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명 작가(전 한독약품 대표이사)

안면도(安眠島)가 섬일까? 육지일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안면도는 처음부터 섬은 아니었다.

 

고양명 작가(우측에서 두번째)가 친구들과 안면도를 여행했을 당시 찍은 단체사진
고양명 작가(우측에서 두번째)가 친구들과 함께 안면도를 여행했을 당시 찍은 단체사진
[사진=고양명 작가 제공]

우리나라의 운하의 역사를 알아 보았다. 파나마(1869)와 수에즈운하(1914))보다 무려 700년이나 앞선 12세기 고려 제 17대 인종 12년(1134) 처음 시작하여 무려 500년에 걸쳐 11차례나 시도하였으나 암반을 만나 끝내 실패했던 굴포운하의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인조 16년(1638)에 충청관찰사 김육이 안면도 북쪽인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의 운하 건설사업이 완료되어 안면곶이 섬이 된 것이다.

안면도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과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17세기부터 20세기의 1970년까지 무려 330여년 육지와는 떨어진 섬으로 살면서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안면도의 남북 길이는 25km. 동서 길이는 5.5km로 지네형국의 기다란 섬이다. 안면도 안쪽 바다인 천수만으로 안전하게 오게 하려고 운하를 팠다. 거친 뱃길에 조정에 올리는 쌀을 운송하는 선박의 좌초가 빈발하자 안전한 항로를 확보하기 위해 충청관찰사 김육이 운하를 만들었다. 요즘은 25km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통사회에서 풍선으로 가는 거리로는 대단히 먼 거리였다. 현대의 개념으로 그 당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에는 장비가 하나도 없었다.

안면도 남부지방에는 ‘쌀썩은여’라는 마을이 있다. 난파한 세곡선에서 흘러나온 쌀이 썩은 뜨물로 올라온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그만큼 험한 뱃길이었다. 안면곶은 숙종453년에 안면도(安眠島)로 바뀌었다. 오늘에 이른다.

그리나 운명은 다시 한번 U턴을 한다. 1970년 태안반도와 안면도를 잇는 안면교(연륙교)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형차량만 출입하고 버스 및 대형 트럭은 출입을 금하고 있고 1997년 안면대교를 나란히 새로 놓아 두개의 연륙교가 있다. 2013년 11월에는 태안의 드리니(신온)와 안면도의 백사장항을 잇는 길이 250미터의 해상인도교 ‘대하랑꽂게랑’이 완성되어 태안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백사장항 해상인도교다.

안면도에는 소나무가 많다. 안면송이다. 안면송은 적색을 띠었다 하여 적송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궁궐은 대부분 안면도 소나무로 지었다고 한다. 특히 세계자연유산인 수원화성은 안면송으로 지었다고 한다.

안씨성산장(安氏姓山場)은 마을의 수호신이 있는 당산(堂山) 아래 정터골에 있는 정통통나무로 지은 집이다. 안면도에는 소나무가 주를 이루나 이곳 안씨성산장 주위는 안면도에서 유일하게 참나무숲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배를 만들 때 배에 쓸 참나무 못을 만들기 위해 참나무를 심었던 밭이 있던 곳이라 한다.

안씨성산장 주인과 나와의 인연은 35년이 더 된다. 회사에서 상관과 부하직원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우리가 헤어진 지도 20여 년이 지났지만 우정은 여전하다. 작년에는 무려 3번이나 안씨성산장을 찾았다.

신년 초부터 친구들과 함께 찾아가 또 신세를 졌다. 내가 안면도에 가고 싶다고 하면 친구는 서울에서 내려온다. 정성이 대단하다. 미안 하기도 하지만 친구는 그렇게 해주고 싶다한다. 나는 갈 때마다 점점 더 안면도의 매력에 빠져들어 간다. 안면도는 중독성이 있나 보다.

오늘은 안면도 홍보대사를 자청하겠다. 나는 경기도 과천에 산다. 과천에서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인터체인지로 거쳐 2시간 달려 간월암(看月庵)에 도착했다. 간월암은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달빛으로 책을 읽었다는 암좌(庵座)다. 요즈음도 하루 2차례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특히 간월암은 낙조가 아름답다고 한다.

간월암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굴밥으로 점심을 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맛있는 굴밥은 먹어 본 적이 없다. 전혀 냄새도 없고 깔끔하다. 거기다 서비스로 준 청국장은 여러 가지 해산물을 첨가한 맛인데 일품이라 다시 찾고 싶다. ㅇㅇ네 영양굴밥이다.

이어서 부석사(浮石寺)를 관광했다. 우리나라에는 부석사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영주에 있는 부석사이고 또 한 곳은 서산에 있다. 서산 부석사는 도비산(島飛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문무와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그 뒤 무학대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왕래하고 있다. 일제강정기(일제강점기)시대 부석사에 있던 불상을 일본 도굴꾼이 대마도로 가져간 것을 몇 년 전 몰래 대마도에서 가져온 사건으로 현재도 양국 간 분쟁의 불상이 있는 절이다.

부석사 관광을 하고 나서 안면도 백사장- 삼봉- 해변길산책을 산책했다. 우리나라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는 꽃지해변의 할매바위〮할아배바위의 낙조는 날씨가 안 좋아 볼 수 없었지만 안씨성산장 야외파티로 이어진 이번 여행을 참으로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안면도에는 게국지가 유명하다. 게국지는 속이 차지 않은 배추에 작은게(농게)를 찧어서 액젖을 만들었다 고추가루와 소금등과 버물려 배추 속에 넣어 묵은지로 만들어 게국지 요리를 할 때 묵은지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게국지는 식당마다 비법이 다르다.

우리는 안면도 최고의 맛집인 팔학골의 ㅇㅇ가든에서 게국지를 사와 안씨성산장 야외파티에서 먹었다. 꽃게 대하, 굴 등이 듬뿍 들어갔고 무엇인가를 갈아 넣어서 얼큰했다. 일품이었다.

거기에 산장주가 직접 구워주는 대하 소금구이, 솥뚜껑 삼겹살 맛도 잊지 못하겠다. 숯불에 은박지로 쌓아 구운 안면도 호박고구마 맛은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우리는 다음날 7시 15분 조구널 일출을 보기 위해 산장을 나섰다. 우리는 부일암에서 수많은 추억을 남기고 안면도 고유 수제비로 아침을 했다. 그리고 안면송 휴향림 그리고 수목원을 걸어서 관광했다.

그리고 덕산의 세심관광온천호텔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왔다. 온천은 확실히 몸의 피로를 풀어 준다. 온천을 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생기가 났다. 아쉬움을 남긴 1박2일의 안면도 여행은 벌써 가마득한 추억이 되었다. 다시 가보고 싶다. 게국지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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