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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평원 있기까지 돋보인 ‘팀워크’
오늘의 심평원 있기까지 돋보인 ‘팀워크’
  • 양금덕 기자
  • 승인 2019.06.17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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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세월 마지막은 감사실서...예방적 기능 강화
“의약계와 심평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건강보험되길”

김두식 감사실장(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우리나라 국민 5,256만명이 가입한 그야말로 全국민건강보험이 정착되기 이전에는 직장·지역 조합,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공·교공단) 등이 세분화 돼 있었다. 21년 전 지금의 통합보험을 만들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의료보험연합회는 특별팀을 꾸렸고 수개월간 여인숙에 묵으며 모든 시스템과 문서를 手 작업했었다고 한다. 이후 탄생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외형은 물론 역할이 점점 확대돼 지금에 이르렀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해온 심평원 김두식 감사실장이 어느덧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32년을 한결같이 심평원에 몸을 담을 수 있었던 그 특별한 이유를 팜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김두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감사실장
김두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감사실장

김두식 감사실장은 심평원의 전신인 의료보험연합회가 발족된 1987년 새해에 첫 신입직원으로 입사했다. 내달부터 공로연수를 가게 되니 32년 6개월을 꼬박 심평인으로 생활했고, 그 마지막 코스로 감사실장직을 수행 중이다. 감사실은 심평원 내부 부서 모두를 감찰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두식 실장은 시대가 변하는 만큼 처벌이나 제제 등 사후 징벌적인 기능보다는 예방적인 관리에 중점을 두도록 바꿔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부장시절에 감사실 업무를 할 때보다도 훨씬 전문성이 높아졌지만, 직원들이 볼 때는 규정위반이나 부패 등 감시기능이 있어 권력처럼 비춰져 업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예방적 감사 기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업무인 만큼 ‘준감사인제도’를 활성화해 심평원이 보다 능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동안 감사실을 거쳐갔던 직원들을 해당 부서의 준감사인으로 임명해 부서 내 개선점이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실제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형태로 바꿔가고 있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그는 비서실장, 기획조정실장, 급여조사실장, 심사운영실장 등 심평원 본원에 주요 부서를 다 거치고 대전지원장 등 지역 의료기관 및 약국과 소통하는 자리도 경험했다.

김 실장은 “지나고 나서 보니 많은 부서를 거쳤던거 같다. 세어보니 20번 정도 인사발령을 받았다”며 “부서가 통합되기도 하고 외부 파견을 나가기도 하면서 여러번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 때를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컴퓨터 등 최신 전자기기 없이 손으로 모든 업무를 해야했던 전국민의료보험 확대 준비 시절이라고.

일은 많았지만 재밌었다는 김 실장은 “그 시절은 컴퓨터 보급도 안되서 모든 일이 수작업에 의해 이뤄졌다”며 “연합회와 복지부가 같이 팀을 꾸려 과천에 있는 여인숙에서 밤을 새워가며 조합설립 업무를 했다”고 말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자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교훈이 되었던 만큼 신규 직원들에게도 동료와의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지금은 그때 멤버들이 다 퇴임을 하고 막내였던 제가 이제 퇴직을 앞두고 있네요. 저는 종종 그때를 떠올리며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곤 해요. 일의 많고 적음을 떠나 팀워크가 일을 좌우한다고 말이죠.”

≫ 아쉬움보다 기대감이 큰 심평원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하루 24간의 절반이상을 심평원에서 생활해 온 그에게 동료와 후배란, 가족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이미 가족이 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후배들에게 심평원을 집처럼 가족처럼 느끼는 주인의식을 잊지 말아주기를 당부하기도 했다.

김 실장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정말 심평원 직원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내부나 외부 평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와서 안타깝다. 내 직장, 내 자리라는 생각이 애정을 만들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고, 주인의식이 밑거름이 되면 배려하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외부에서도 심평원과 함께 하는 전문가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도 살짝 전했다.

심평원에는 심사 및 평가전문위원, 심사실 및 약제실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의사, 약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이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전문가들이 심평원과 손 잡고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김 실장은 “2000년대 초반에 인사부에 근무할 시절 약사 직능이 확대 채용된 적이 있다. 그들의 전문성과 노하우 등을 심평원 업무에서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때 가장 아쉬운 점은 많은 약사분들이 채용됐지만 이직률이 높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문직은 그에 적절한 처우도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그 과정은 이어나가고 있다”면서도 “앞으로도 약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건강보험은 의약계의 참여가 없이는 유지, 발전이 어려운 만큼 전문가들이 많은 의견을 내주고 함께 심평원업무에 참여해 같이 발전시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영원한 심평인, 함께 한 보건인은 재산

그가 요즘 들어 자주 듣는 말이 “시원섭섭하지 않나”, “앞으로 뭐하고 싶냐”이지만, 처음으로 그는 비움의 자세를 가지려 한다.

김 실장은 “공로연수까지 더하면 33년하고 6개월을 심평인으로 살아 제 삶의 전부가 됐다”며 “아쉬움도 있지만 보람있는 일이 많았다. ‘어’하니 ‘다 지났네’라고 새삼 느끼게 되는게 전부다. 일에 전념해서 그런건지 시간은 나를 생각하지 않고 알아서 지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세월의 흐름을 느낄때가 있다면, 어느샌가 사무실 책상머리에 담배 재떨이가 사라진것과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아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때라고.

그리고 남은건 그와 함께 건강보험을 위해 일해온 많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의 휴대폰에 수록된 3000여명의 연락처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자, 재산이다.

김 실장은 “직원뿐만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을 알고 떠난다는 것이 보람된다. 연락처 속 사람을 모두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들과 쌓은 추억과 경험은 32년의 제 재산이다. 심평원에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공로연수 동안 그는 그동안 하지못했던 소소한 삶을 살아갈 예정이다. 심평원 스케줄에 따라 움직였던 시간을 오롯이 자신을 위해 써보고 싶다고

그는 “생각나는대로 나의 24시간을 보내볼까 한다. 자고 싶으면 자고, 한밤중에라도 하고 싶은게 있다면 해보고 싶다”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과 그에 따른 노력을 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저는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심평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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