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의료인 보호권 신설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가운데 의료인 측과 환자들 간의 대립이 불붙을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보건의료 시민단체 측은 진료 거부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라고 반박 중이다.

한국당 김명연 의원이 11일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안전한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의료기관내 폭행 등 사고의 우려가 있을 때 의료인 보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신설했다.

김 의원실 측은 “환자의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진료 중에 의사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그러한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안전관리인력 입회하에 최소한의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진료를 유보할 수 있도록 하는 법 마련이 시급했다”고 밝혔다. ‘의료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8년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임세원 교수는 진료 상담 중 환자의 피습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당시 의료계는 ‘안전한 진료 환경’이라는 화두를 제기했고 국회는 보건복지위원들을 중심으로 고 임세원 교수의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임세원법’을 발의했다. 김 의원 측은 이번 개정안이 임세원법을 포함해 더욱 광범위하고 확실하게 의료인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취지가 담겼다고 강조했다.

법안의 핵심은 ‘정당한 사유’다. 현행 의료법 제15조 1항은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한다.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정당한 사유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려왔다. 의료법의 하위 법령에서도 정당한 사유들이 예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그동안 유권해석해온 정당한 사유의 일부 사항을 법률에 직접 명시해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이는 대한의사협회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1월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복지부가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 유권해석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법적 효력이 약하다”며 “최종 판결을 하는 사법부는 복지부의 유권해석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어 법령으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의료진들과 간담회에서 의견을 모았고 국회 보건복지위 야당 간사인 김명연 의원이 이같은 내용을 묶어 대표발의에 나선 것이다.

일선의 의사들은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의사 A 씨는 “실제로 위협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며 “응급실 진료를 볼 때는 취객이 많다. 이들은 ‘내 가족이 제일 중요한데 왜 빨리 안 봐주느냐’며 난동을 부렸고 동료 의사는 맞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문 닫고 경찰서에 가면 되는데 응급실은 그럴 수가 없다. 의료인 보호는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의료인 폭력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진료 거부 사유를 현행법으로 격상해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응급실 폭력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목포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20대 환자가 의료진에게 흉기를 휘둘러 응급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곧 출동한 경찰에 제압됐지만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2018년 12월엔 50대 환자는 남원의료원 응급실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됐다. 의협은 물론 의사들 사이에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이 고개를 드는 배경이다.

하지만 보건의료 시민단체 측의 입장은 다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개정안엔 다분히 의사들의 특권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려는 의도가 담겼다”며 “환자의 진료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 이미 의료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료 현장에선 다양한 형태로 진료거부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정당한 사유’를 법으로 정해버리면 의사들은 이를 이용해 적당한 명분을 만들 것”고 강조했다. 법안이 의사들의 무분별한 진료 거부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김명연 의원실 측은 이를 적극 반박했다. 김명연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에 명예훼손과 모욕 등 환자와 의료인이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는 부분을 빼고 객관적인 사항을 규정했다”며 “의료인들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법안 통과가 어렵다. 복지부도 그런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전부 배제했다. 환자와 의료진의 입장을 공평하게 담은 법안”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정당한 사유를 법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주관적”이라며 “진료거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복지부의 유권해석을 받고 있다. 환자의 담보물을 받아서 진료행위를 회피하거나 돈을 내지 않으면 처방전을 써주지 않는다는 의사도 있었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법으로 정한다면 앞으로 더욱 논란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과 시민단체 측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의사들은 의료인 보호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했다. 앞서의 의사 A 씨는 “‘환자가 응급실이나 외래로 온 경우에 지금 당장 응급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라는 것이 가장 우선될 사항이다”며 “그런 조건이 전제된다면 의사도 언뜻 봐도 취객이거나 당장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나 보호자라면 의사도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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