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18년 1월 시행된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의무화’, 이른바 한국판 선샤인 액트(K-Sunshine Act.)가 시행 1년을 넘겼다. 지출보고서 제도가 한 해를 거치는 동안 언론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영업환경은 녹록치 않다고만 알려져 있다. 의사들이 영업사원을 만나주지 않아 과거처럼 현장에서 실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환경은 결국 영업사원(MR) 수를 줄이고 조직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정리해고의 빌미만 제공한 격이 됐다. 기업이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데 어느 누구도 이유를 달수 없게 만든 것이다.

본지는 의사들을 상대로 질문을 던졌다. 실제로 지출보고서 시행 이후 영업사원들과의 스킨십에 변화가 있었는질 물은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MR을 만나는 횟수에는 변화가 거의 없었다. 최근 영업사원 수를 줄이고 있는 기업들에게 ‘현장 영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결과치다.

의사들이 정말로 영업사원을 대면하는 것이 줄었다면 제약사들의 MR 정리해고는 어느정도 합당한 처사다. 하지만 실제 의사들이 줄인 것은 제품설명회나 학술대회 참석이지, 영업사원을 기피하는 게 아니란 점이 드러난 것이다.

본지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윤리경영의 현 위치를 진단하고, 지금의 영업환경을 이대로 끌고 가도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판 션샤인 액트’ 시행 1년, 의사 인식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공개한다.

▶▷‘한국판 션샤인 액트’ 시행 1년, 의사 인식 조사

종병·클리닉 대상 온라인 조사, 10~30년 경력 의사 대다수

이번 조사는 리서치 전문기관인 PNI 리서치와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올해 1월 25일까지 약 한 달 반 정도 온라인 조사를 통해 실시됐다.

조사 대상은 종합병원과 병·의원(클리닉) 크게 두 곳으로 나누었으며 조사된 진료과목은 가정의학과(41.9%), 내과(14.5%), 소화기내과(14.5%), 순환기내과(8.1%), 내분비내과(8.1%) 기타(12.9%)로 분포됐다. 설문인원은 총 62명으로 종합병원 31명(50%), 병의원 31명(50%)이었다. 임상 경력은 10~20년 미만(45.2%)과 20~30년 미만(40.3%)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외 30년 이상(9.7%), 10년 미만(4.8%) 순이었다. 연령은 40대(45.2%)와 50대(40.3%)가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60대(9.7%)와 30대(4.8%)도 약 15%가량 포함됐다. 성별은 남성 83.9% 여성 16.1%였다.(도표 1)

 

▶▷ ‘지출보고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사 10명 중 4명만 인지, “이름부터 문제, 영어가 더 쉽다”

우선 이번 조사에서 첫 번째 질문은 “선생님께서는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에 대해 알거나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이었다. 해당 제도를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부터 알아보고, 이를 통해 지출보고서 제도가 의사들에게 어느정도 정착됐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욱 참혹했다. 전체 응답자의 43.5%만이 지출보고서 제도를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설문에 응한 전체 의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병원 유형별로 보면 그 심각성은 더욱 크다. 그나마 종합병원에선 절반 이상(58.1%)의 의사가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으나 병·의원에선 29%만이 해당 제도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3명도 채 안되는 수준으로 ‘한국판 선샤인 액트’를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분명히 한글로 붙여진 ‘이름’이지만 ‘경제적 이익 등 제공 내역에 관한 지출보고서 의무화’라는 제도명이 의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의 조합은 아닌지 의문이다. 오히려 영문명(K-선샤인 액트)이 더 쉽다는 생각도 든다”며 “만약 이번 조사를 ‘대면’ 방식으로 전환하고 의사들에게 해당 제도에 대해 차근차근 풀어 설명했다면 결과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제도 이름에서부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단어가 쓰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도표 2)

 

▶▷ 지출보고서 세부 내용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

제도 인식은 하나 디테일 약해 … 의사 본인 변호 수단 ‘빨간불’

지출보고서 제도를 인지하고 있는 의사를 대상으로 “선생님께서는 각 세부 내용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세부 문항에는 시행시기, 보고서 작성 주체, 작성 내용, 확인 의무가 포함됐다.

조사 결과, 지출보고서의 세부 내용 중 ‘작성 내용’에 대한 인지도는 높았던 반면, ‘확인 의무’나 ‘시행 시기’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특히 병·의원의 경우 ‘확인 의무’와 ‘시행 시기’에 대한 인지도가 절반 수준(55.6%)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대다수 의사들이 제도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어도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확인 의무의 경우 제약사가 의사에게 서명을 요청할 때 이에 대해 의사가 협조하는 것으로, 의무사항은 아니다. 다만 의사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제약사 입장에선 지출보고서 작성에 한계가 있으며 의사 입장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거나 변호할 수 있는 수단이 그 만큼 줄어들 수는 있다.(도표3)

 

▶▷ 지출보고서 안내, 결국 영업사원이 혼자 다해

제도는 정부가 만들었는데…홍보는 제약사 ‘몫’

그렇다면 의사들은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안내를 받았을까? 다음 문항에서 확인했다.

