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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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용 한방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시범사업 시행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이전투구가 격화되고 있다. 정부의 첩약 급여화 추진 의지가 강한 상황이지만 관련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갈등이 수습되기는 커녕 점차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20여년간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한방의약분업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사안인 만큼 합의안이 도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한약사회, 시민단체들은 첩약 급여화 추진을 논의하기 위해 ‘한약급여화협의체(이하 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협의체 산하에 3개의 실무협의체(첩약 분과, 한약제제 분과, 제도개선 분과)를 두고 해당 분과별로 각 단체들이 참여위원을 한 명씩 선정, 세부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협의체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온전한 논의의 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3개의 실무협의체 중 첩약 분과는 처음부터 약사회가 참여를 거부했고 한약제제 분과는 한의협이 지난 3일 탈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애초부터 첩약급여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겠다는 의지 보다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산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의도가 다분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한의협은 ‘첩약급여화 논의 찬성-한약제제 분업 논의 반대-한방의약분업 논의 반대’, 한약사회는 ‘한방의약분업을 전제로 한 첩약급여화 논의 찬성-한약제제제 분업 논의 찬성’, 약사회는 ‘한방의약분업 전 첩약급여화 논의 반대-한약제제 분업 논의 찬성’으로 입장을 정리한 상황인데 이들 모두 어느 하나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 단체들은 정부의 첩약 급여화 추진 과정에서 어떤 실리를 얻으려고 하는 걸까.

우선 한의협은 첩약 급여화를 통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한의사의 입지를 넓히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보인다. 약사와 한약사 등의 첩약급여 참여, 내부 합의 부족 등의 문제로 내홍이 있었지만 첩약 급여화를 통해 침과 뜸으로 축소된 진료 영역을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

한의협은 내부의 첩약급여 관련 찬반 논란이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만큼 협의체를 통해 우선 최종안을 도출하고 실행 여부는 다시 회원들과 논의를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한약제제 분업 논의는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첩약·한약제제 등 한약의 진료·처방·조제권을 계속해서 쥐고 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약사회는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첩약과 한약제제 모두 한방의약분업을 실현, 완전한 한방 조제권을 확보함으로써 그동안 애매했던 한약사의 지위를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한약사제도가 한방의약분업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한의협이 놓지 않으려고 하는 첩약·한약제제 조제권 전반을 가져오는데 회세를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약사회는 현재 안전성·유효성 검증 절차 미비, 원외탕전실 등의 문제를 내세우며 첩약급여 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만 논의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 한방의약분업이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첩약급여 과정에서 약사 참여가 명문화 되면 입장이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방의약분업이 실현될 경우 이에 따른 혜택이 적지 않은 만큼 이 부분에서 한약사회와 같은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두 단체가 한약제제와 일반의약품의 취급을 두고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어 왔던 만큼 협의체에서 이 부분이 부각된다면 공조의 불안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각 단체가 협의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명확해 사실상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복지부는 오는 10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무조건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상황이다.

시범사업 종료 후 곧바로 평가작업을 진행, 보험적용 필요성과 보험재정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르면 2020년, 늦어도 2021년에는 첩약 급여화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인데 지금과 같은 갈등 양상으로 봤을 때 합의에 의한 시행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2012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추진됐지만 의·약계 갈등과 한의계 내부 이견 등으로 백지화된 사례가 있다. 7년이 흘렀지만 과거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그런데도 복지부가 첩약 급여화를 급하게 강행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20여년간 엉켜있던 한방의약분업의 실타래를 풀고 한의사, 약사, 한약사의 면허 범위를 조율하지 않는 한 지금 상황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기 힘들다. 정부는 협의체에서 결과물을 기대하기에 앞서 그동안 외면해 왔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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