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가 최근 공모전을 주최하면서 참가자들에게 불리한 저작권 관련 규정을 참가 요건으로 내세웠다. 이는 문체부의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을 경시하는 것은 물론 공모전 당선자의 저작권을 일방적으로 귀속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법조계, 한국웹툰산업협회, 저작권보호원 등 관련 단체에서 식약처를 향한 질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식생활 안전을 주제로 ‘포스터·UCC 공모전’을 주최했다. 각 부문은 학생부와 일반부로 나누어 진행될 예정으로,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 수상자를 선정해 식약처장상과 상금을 수여할 계획이다.

식약처는 포스터 공모전 참가신청을 위한 요건으로 ‘저작권에 대한 동의’도 명시해 두었다.

그런데 여기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하나 있다. 동의서에는 “작품의 저작권은 출품자에게 있지만 당선작은 공모전 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홍보용으로 활용하며, 별도의 저작권료는 지급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언급돼 있는 것.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을 들여다 봤다.

가이드라인은 저작물 이용과 관련해 “공모전에서 입상한 응모작을 이용하기 위해, 공모전 주최 측은 필요한 범위 내에서 해당 응모작에 대한 이용허락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이용허락을 결정하는 경우, 저작권자에게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보상액은 거래 관행 및 시장가격 등을 고려하여 정하고 주최 측은 공모전에 투자한 비용과 응모자가 공모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이점들을 참고하여야 한다”고 덧붙힌다.

식약처가 입상한 포스터를 홍보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금 외에 별도의 합의를 통해 수상자에게 저작권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식약처의 입장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당선작의 저작권에 대한 식약처의 ‘미흡한 인식’이 드러난 셈이다.

법조계에서도 식약처의 공모 요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무법인 강의 구주와 변호사(변리사)는 “저작권료 지급문제는 당사자 간의 계약의 문제다. 유의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으면 된다”라면서도 “하지만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참가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일정 부분에 대해 무료로 포스터를 얻기 위한 꼼수같다”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와이앤코의 제본승 변호사 역시 “주최 기관 측이 당선작을 사용할 때 저작권료를 별도로 지급하지 않고 수상작들을 홍보물로 2차 편집하고 이용할 때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은 저작권료를 아끼려는 방편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모전 취지가 공공기관의 특성에 부합하는 양질의 작품을 발굴하는데 있다면, 1회적인 시상금 외에도 저작권 사용에 따른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것이 지적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상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저작권료는 필요하지 않다”며 “지금까지 공모전 당선작에 대해 수상 이후에 당선자들에게 활용 동의서를 받았지만 저작권료를 지급하지는 않았다. 포스터를 무료로 얻기 위한 꼼수가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 큰 문제는 식약처가 주최한 다른 웹툰 공모전에서도 참가자들에게 불리한 저작권 관련 공모 요강이 있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2017년 3월 ‘불량식품 근절 대국민 웹툰 공모전’을 주최했다. 수상자는 총 4명으로 상금은 325만원이 지급됐다.

식약처는 당시 안내문에서 “당선작은 불량식품 근절 홍보용으로 활용되고 저작권은 식약처에 귀속되며 별도의 저작권료 등은 지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작권법 10조는 물론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은 “공모전에 출품된 응모작의 저작권 즉,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인 응모자에게 원시적으로 귀속된다”고 명시한다.

때문에 식약처의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 ‘당연’ 귀속 조건은 참가자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내용이다.

웹툰 업계는 이같은 공모 요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웹툰산업협회 관계자는 “저작권은 원천적으로 웹툰 작가에게 귀속된다”며 “수상작에 대한 복제품 및 2차 저작권 배포에 대해서는 별도로 사용 범위와 이용기간을 정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식약처의 공모요건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심지어 웹툰 공모전 참가 신청서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될 경우 모든 저작재산권은 양도되고 대국민 홍보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며 “참가자는 관련 업무를 허락받거나 위탁받은 자에 대하여 저작인격권의 행사를 포함한 어떠한 권리 주장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을 구체적인 공모요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은 “저작권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포함하는 개념이다”며 “저작인격권은 저작자의 일신전속적인 권리로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다. 공모전의 주최측은 저작권법상 저작인격권의 예외에 해당하는 범위 내에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

웹툰 공모전 수상자가 지니는 저작인격권마저 ‘원천봉쇄’한 식약처의 행태에 대해 날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한국저작권보호원 정석철 온라인보호국장은 “저작인격권은 2자 제작물 형성에서 굉장히 중요한 권리”라며 “저작인격권을 주최 측이 별도로 확보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양도를 공모 요건으로 명시한 부분은 잘못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실무자가 바뀌어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며 “저작권 귀속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부분이 수상자에게 어떤 피해가 갔는지 모르겠다. 불량식품 근절을 위해 국민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공모전이었다. 사적인 활용을 위한 것이 아닌 공적 용도라는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부처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 국토교통부는 ‘안전에는 베테랑이 없습니다’라는 주제로 건설현장 추락사고 방지를 위한 UCC 공모전을 주최했다. 국토부는 “주최, 주관 기관은 ‘창작물 공모전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상작에 대한 사용권을 가진다”고 공모 요건으로 명시했다. 식약처의 해명 내용과는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정석철 국장은 “최근 창작자 권리 보호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공공기관은 공모전을 주최할 때 가급적이면 참가자의 저작권 일체를 확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하는 식약처 특약은 과한 부분이 있다. 아무리 1등 당선작이라도 주최 측이 모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식약처와 공모전 수상자가 향후 저작권과 관련해 법적분쟁에 들어간다면 공모 요건에 동의했더라도 적절한 계약인지에 대해 다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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