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변호사(의료전문 법인 세승)

요즘 제약업계의 화두는 지출보고서 제도다. 올해 3월 말이 지출보고서 작성 마감기일이기 때문이다. 제약사들은 의료인에게 제공한 경제적 이익을 항목별로 작성해 보건복지부에 제출해야 한다. 보건당국은 설문조사를 통해 지출보고서를 작성 중인 제약사가 88.5%에 달한다고 발표하면서 “제도가 순조롭게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렇다면 법률전문가는 지출보고서의 ‘현재’를 어떻게 평가할까.

법무법인 세승은 2010년 설립된 의료분야에 특화된 로펌이다. 치과의사 출신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일했던 대외법률사무소의 전신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의료민사소송뿐 아니라 의료형사, 의료행정 등 의료 분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총괄하는 곳이다.

정재훈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승에서 숱한 리베이트 사건을 담당한 전문가다. 특히 그는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관심이 깊다. 강남 테헤란로 인근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판 선샤인 액트’의 현재를 진단하고 리베이트 사건의 근절 방안을 들어봤다.

 

정재훈 의료전문 법인 세승 변호사
정재훈 의료전문 법인 세승 변호사

▶▷ 지출보고서, ‘투명성’이 관건

정재훈 변호사는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는 “지출보고서 제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단언하면서 “복지부의 지출보고서 취합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의 연착륙을 낙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지출보고서 제도가 지향해 나가야할 궁극적 목적을 2가지로 압축했다.

그는 “첫 번째 목적은 ‘투명성’이다. 무엇보다도 지출보고서의 이해당사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는 것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며 “두 번째 목적은 경제적 이익이 오가는 부분에 대해 장기적으로 제약사와 의료인 양측이 부담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출보고서의 대외적인 공개로 제약사와 의료인들이 압박감을 점차 느낀다면,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관행이 사라질 것이란 의견이다.

정 변호사는 미국 사례 설명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한국판 션샤인 액트’는 미국에 비해 ‘반쪽짜리’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지출보고서의 대외적인 공개는 되지 않고 있다”며 “지출보고서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내역을 반드시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의 완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충족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 변호사는 “복지부가 필요에 따라 제약사에게 지출보고서 자료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제약사들의 지출 내역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출보고서가 규정된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제약회사가 의료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고 지출보고서를 작성한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만이 그 내역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선샤인 액트는 원론적으로 ‘햇빛을 비추자’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들이 제출을 요구해서 지출보고서를 보는 것은 햇빛을 비췄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국민들이 지출보고서를 파악 수 없는 제도상 허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어 “미국은 지출보고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며 “제약회사와 의사가 주고받은 경제적 이익을 검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라는 특정 의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름이 제임스인 의사 목록과 병원주소가 함께 나온다”고 밝혔다.

▶▷ 미국, ‘투명한 생태계’ 조성…리베이트 제동

실제로 2014년부터 미국 연방 정부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CMS) 홈페이지를 통해 오픈 페이먼트 데이터(Open Payment Data)를 공개 중이다. 미국 국민들은 홈페이지에서 제약사들이 1차 진료 내과·산부인 과·피부과 및 기타 의사들에게 제약사들이 컨설팅 수수료, 스톡 옵션, 휴양지 여행 등을 조회할 수 있다.

정 변호사는 미국 썬샤인 액트의 이점에 대해 “환자들은 자신이 진료를 받는 주치의가 돈을 얼마나 많이 받는 의사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적 이익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리베이트에 대한 ‘1차 필터링’을 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인들은 의사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며 “어떤 질병에 걸린 환자가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특정 제약회사의 약을 많이 처방하면 환자는 ‘돈을 받고 그런 것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특히 미국의 선샤인 액트가 리베이트를 금지하고 맹목적으로 처벌한 것이 아니라, 제약사와 의사가 적법하게 뛰어 놀 수 있는 ‘투명한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도 영업사원들이 병원을 방문해서 의사를 많이 만난다. 하지만 선샤인 액트 시행 이후 의사들이 영업사원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됐다. 의사들 스스로의 노력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출보고서 내역이 의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고 뿌리 깊은 리베이트 수수 관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약사법, 지출보고서 발목 잡을수도

정 변호사는 국내 보건당국이 조성할 ‘투명한 생태계’에는 선결 조건이 있다고 강조했다. 바로 현행 약사 법령의 손질이다.

정 변호사는 “지금 약사법은 어떤 부분이 불법 리베이트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제약사의 영업사원들이 어디까지가 불법 리베이트인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경제적 이익에는 불법적인 리베이트와 적법한 경제적 이익이 있다”며 “약사법에서는 판매 촉진 목적으로 의약품 공급자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지만 약사법 시행규칙은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경제적 이익의 제공을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약사법령이 리베이트의 합법 여부에 대해 모호하게 해석하게 만들고 검찰 역시 명확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약사가 지출보고서 작성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일정부분을 허위로 작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초래됐다고 전했다. 의사도 서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과 같이 경제적 이익을 국민에게 공개하기 위해서는 일단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이해관계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회와 정부의 입법적 보완으로 합법적 경제적 이익 제공과 불법 리베이트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해줘야 한다. 그래야 제약사와 의사가 지출보고서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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