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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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고서의 일반약 지출 비용에서 ‘탈모치료제’가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탈모 환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탈모 환자들의 호소를 외면하면서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직장인 A 씨(31) 4년 전부터 정수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씻을 때마다 정수리에 손을 올려 놓을 때마다 머리숱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풍성한 머리카락의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탈모의 시작을 ‘공포 그 자체’로 표현했다.

A 씨는 “이보다 더한 공포가 있을까. 탈모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상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머리털이 날아가면 아무것도 못한다. 특히 여자들이 탈모에 민감하다. ‘머리를 지켜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그때부터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탈모 인구 1000만 명 시대. A 씨의 탈모 사례는 이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건보공단 산하 '2016년 한국의료패널 기초분석보고서 Ⅰ'에 따르면, 3개월 이상 복용한 일반 의약품별 지출 비용 순위에서 탈모치료제(33만 7224원)는 1위를 차지했다. 비만치료제(25만 8173원) 인사돌(17만 2626원)을 가볍게 제친 수치다.

전문의약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국민 탈모약’ 프로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리드)는 지난해 3분기까지 약 297억원의 누적 처방액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켰다. GSK의 아보다트(두타스테라이드)도 M자형 탈모에 우월한 치료 효과와 3개월째부터 나타나는 빠른 효과를 경쟁력으로 같은 기간 누적 처방액 223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보다 16% 성장했다. 그야말로 ‘탈모약’의 전성시대가 찾아온 것.

프로페시아는 1997년 미국 FDA 승인을 얻은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다. 모발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국내에서도 대표적인 탈모약으로 자리 잡았다. 탈모로 인해 고통을 겪은 환자들이 프로페시아를 수년 동안 꾸준히 복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문제는 환자들이 프로페시아 등 고가의 탈모 치료제에 대해 경제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탈모 치료제는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 아니다. ‘프로페시아’의 한 달 약값은 6~7만원, 다른 제네릭 가격도 오리지널의 70% 수준이다.

앞서의 A 씨는 2년 동안 매일 프로페시아를 복용했지만 비싼 약값은 언제나 그에게 골칫거리였다. A 씨는 “30대 남자들에게 탈모 현상이 오면 결혼을 못한다. 여자들은 배가 나온 남자보다 대머리를 더 싫어한다. 너무 무서워서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프로페시아를 기준으로 한 달 약값이 약 6만 원이 들었다. 처방전을 포함하면 7만 원이 넘는 비용이다”고 밝혔다.

결국 A 씨는 편법을 선택했다. 2017년 1월경부터 자신의 아버지 B 씨(63)에게 또 다른 탈모치료제인 GSK의 아보다트를 대신 구입도록 부탁한 것이다. 탈모 치료제를 조금 더 싸게 구입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B 씨는 “아들을 위해 비뇨기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아보다트를 처방받는다. 55세 이상 전립선 비대증 환자에 대해서는 탈모 치료제에 보험 급여가 적용된다”며 “물론 저는 전립성 비대증 환자가 아니지만 매번 처방을 받고 있다. 의사들도 편법인 것을 알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한 통에 4만 원짜리를 9000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밝혔다.

탈모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날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최근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에서 탈모 치료는 건강보험 적용에서 빠졌다. 탈모·피부 등 미용과 성형 관련된 항목을 제외했다.

그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는 ‘탈모 치료제의 급여화’를 촉구하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한 청원자는 “저는 20대 대학생이다. 탈모가 매우 심해 얼마 전 약을 처방받았지만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다. 한 달에 6만원이 넘는 돈은 대학생에게 가혹하다. 올해 안에 탈모 치료제에 보험을 적용해달라”고 강조했다.

다른 청원자는 “군 전역 이후 젊은 나이에 탈모가 왔다. 이것도 모자라 탈모약 비용을 한 달에 8만 원 넘게 쓰고 있다”며 “탈모가 오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하기도 힘들다. 여기에 약값까지 1년에 100만 원 이상을 쓰고 있다. 정부가 나서달라”고 주장했다.

약 2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보건 당국은 요지부동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24일 팜뉴스와의 통화에서 “탈모는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에 비급여 대상으로 명시돼있다”며 “원형탈모는 질병의 범위에 들어가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단순 노화로 인한 탈모나 남성형 탈모는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케어 발표 당시에도 탈모는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규칙을 개정하지 않는 한, 향후에도 급여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이윤수&조성완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탈모라는 칠환을 나중에 방치해도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탈모가 보험 급여화를 검토해야 할 만한 질병이 아니란 뜻이다”고 밝혔다.

임이석테마피부과 임이석 원장은 “의사 입장에서 탈모보다는 보험으로 해결될 질환이 많긴 하다”라면서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탈모가 심해진다. 직장생활과 학업 스트레스로 20~30대 환자들이 늘고 있다. 가발 구입비 등 몇 가지 행위에 대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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