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세계 시장이 4조 원대로 성장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고위험병원체를 취급하는 바이오 기업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초극소량만으로도 수만 명을 살상할 수 있는 고위험 병원체 취급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지만 보톡스의 주성분인 보툴리눔에 대해서는 ‘빈틈’이 여전한 모양새다.

미용주사로 널리 사용되는 보톡스의 주성분은 보툴리눔이다. 보툴리눔은 주름 개선 기능으로 인류에게 유익을 안겨준 물질이다. 최근 편두통이나 뇌성마비, 뇌졸중, 눈떨림 등 다양한 질병 치료에 적응증을 확보하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 받고 있다.

전 세계 보톡스 시장은 이미 5조를 돌파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 역시 너도나도 보톡스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메디톡스, 휴젤이 2파전을 형성한 가운데 대웅제약이 가세했다. 아이큐어, 유바이오로직스 등도 보톡스 시장 도전 의사를 밝혔다.

문제는 보툴리눔에 대한 ‘관리’다. 보툴리눔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독소’이기 때문이다. 정제된 보툴리눔 1g은 1백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파괴력을 보여줄 수 있다. 보툴리눔이 생화학테러를 자행하려는 단체나 개인에게 들어간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보툴리눔을 고위험 병원체로 지정하고 특별 관리해온 까닭이다.

국내에서도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친자 확인’ 사건 이후 보툴리눔 균주의 ‘출처’가 화두로 떠올랐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가 메디톡스 균주를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들 업체의 갈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국내 다른 제약사들이 확보했다고 주장하는 보툴리눔 균주는 물론 정부의 고위험 병원체 관리 체계에 대해서도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법망의 ‘빈틈’은 차례로 노출됐다. 국내 보건당국이 다른 나라와 달리 균의 보유 여부만 신고하는 ‘신고제’를 채택한 점이 문제였다. 미국, 독일 등 세계 각국은 균의 보관 및 유통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위해 고위험 병원체에 대해 ‘허가제’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보건당국이 향후 문제가 생길 경우 균주의 출처를 제대로 추적할 수 없는 법망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때문에 보건당국은 칼을 빼들었다. 고위험 병원체 관리를 강화한 이유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지난해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고위험 병원체 취급시설 설치·운영에 대한 허가 및 신고 기준이 신설됐다.

개정안은 “고위험병원체를 검사, 보존, 관리, 이동하려는 자는 고위험병원체 취급시설을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특히 보건당국은 생물안전도(Biosafety level)를 기준으로 고위험 병원체의 질병유발 정도, 치료 가능성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1~2등급은 신고, 고위험 병원체가 있는 3~4등급은 허가 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칼끝은 무뎠다. 개정안은 전반적으로 고위험병원체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했지만 보툴리눔만큼은 ‘예외’로 두었다. 개정안이 보툴리눔의 안전관리등급을 ‘2등급’으로 분류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툴리눔은 “사람에게 감염되어 발병하더라도 치료가 용이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고위험병원체를 취급하거나 이를 이용하는 실험을 실시하는 시설”에서 취급·관리된다.

즉, 제약사들이 새롭게 보툴리눔 생산과 관리를 위한 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는 허가가 아닌 ‘신고’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최근 국내에서 보툴리눔 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바이오기업이 20여 곳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미흡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건강한 성인들은 보툴리눔 균 자체에 노출됐을 때 독소증에 걸리지 않는다”며 “보툴리눔의 안전관리등급을 2등급으로 분류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맞다. 보툴리눔은 생화학무기법 등 다른 법으로 3등급에 준하는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등급을 상향해 허가 대상으로 지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 가입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은 보툴리눔에 대해 “균 배양, 에어로졸 발생 실험, 독소 생산 및 정제실험, 실험동물 감염 및 해부 등 위해가 큰 실험을 할 때는 BL-3 밀폐시설이 권장된다”며 “위해도가 낮은 실험(혈청학적 검사 또는 임상검체 취급)의 경우 BL-2 밀폐시설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보건당국이 보툴리눔에 대한 안전관리등급을 높여 더욱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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