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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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가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스크 무상 공급론’에 대해 국민, 환경단체,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3월 1일,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었다.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권에서는 무려 일주일 연속으로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시행됐다. 미세먼지의 공습은 대한민국의 일상을 무너뜨렸지만 정부의 대응은 재난 문자뿐이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도 ‘미세먼지’ 이슈로 가득 찼다. 특히 최근 보건 복지 분야 청원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게시글이 있다. 한 청원자는 2019년 3월 5일 “KF 마크가 있는 마스크가 개당 3000원 정도로 비싸다”며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대량 생산해서 무료로 공급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소 황당한 주장일 수 있지만 청원글은 3월 20일 오후 4시 현재 약 5600명의 추천을 얻었다. 보건복지 분야 추천수 3위를 달리고 있다.

이른바 ‘마스크 무상 공급론’의 첫 번째 명분은 ‘국민건강’이다. 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 두통 등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인 오염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4년 흡연으로 인해 1년 간 흡연 사망자 수는 600만 명,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는 700만 명으로 발표했다. 최근 통과된 재난안전법이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한 이유다. 정부가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 재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명분은 ‘비용’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품의 미세입자 차단 성능을 검증한 인증마크인 KF94와 KF99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낸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KF99와 KF94 마스크의 개당 가격은 평균 4천원. 4인 가족 기준 매일 1만 6천 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기준 ‘나쁨’ 일수가 100일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가족마다 1년에 약 116만원이 마스크 구매비용이 쓰일 수 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과 녹색건강연대는 2017년 서울지역 성인남녀 208명(평균 연령 38세)과 초등학생 317명(평균 연령12세)을 대상으로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사용실태를 분석했다. 성인 10명 중 4명, 초등학생은 10명중 3명은 일주일에 1회 이상 마스크를 착용했다. 특히 성인 응답자 74.5%는 “마스크 가격이 비싸다”고 답했다. 정부의 예산이 필요할 만큼 마스크에 대한 국민들의 비용부담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조정호 씨(34)는 “마스크를 무상공급으로 뿌릴 경우 차별 문제가 생긴다”며 “마스크 안 쓰는 사람들은 계속 쓰지 않고, 외부활동이 많은 사람들은 더 필요하다. 실내 활동이 많은 경우는 덜 필요하다. 똑같이 공급되면, 정작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용봉 씨(34)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며 “나같은 사람에게 무상공급은 낭비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나눠줄지 기준이 애매하다. 국가의 예산 편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임소연 씨(41)는 “마스크 무상 보급이 와 닿는 정책은 아니다”며 “하지만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마스크는가 필요할 때가 많다. 정부에서 챙겨준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 마스크는 조금 비싸서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마스크 무상 보급론’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최근 ‘무상’이란 키워드를 담은 법안이 발의됐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8일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미세먼지 마스크 무상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 의원 측은 “최근 미세먼지로 인해 국민건강 위협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호흡용 보호구(마스크)를 무상으로 지원해 취약층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일부 지자체에서는 마스크 무상 보급 정책을 시행 중이다. 경상남도는 지난해 미세먼지 취약계층인 만 5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에게 마스크를 1인당 3개씩 지원했다. 대구광역시도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어린이집 아동, 복지시설 거주자 등 미세먼지 취약계층 10만 명에게 황사마스크를 지급했다. 지자체들이 미세먼지 취약 계층을 위해 마스크를 무상으로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마스크 무상 보급론’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 수도권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나 지자체가 미세먼지 대책으로 마스크를 제공한 경우는 없다”며 “오히려 마스크를 제대로 쓰면 호흡에 지장을 준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마스크를 쓰도록 권고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미세먼지 대책을 세울 때는 미세먼지 배출원 관리가 우선이다”며 “그것을 먼저하지 않고 효과가 불분명한 마스크 중심의 미세먼지 대책은 국민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신호)를 줄 수 있다. 취약계층을 포함해 앞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상 보급 정책을 펼치더라도 전시행정이란 비판을 들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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