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 교수(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사진=조철현 교수]
[사진=조철현 교수]

“꼭 약물치료를 해야 하나요? 면담만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 건가요? 주위에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약물에 의존한다고 먹지 말라고 그래요. 이렇게 약 먹다가 중독될까봐 걱정이 돼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드물지 않게 접하게 되는 환자들의 반응이다. 치료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병식이 결여된 일부 환자를 제외하고서라도, 스스로 우울, 불안, 불면 등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원한 이들조차도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가 흔하다. 분명 정신건강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료실 문을 두드렸을 텐데, 약물치료에 대한 거부감으로 오히려 또 하나의 불안을 안고 진료실 문을 나서는 것만 같다.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것일까? 여러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정신과 약물치료의 양면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무엇이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보통 양면성은 선과 악, 장점과 단점 등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정신건강을 위한 약물치료법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은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약물의 “치료적 측면 vs. 부정적 측면(부작용에 대한 거부감, 약물의존에 대한 두려움, 생물학적 치료방법에 대한 거부감 등)”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약물치료법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신과 치료의 걸림돌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다면 치료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에 필자는 우리의 목표인 정신건강을 위해 약물치료법의 양면성에 대해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독자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법의 양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우리 안에 뿌리내린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를 알아야 한다.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된 이분법적 사고는 의학, 과학의 발달에 큰 기여를 했지만 인간을 몸(육체)과 마음(정신)으로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보편화했다.

생의학적 모델(Biomedical model)에서 생물-심리-사회적 모델(Bio-Psycho-Social model)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이동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도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지만, 현대인들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몸과 마음을 나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음의 문제를 몸(생물학적 원인)에서 찾고, 몸의 차원(약물치료법)에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마음의 문제는 마음에 있고 마음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몸의 차원에서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를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각을 뛰어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며 따로 나눠 생각할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충분조건이다. 몸의 문제를 마음에서 찾을 수 있고, 마음의 문제는 몸에서 찾을 수 있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는 여기에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 즉 몸과 마음이 통합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약물과는 달리, 정신과 약물은 기분, 사고, 인지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환자들이 약물에 대해 갖는 태도는 일반적인 약물과는 매우 다르다. 서두의 사례에서 보듯이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를 시작할 때 환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걱정하는 것은 바로 약물의존 또는 중독이다.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들이 걱정하는 의존이나 중독의 개념은 의학적으로 말하는 그것이 아니다. 물론 중독의 사전적 의미 중 ‘계속적으로 지나치게 복용해 그것이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부 의미하겠지만,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과도한 걱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약물치료가 환자의 주체성을 침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다. 단순히 통증을 완화시키거나 소화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과 약물에 대해 경계할 만한 이유는 충분한 듯하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왜곡된 사고가 교정되는 등의 변화를 경험한다면 증상의 호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느낌이겠지만, 반대로 약물에 의해 주체성이 침해받고 심지어는 약물에 의해 환자가 끌려다닌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약물이 우리의 마음(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곧바로 약물이 우리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정신)을 조종하고, 우리는 약물에 의존하게 하는 이유일까? 자, 다시 한 번 치료의 시작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는 수차례 고민과 갈등 끝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진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정신과적 상담과 함께 약물치료를 권유받게 된다. 처음에는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으로 투약에 대해 고민이 되고 주저할 수 있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고 증상의 호전을 희망하면서 투약을 시작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로 결심하고,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 투약을 결정하는 것은 누가 한 것인가? 바로 환자 자신이다. 환자가 치료받기로 결정하고, 충분한 전문가적 지식을 듣고 판단한 후에 환자가 투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아무리 정신과 전문의가 처방을 내도 환자 자신이 투약하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약물치료는 전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약물 부작용을 경험할 때나 증상이 없음에도 약물치료를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도 치료의 주인공인 환자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단, 환자가 치료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면 환자는 왜 부작용이 생겼는지, 부작용이 조절 가능한 것인지 등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전문가에게 요구해야 한다. 또한, 증상이 없음에도 투약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부족하고 부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혼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면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약물치료를 포함한 정신과 치료의 주인공은 바로 환자 자신이다. 특히, 약물치료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도 보호자도 아닌 바로 환자 자신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치료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환자는 치료 전반에 걸쳐 정신과적 지식을 충분히 습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설명과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전문가의 말에 귀를 닫고 약물의존이나 중독을 걱정하는 그 순간이 환자 스스로 약물치료의 주인공임을 부정하는 순간인 것이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할 수 있는 두 번째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약물)치료를 고민하고 결정하고 지속하는 주체, 그 주인공은 바로 환자 자신이라는 것을 매번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정신건강을 위한 치료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기 위해서 잠시나마 고찰을 해봤다. 양면성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나열하지 못한 부분들이 많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는 필자가 환자들에게 매번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마음(정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몸과 마음의 차원으로 통합시키자는 것과 약물치료가 마음(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치 치료의 주도권을 약물이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약물)치료의 주인공은 환자 자신임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비단 약물치료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에만 중요한 디딤돌이 아니라, 정신건강 자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즉, 정신건강은 우리 자신에 대해 몸과 마음의 통합적인 시각을 회복하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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