본지가 “선생님께서는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에 대해 제약사나 영업사원으로부터 안내나 설명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은 결과, 의사들의 85.2%는 ‘있다’고 답했다. 나머지 14.8%는 제약사로부터 설명을 듣지 못했다(없다)고 응답했다. 즉, 나머지 14.8%는 정부 등 기타 다른 루트를 통해 해당 제도를 인식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제약사 입장에서 보면 과연 지출보고서 제도를 의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을까?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영업사원의 득실여부만 놓고 따져본다면 실적 압박을 받는 MR 입장에서 굳이 지출보고서 얘기를 꺼내 의사와의 대면 자리를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이번 조사 결과 의사들이 한국판 선샤인 액트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경로가 대부분 제약사 영업사원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제도 홍보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는 책임의 화살이 보건당국에게 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도표4)

 

▶▷ 제도 시행 전·후 영업사원에 대한 의사들의 태도 변화는?

종병의사 72.2% “행동 변했다” … 클리닉에선 ‘절반’만 변화 실감

지출보고서 시행 이후 의사들의 태도에 실제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즉 지출보고서의 실효성에 대한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간 것이다.

본지는 “제도 시행 전과 후를 비교할 때 제약사 영업활동에 대한 선생님의 대응에 변화가 있습니까? 있다면 어느 정도 변화가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의사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변화는 나타났다. 의사들은 제약사의 영업·마케팅 활동에 상당 부분 신경을 썼고 본인의 행동에 변화를 준 것이다.

실제로 제도 시행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제약사 영업활동에 대한 대응에 “변화가 있었다”는 의사의 응답은 66.7%로 나타났다.

특히 “매우/약간 변화가 있다”와 “별로/전혀 변화가 없다”는 각각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담은 총 4개의 질문을 단순히 변화의 유무 차원에서만 나눠 보면 종합병원은 전체의 72.2%가 “변화가 있다”고 답한 반면 병·의원은 55.6%만이 “변화가 있다”고 응답했다. 의사들의 행동 변화에도 병원 유형별로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도표5)

 

▶▷의사 태도에도 변화 바람…“단, 현장영업은 빼고!”

MR 만남 횟수 변화 無…제품설명회·학술대회 참석빈도는 줄어

이처럼 지출보고서 시행 전·후로 의사들의 대응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던 게 확인됐다.

그렇다면 기존에 제약사가 진행하던 영업활동을 100%로 놓고 봤을 때, 현재 의사들의 참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일단 의사들은 제도 시행 전(100%)과 비교해 제도 시행 후 영업사원을 만나는 횟수는 86.5% 수준이라고 답했다. 기존에 10번 대면하던 만남이 이제는 9회로 낮아진 것으로 사실상 제도 시행 전·후에 변화가 없는 셈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병원 유형별로 차이가 있었다. 영업사원을 만나는 횟수에 있어 종합병원(81.4%)은 제도 시행 후 다소 줄어든 반면, 병·의원(96.7%)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

의사들이 제품설명회에 참석하는 빈도도 기존을 100%로 놓고 봤을 때 제도 시행 후에는 참석률이 76.7%까지 떨어졌다.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정도 역시 89.3%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이는 제약사 입장에서 보면 제품설명회나 학술대회 참석률을 기존만큼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당초 10번 열던 행사를 이제는 1~2회 더 늘려야만 기존의 참석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보면 지출보고서 시행 이후 의사들이 가장 많이 줄인 것은 제품 설명회 참석이었다.

다만 의사들은 병원을 찾아온 영업사원들에 대해서는 만남을 크게 주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현장영업의 중요성이 여전히 큰 것으로 이번 조사 결과 확인됐다.(도표6)

 

▶▷의사들은 ‘K-선샤인 액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10명 중 4명은 ‘부정’…긍정 평가는 2명도 채 안돼

이번 조사 결과, 우리나라 의사들은 ‘K-션사인 액트’ 제도에 대해 부정적(37.0%)으로 보는 시각이 긍정적인 평가(18.5%)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선생님께서는 ‘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4.4%가 ‘보통’이라고 대답해 가장 많았으며, ‘약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가 29.6%’, ‘약간 긍정적으로 평가 11.1%’, 매우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가 각각 7.4%로 나타나 의사들은 전반적으로 해당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됐다.(도표7)

 

▶▷‘K-선샤인 액트’ 부정적 시각, 그 이유를 알고싶다

“필요한 활동에 부담준다”, 실제 임상현장 반감은 더 클 듯

이처럼 의사들은 대체로 지출보고서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렇다면 ‘K-선샤인 액트’의 어떤 부분이 이토록 이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비추어진 걸까?

일단 의사들이 지출보고서 제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에는 대부분이 ‘필요한 활동을 함에 있어 부담을 준다’ 또는 ‘감시 당하는 느낌’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 외에도 부정정인 평가 이유에는 ‘정당하고 필요한 영업활동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에서부터 ‘정부가 마케팅 활동에 대해 개입까지 하는 것은 부당하다’, ‘공적·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하다’, ‘의료인들을 감시하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혹시 쌍벌죄에 해당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단순한 외국 제도의 모방으로 국내 현실에는 맞지 않다’라는 지적까지 다양했다.

반면 의사들이 ‘K-선샤인 액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에는 대부분이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보다 투명하고 깨끗해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특히 지출보고서 시행에 따라 기업이 공식적인 행사에만 판촉비를 쓰게 되는 만큼 결국에는 약가나 환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으며, 의사 역시 양성적이고 공식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의견도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보통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응답’을 기대하는 질문, 즉 공공성을 내포한 물음에 대해서는 실제 결과치가 기대치 보다 높게 나온는 게 일반적이다”라며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에서 의사들이 ‘K-선샤인 액트’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긴 했지만 사실상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해당 제도를 더욱 기피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도표8)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