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땅덩어리가 크지 않은 탓에 지도에서 보면 빨간 점으로 표시돼 일명 ‘레드 닷’으로 불리우는 싱가폴은 아시아의 허브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만큼이나 음식이나 문화도 다채로워 하나의 거대한 ‘멜팅팟 (melting pot)’으로도 불린다. 리틀 인디아, 차이나 타운, 홀랜드 빌리지, 아랍 스트리트를 비롯해 코리아 타운까지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싱가폴의 거리를 걷다 보면 오히려 싱가폴의 전통문화는 무엇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지정학적으로 말레이 반도의 끝에 위치한 싱가폴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넘나 들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에게 중간 기항지 역할을 해왔다. 무역업이 흥하면서 주변 국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싱가폴로 이주해 왔는데 15세기경에는 중국의 푸젠성과 광둥성에서 많은 사람들이 싱가폴로 몰려 들었다. 이렇게 중국에서 들어와 일하던 사람들 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싱가폴에 정착하며 현지에 살고 있던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을 해 후손을 이루기도 했는데 이들을 페라나칸이라고 부른다. 말레이어로 ‘현지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가진 페라나칸은 해외에서 이주해 온 이민계 남성과 현지여성 사이에 태어난 후손을 뜻하는 말인데 싱가폴에서는 중국계 페라나칸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낸 페라나칸 문화는 중국과 말레이지아의 문화가 혼합돼 독특한 문화양식을 이룬다. 싱가폴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의 페라나칸을 보려면 페라나칸 박물관으로 가보자.

페라나칸 박물관은 1912년에 건축돼 타오난 학교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2005년에 개관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3층 건물에는 10개의 상설 전시관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페라나칸의 보석, 가구, 직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거주했던 집안모습까지 재현돼 있어 흡사 민속촌을 방문한 느낌도 든다. 그들이 지냈던 제례상도 재현돼 있는데 가부장적인 중국계 남성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부분 중국식이다.

개인적으로 페라나칸 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화려’이다. 색이 화려한 실크 원단에 섬세한 자수가 놓인 테이블 보나 여러 가지 색깔의 비즈를 이용해 만든 액세서리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페라나칸 여성들의 전통의상은 ‘사롱 케바야’라고 부르는데 케바야는 원래 아랍 지역에서 유래된 의상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동남아시아에 소개됐다고 한다. 사롱이라 불리는 치마에 케바야를 걸치고 비즈로 만든 구두나 가방을 들면 페라나칸식 멋진 외출복이 된다. 페라나칸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사롱과 케바야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데 현재 싱가폴 항공과 말레이시아 항공 승무원들이 입는 유니폼에도 케바야에서 변형된 디자인이 적용됐다. 페라나칸이 사용하던 도자기 역시 화려하다. 형식이나 구조는 중국식을 차용했지만 자주색이나 빨간색을 많이 쓰는 중국에 비해 하늘색, 분홍색, 연두색, 보라색 등 동남아 특유의 밝은 색을 사용해 독창적인 색감을 드러낸다.

화려함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페라나칸의 결혼식이다. 중국 전통예식을 따르는 결혼식은 무려 12일동안이나 진행됐으며 자수와 구슬공예로 장식된 화려한 예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 그리고 하객들이 모두 하나돼 노래와 춤을 추며 두 집안의 결합을 축하했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으로 수 놓는 것을 배웠던 여성들은 본인이 직접 만든 구슬 공예품과 자수품을 결혼예물로 쓰기도 했는데 신부의 수 놓는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남자 집에서 예물로 천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는 주로 길상을 의미하는 봉황이나 두루미, 모란 등을 그려 부와 행복, 장수, 다산등을 염원했다.

중국에서 노동자로 건너와 타지에서 힘겹게 일궈낸 부의 과시를 통해 그간 겪어왔던 힘들었던 시절을 보상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까. 결혼식 뿐만 아니라 제사, 장례식 등에 사용되는 페라나칸의 복장이나 의례는 허례허식에 가까울 정도로 화려함이 묻어 있다. 이렇게 성공한 페라나칸은 서구화된 엘리트로서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영어를 배우고 서구식 복장을 하며 테니스나 크리켓등의 서양 스포츠를 즐겼으며 주택에도 서구식 문화를 가미했다. 코린트 양식 기둥에 지중해식 창문과 덧문을 달고 중국식 유약 타일등을 사용한 페라나칸 주택은 가옥 한 채에 동서양의 지역 문화를 담고 있다.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초상화 그리기였다. 당시 싱가포르 사회의 저명 인사였던 송옹시앙(宋旺相, Song Ong Siang, 1871-1941)의 초상화는 당시 엘리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두 문화의 결합으로 형성된 페라나칸 문화가 최근 들어 더욱 조명을 받는 이유는 현재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싱가폴이 추구하고 있는 문화적 바램때문은 아닐까. 아시아의 허브, 아시아의 멜팅 팟인 싱가폴에서 제2의 페라나칸이 탄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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