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제약사출입기자모임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제도의 방향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정부와 제약업계 간 이해의 간극을 좁히고자 비공개 형식으로 ‘약가, 까놓고 얘기합시다’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등재부 등 정부 관계자와 다국적 제약사 Market Access 담당자 등 제약계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정부측에서도 복지부 보험약제과 곽명섭 과장과 송영진 사무관, 심평원 김국희 치료재료등재부장(전 약제등재부장)이, 제약계에서는 한국얀센 임경화 상무와 세엘진코리아 여동호 부장이 패널로 나서 정부가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보험약제 연간 검토계획’과 ‘선별급여’를 비롯, 약가제도 전반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 받았다. 



≫ 새롭게 시도되는 ‘보험약제 연간 검토계획’…신뢰 형성이 관건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송영진 사무관은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보험약제 연간 검토계획’ 도입 방안과 ‘보험약제 선별급여’ 방안을 소개했다. 보험약제 연간 검토계획은 제약사들로부터 신규약제 급여 등재나 기존 약제의 급여기준 확대에 대한 연간 계획을 사전에 수렴하는 제도다.

이는 급여 등재 관련 수요를 사전에 파악하고 연간 검토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보험약제 업무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현실화 될 경우 급여 등재에 소요되는 기간도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제약사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일단 업계는 정부에서 ‘예측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 자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한 연단위 검토 계획이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문제는 이 제도 자체가 정부 측의 설명대로 과연 제약사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

우선 업계는 제약사의 정보가 지나치게 정부 측으로 쏠릴 수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경화 상무는 “제약사가 제출하는 자료가 오히려 향후 기업의 발목을 잡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다”면서 “어느 수준까지 정리해서 자료를 정부 측에 제출해야 하는지가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임 상무는 “만약 제출한 자료가 정부 예산이 크게 투입돼야 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검토가 뒤로 밀리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최근 비슷한 약제들이 시장에 한꺼번에 나오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향을 따르다 보면 오히려 첫 번째로 제출된 약제가 장기간 대기상태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영진 사무관은 정부는 단지 큰 틀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정부도 특정 약제에 대한 급여 검토가 뒤로 밀리거나 후발 약제로 인한 선발 약제의 급여 등재 지연에 대해서는 우려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제약사가 주장하는 정보의 불균형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정도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항상 수세에 몰리고 방어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정보 유출의 우려에 대해서는 제출하는 자료에 대해 대외비를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 업계, 선별급여 위한 사전약가인하 ‘과도’ vs. 정부 “동의 어렵다”
선별급여 제도와 관련해서는 정부의 사전약가인하 계획에 대한 업계의 불만이 쏟아졌다. 이미 사후약가인하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예측 불가능한 사전약가인하까지 감내하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것.

임경화 상무는 선별급여가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은 동의하면서도 “환자 접근성을 두고 완전 비급여 대신 어느정도 급여를 준다는 이유로 약가를 인하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의문스럽다”며 “불투명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선별급여를 하면서 사전약가인하까지 시행하면 상당한 잡음이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임상적 유용성 비용이 불분명한 것은 제외하더라도 제약사가 비용효과적으로 약가를 맞추겠다고 결정했거나, 선별급여 3년 이후 명확한 데이터를 확보해 필수급여에 들어간다면 약가 인하가 없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곽명섭 과장은 현행 제도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전약가인하 제도에서 선별급여가 도입돼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 이유로 곽 과장은 “기준비급여 해소단계에서는 현행 기준과 관련된 처리 절차에 따라 갈 수밖에 없는데, 정부의 시각에서 볼 때 본인부담율이 5%에서 30%로 변경되면 공단 부담률이 95%에서 70%로 변경될 뿐 제약사 몫은 기존의 시스템과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정영향분석 시 신규 환자 증가폭을 예측하는 부분에서는 고민이 있다”면서 “본인부담률 5%일 때와 30%일 때의 환자 진입권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현재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례가 쌓이다 보면 향후 정형화도 가능할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신규 환자 증가 폭에는 본인부담률 변화 뿐 아니라 약제의 다양한 특성들이 모두 변수가 되기 때문에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저가와 고가의 약제, 대체제가 있는 약제와 없는 약제는 본인 부담률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사용량 변화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분석인 것.

