병원의 위치와 연락처를 검색할 수 있는 ‘병원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시간을 누락한 의료기관들이 부지기수인 것은 물론 야간투석 여부는 검색조건에 누락된 상태다. 대한신장학회도 투석병원 목록을 제공중이지만 야간투석 의료기관을 따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법령상 진료시간이나 야간 투석 여부에 대한 신고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요양기관들이 스스로 신고하지 않는 이상, 홈페이지에서 투석 관련 내용을 보충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신부전증 환자들이 모인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야간투석 병원 위치에 관련된 문의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네이버 ‘신장병 환우 모임’ 카페의 한 회원은 최근 “다니는 병원에서 갑자기 야간 투석을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처의 야간 투석 병원은 인원이 가득찬 상태다”며 “혹시 야간 투석이 가능한 병원이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읍소했다.

다른 회원 역시 “업무를 마치고 야간 투석을 하려고 하는데 집과 직장 근처 병원들에 야간 투석 자리가 없다”며 “갑자기 우울하다. 회사를 휴직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야간 투석 의료기관이 부족한 이유는 뭘까.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투석실은 체내 혈액을 뽑아서 다시 넣어주는 과정에서 신장의 부담을 높이는 시설”이라며 “의료진과 간호사가 꼭 상주해야 하지만 의원급이나 중소병원에서는 야간에 간호사를 많이 둘 수 없다. 환자수요도 적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현실적으로 이익이 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신장 내과 의사는 “10년 동안 투석 수가는 고작 1만원이 올랐다”며 “저수가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간호사와 페이닥터들에게 일당을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결국 야간 투석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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