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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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지역 치과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50대 남성 취객이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에 들어가 칼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근무하고 있던 약사가 슬기롭게 대처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약사사회는 이런 폭력 사건이 약국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3일 약사사회에 따르면 약국 내 폭력과 폭언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호소하는 약사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체 회원 중 45%가 몰려있는 서울, 경기지역의 유흥가, 상업시설 등이 몰려있는 곳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의 스트레스는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잠재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는 약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각 지역의 지부·분회 약사회가 개별적으로 관할 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어 방범활동 강화를 요청하거나 비상벨 설치로 빠르게 위급상황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 이에 따라 약국에서의 범죄 행위를 예방·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동주 서울시약사회장은 “관할 경찰서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분회의 경우 경찰들이 여자 약사 혼자 근무하는 약국 위주로 방범 순찰을 강화하는 등 약국 치안을 위해 협조해 주고 있다. 사설경비업체와 경찰이 연계된 비상벨 설치도 확산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예방적 차원에서 보면 많이 부족하다. 약사회 회원 중 여약사의 비율이 60%에 육박한다. 나홀로 근무하는 약국이 많은데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여자 약사 혼자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강력한 억제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지역 전직 분회장 의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위험 상황에 노출된 약사들은 비상벨로 관내 경찰서나 사설경비업체에 알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관내에서 매출을 정산하고 퇴근하는 여약사가 퍽치기를 당해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사례도 있다. 폭언을 듣는 일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며 “약국은 환자들이 처방된 약을 조제받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마약이나 향정약을 취급하는 곳인 만큼 다른 장소보다 더욱 세심하게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러한 약사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자유한국당 김순례·곽대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약사폭행방지법’이 계류 중이지만 입법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회와 보건복지부가 타 업무 공간 내에서 발생한 폭행·협박·업무방해 범죄와의 형평성 문제와 약국에서의 폭력 행위가 타인의 건강·생명에 직접적인 위해로 연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중 검토’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약사사회는 약국 현장의 현실을 너무나도 모르는 소리라고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약국은 정신질환자들이 약을 처방받기 위해 빈번하게 찾는 곳으로 타 업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 노출 빈도가 높은데 업종간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또 건강이 좋지 않거나 노령층이 약국의 주 고객인데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이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박영달 경기도약사회장은 “종합병원 문전약국의 경우 정신질환자의 진료 요일이 특정돼 있다. 해당 요일에는 약사들이 이들과 최대한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긴장하고 근무한다”며 “상황이 이런데 정부와 국회가 타 직종과의 형평성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약사뿐 아니라 약국을 방문한 환자가 언제든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직접적인 위해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국회와 정부의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한동원 성남시약사회장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것 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국회, 정부가 약사폭행방지법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 약국에서 정신질환자를 접촉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며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입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업종과 상황이나 조건이 다른데 애써 무시하고 일반화시켜서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질타했다.

대한약사회는 약사 직능 특성상 여성의 비율이 높고 나홀로 약국이 많은 만큼 폭행·폭언 등의 범죄를 예방·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담고 있는 약사폭행방지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입법 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와 국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여러 폭언·폭행 피해 사례를 각 지역약사회의 협조를 얻어 취합해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약사회 관계자는 “쉽지는 않겠지만 약사폭력방지법이 입법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에 약사회의 입장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지속할 방침이다”며 “이번 부산 취객 난동 사건을 계기로 위험에 상시 노출되고 있는 약사의 어려움이 사회 전반적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여러 대외적인 홍보활동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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