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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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사망, 집단 C형 감염 등 주사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심사평가원의 한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 주사제의 공급 문제부터 관리 허점까지 세부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일선 간호사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모양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이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사 합병증 진료 환자수는 2014년 917명에서 지난해 1195명으로 4년 새 30% 이상 늘었다. 전체 주사합병증 환자 5234명 중 감염이 1843명(34.2%)으로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주사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심평원이 최근 공개한 '주사제 안전사용을 위한 종합개선 방안 연구’를 보면, 국내 주사제 공급의 문제점은 크게 1회용·다회용 표시 기준의 부재와 포장의 다양성 문제, 일체형 안전용기 주사제 공급 부족 등 세 가지가 원인으로 진단됐다.

우선 국내 주사제 표시기재 관련 규정에는 주사제의 적정 사용을 돕기 위한 핵심 정보인 1회용, 다회용 주사제의 표기 사항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다. 실제로 국내 약사법 등 관련 규정에도 주사제의 횟수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A 씨는 “인슐린은 한 병에 많은 양이 들어있다. 한 번 주사할 때 아주 조금씩 환자에게 투여하는데 기한은 보통 28일이다”며 “하지만 몇 번에 나눠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애매하다. 이런 제제들이 상온에 노출되고 나중에 변질을 일으키면 사고가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사제의 포장 용량이 다양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2017년 12월 급여목록을 보면,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모두 한 종류의 포장용량에 등재된 비율이 각각 89.7%, 82.6%에 달했다.

앞서의 간호사 A 씨는 “스모프리피드(지질영양제)의 성인 용량은 500ml다. 이는 신생아들에게 마이크로그램 단위로 들어가는 약이다”라며 “큰 용량을 사서 몇 cc만 쓰고 버리는 건 병원 입장에선 돈이 많이 든다. 비용을 줄이려고 몇 번을 나눠쓰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크다. 이를 예방하려면 주사제를 용량별로 소포장 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의 쟁점은 ‘분주’였다. 스모프리피드 1병을 여러 개의 주사기로 나눠 분주하는 경우, 의료진에 의한 조작 과정이 늘면서 감염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일체형 안전용기(Ready-To-Use, 이하 RTU)의 국내 공급 부족 문제도 주사제 사고 증가를 거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2017년 급여 목록에 따르면, 총 4,231개 주사제 중 2,283개(54%)가 병(바이알) 포장이었다. 942개(22.3%)는 앰플 제형이었는데 이 중 76.2%는 무균조제가 필요했다. 주사제를 나눠 사용하려면 무균 조제가 필수란 얘기다.

문제는 의원급과 같은 작은 규모의 병원에서 국제기준을 만족할 만한 무균조제 시설을 갖추는 게 과연 가능하냐는 것. 심평원 보고서의 결론은 간단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연구자가 내린 최종 판단이다. 소용량 포장이나 일체형 안전용기 공급 등 주사제 용기의 개선이 필요한 까닭이다.

간호사 A 씨 역시 “간호사들이 주사제를 만들기 위한 환경 자체가 ‘무균’이어야 한다. 특히 미숙아에게 들어가는 약은 무균 환경에서 조제해야 한다. 하지만 작은 병원은 아무대서나 주사제를 만든다. 일체형 안전용기의 공급 확대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높은 주사제 처방률과 무균조제 관련 수가 기준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실제로 국내 주사제 처방률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환자 상태가 응급 상황이거나 경구 투여가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염 우려가 있는 주사제 보다 경구용 의약품의 사용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

또 주사제의 안전 조제를 위한 무균조제 관련 수가 기준에 무균조제대(장치)와 약사(인력)가 명시돼 있긴 하지만 이에 대한 상세 기준은 없다. 대부분 병원의 무균조제대가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간호사 A 씨도 “기본적으로 청결한 환경이 갖춰진 주사 조제실이 없는 병원이 많다”며 “주사제 조제 공간에서 기구세척을 하거나 간호사 카트에서 급하게 약을 조제한다. 약물 혼합으로 인한 주사 합병증이 환자들에게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라고 설명했다.

주사제는 소화기관을 거치지 않고 혈액이나 근육으로 바로 약물이 주입되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은 제형의 의약품이다. 그런데도 주사제 감염사고가 일선 병원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9년 12시간 이상 상온에 보관돼 있던 프로포폴 주사를 맞은 20대 환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6년 뒤 버려진 용기에 남아 있던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모아서 환자에게 투여한 성형외과에서도 20대 환자가 패혈증 쇼크로 숨졌다. 보건당국이 심평원 연구보고서의 제안들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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