이와 관련 여동호 부장은 “대체제가 없는 상황에서 도입되는 약제라면 환자부담률이 30%라 할지라도 환자 사용량이 상당하지만 이미 다른 약제들이 있는 상황에서 진입하는 치료제라면 과연 환자의 요구가 어느정도 될지 생각해 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임경화 상무 역시 “예를 들어 500만원짜리 약이라면 환자부담금 5% 또는 30%로 나눌 경우 지불 능력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면서 “이러한 부분들을 어떻게 기술적으로 예측할 것인지 충분히 고려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RSA, 정부 “제약사 영업전략” vs. 기업 “제도적 보완 시급”
기존 제도 중에서는 위험분담계약제(RSA) 확대 계획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곽명섭 과장은 “RSA 확대를 많이 요구하는데 현재도 항암제나 희귀질환 이외에도 예외 근거 규정이 있다”면서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대부분 항암제나 희귀, 난치 치료제가 대상이며 관련 규정이 없는 국가도 있지만 실제 운영 형태를 살펴보면 국내와 다른 국가에서 큰 차이가 없다”며 RSA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그는 “RSA 기준이 대체 약제가 없는 치료제이다 보니 한 치료군에서 특정 제품이 RSA 급여권에 먼저 들어왔을 때 동일 치료군에서 다른 제품은 RSA 급여를 받지 못해 사실상 먼저 들어온 약이 독점 시장을 갖게 되는 구조”라는 점을 인식하고 “치료제 독점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관련 안 개편에 대해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위험분담계약제와 경제성평가 면제제도가 환자 접근성 향상에 기여하는 정책적 효과를 거둔 만큼 항암제나 희귀질환 이외의 약제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 여동호 부장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환자 접근성이 확대되고 재정적인 부분도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했던 만큼 제약업계도 RSA를 확대하는 데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는 전반적인 사회적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송영진 사무관은 “환자들은 약을 써야하는 입장인 만큼 이왕이면 낮은 가격에서 더 좋은 약을 쓰는 것을 원하고 제약사 또한 약을 공급하는 곳이므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 중요한 게 사실이다”면서도 “다만 세금을 내고 혜택을 받지 않는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해 고민해 볼 문제”라며 사회적 요구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요구했다.

이 같은 정부 측 해석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시민단체가 반대한다 하더라도 이 제도가 환자들에게 혜택이 있다면 그들을 설득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곽명섭 과장은 “RSA가 환자를 위한 제도라고 언급하지만 이는 사실상 실제 가격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영업전략의 일환인 만큼 실질적으로는 제약사에게 유리한 제도가 맞다”며 “시민사회가 약가의 불투명성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RSA의 경우 단일적인 논의사항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협의체 선정과 사회적 논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사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단편적인 측면만 보고 정책을 실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임경화 상무는 RSA 도입 후 그간의 문제점을 고민하고 있다는 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RSA도 제약사가 원해서 추진하는 제도라고는 말하지만 사실은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이 이를 활용하는 게 사실”이라며 “당초 환자를 위해 RSA가 도입됐던 만큼 현 시점에서 최선책을 못 찾으면 차안을 찾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 약가수준 논쟁 반복 무의미…‘실리 찾기’에 공감대 형성
한편 이번 토론회를 통해 그간 우리나라 약가 수준을 두고 낙인처럼 따라다니던 ‘OECD 45% ’라는 수식어에 대한 두 가지 의미 있는 결론이 도출됐다.

그 가운데 한 가지 결론은 해외 가격 대비 우리나라의 약가 수준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는 최근 우리나라의 약가가 워낙 낮아 해외에서 이를 참조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보니 국내에서 급여등재 신청을 늦추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에서는 앞서 두 차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신약 등재가격이 OECD 평균 45%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측은 물론 제약계 패널들도 OECD 평균 45%라는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는데 공감했다. ‘모른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는 지적인 것.

이에 대해 여동호 부장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표시가격이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도 표시가격을 비교하지는 않는다”면서 “이는 각 국가별로 다양한 기전에 따라 표시가격을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표시가격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한 임경화 상무는 “우리나라는 가격이 하나 밖에 없어서 투명성이 담보되지만 외국의 경우 환급형이나 리베이트 등 종류가 많기 때문에 실제 가격이 낮을 것이라고 예상은 가능하나 실가격을 정확하게 공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해당 회사 직원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실제 가격인데 그 자료를 가지고 약가를 비교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송영진 사무관은 “OECD 45% 약가 얘기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다”며 “약가 수준을 도출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계산 방법에 따라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데 방법적인 부분은 무시하고 단순히 결과적으로 ‘한국 약가 OCED 45%’만 언급하면 통상에 임하는 정부 입장도 곤란해진다”고 토로했다.

곽명섭 과장 역시 “내부에서 심평원 자료 등 여러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OECD 45% 약가 수준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곳에 모인 제약사 관계자들도 약가와 관련해서는 본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실가격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으며 다른 국가들 역시 약가를 발표하면서 타국의 약가를 정확하게 수치화 하지는 않는다”며 “때문에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현 과정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날 비록 OECD 45%로 통용되던 우리나라의 약가 수준이 ‘알 수 없다’로 수정됐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리스트 가격이 낮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이에 정부와 업계에서는 또 다른 결론, ‘실리를 찾자’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임경화 상무는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리스트 가격을 기준으로 약가를 비교하는데 문제는 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다는 것”이라며 “재정을 늘리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리스트 가격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등 업계가 실리를 찾을 수 있는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곽명섭 과장 또한 “정부의 고민도 동일하다”며 “등재기간 부분, 약가 수준에 대한 부분에서는 논쟁이 아니라 건설적인 발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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