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을 조제하는 과정을 볼 수가 없어 무자격자의 조제, 위생관리 소홀 등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최근 4년간 8,384명, 연평균 2,096명이 약사법 위반으로 경찰에 기소·송치됐다."

이는 조제실 투명 의무화를 또 다시 표면으로 나오게 한 국민권익위원회의 근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이제는 조제실 설치 기준이 아닌 약제 업무 전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모양새로 바뀌고 있다.

지난 2월 권익위는 약국 조제실이 폐쇄적이라 이를 개선하는 국민의 요구가 높으니 이를 복지부가 개선하라고 했다. 권익위의 결정은 간단 명료했다. 모든 약국의 조제실 내부를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할 것을 의무화하라는 것. 현행 ‘약사법 시행령 제22조의 2(약국의 시설 기준)’에는 약국은 조제실을 갖추면 되지만, 이 조제실을 외부서 확인할 수 있게 구체화하라는 것이다.

일대 약사사회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전국 보건소를 통해 약국의 조제실 운영현황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약국에 설치된 조제실을 ‘투명’한 정도에 따라 4가지(완전히 확인가능, 일부 확인가능(조제자 또는 조제상황), 확인불가 등)로 나눠 자발적인 현황신고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12일, 복지부는 ‘약국 및 의료기관 약제업무 관리지침 개발’이라는 연구용역을 실시하기로 하고 연구자 모집에 들어갔다.

다만, 복지부가 계획한 연구용역이 조제실 설치 기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약사들의 약제업무에 대한 관리 기준과 지침으로까지 전면 확대된 것.

우선, 이번 연구는 외국의 약국 및 의료기관 약제업무에 대한 관리 기준과 지침은 어떤지 현황을 조사하겠다는 점이 명시돼 있다. 실제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을 예로든 만큼, 해외의 가이드라인처럼 시설 및 장비, 작업자의 자격, 제조과정, 취급 및 보관 등의 기준을 참고로 한 '한국형 약제관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조제실 내의 약사 업무 범위도 제시하도록 해 의약품 조제와 복약지도 등 약사 업무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까지 관리할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약제업무 관리지침을 만든다면서, "조제 및 복약지도 등 약사업무에 대한 환자의 신뢰도를 높여 복약 순응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제시하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는 것. 이처럼 아예 정책적, 구조적, 기능적 방안 등을 제시하라고 명시한 것은 조제업무 자체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데 연구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그간 조제실과 관련한 연구들이 궁극적으로는 의약품의 안전성 강화 등을 위한 세부 관리방안 등에 초점을 둔 것과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약국을 포함한 의료기관에 대한 설치 등 시설 기준을 이 ‘안전성’에 중점을 둬 왔다. 그간 관련 법에서는 해당 시설의 정의에 맞는 시설 및 장비에 대한 보유 여부를 명시했다.

때문에 지난 2017년 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에야 후속조치로 음압격리병실 등 일부시설에 대한 설치 규모(병상간 거리, 면적 등)가 의료법 시행규칙 상 새롭게 신설된 것이다.

하지만 권익위의 조제실 투명화 의무도입 권고 이후 약국 및 의료기관에서는 투명한 조제실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두고 적잖은 반발을 일으켰다. 그간 어느 시설에 대한 규정에서도 '투명한'이라는 구절은 보지 못했기 때문.

더구나 복지부는 약사의 조제업무에 대한 국내외 관련 제도와 법규까지 조사할 예정인 만큼 일선 약제실 사정이 무시될까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약계 한 관계자는 “이번 연구가 다양한 약국 및 약제실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라며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연구 결과가 나와야지 비단 외국 등의 사례를 들어 이상만을 쫓아서는 안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연구가 조제실 투명화 자체가 실현가능성이 어려운 만큼 그 대안으로 자체 자정과 개선을 통한 국민들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방안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어 향후 복지부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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