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정부와 제약사, 환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는 특히 생명과 직결되는 항암제 영역에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제약사와 환자들은 급여등재 기간과 비급여 품목 수를 두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보험재정의 소요를 감안해 형평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재의 급여시스템을 가동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본지가 국내 시장에 들어온 항암제에 대한 보험약가 결정 과정과 문제점, 그리고 그 대안을 집중 분석했다.

>> 항암신약, 급여권 진입 ‘최대 7년’ 심각

우리나라의 보험약가 제도는 의약품의 보험등재 측면에서 치료적,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만을 선별해 보험을 적용하는 ‘선별등재제도’와 보험약제비의 상환 측면에서 약제급여목록표로 고시된 상한금액 이내에서 실거래가로 상환하는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항암제 급여는 신청된 치료제의 57%(심평원 자료 2007~2017년도 심의기준) 정도만 인정되는데 이는 일반약제 및 희귀질환치료제에 비해 약 20% 낮은 수준이다. 

심평원 자료에 따르면 등재 소요일수 역시 약제 종류별로 다른데, 실제로 일반약이 249일, 희귀질환치료제가 260일, 항암제는 348일로 항암제가 타 약제보다 100일 가량이 더 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심평원은 “2014~2017년 고시 기준으로 제약사 결정신청 이후 심평원 평가기간은 제약사 보완까지 포함해 평균 185일이 소요된다. 또 식약처 허가부터 제약사 결정신청까지는 평균 178일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제약사의 재결정신청 등의 사유로 실제 등재까지의 기간은 제품별로 차이가 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약평위의 비용효과성 검증 과정에서 삼수, 사수를 하다보면 실제 급여 등재가 되기까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7년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있었던 약평위 급여여부 결과에 따르면 한국릴리 위암치료제 ‘사이람자’는 3년, 에자이 혈액암치료제 ‘심벤다’는 7년, 한국화이자 신세포암치료제 ‘인라이타’는 6년, 사노피 전립선암치료제 ‘제브타나’ 6년, 한국얀센 전립선암치료제 ‘자이티가’기 7년 만에 식약처 허가뒤 각각 급여 통과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화이자의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가 여전히 급여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난소암 치료제 ‘아바스틴’의 경우, 환자가 6개월이 지나 재발한 ‘백금 감수성 재발 난소암’일 때는 비급여 상태다.

또한 최근 글로벌에서 면역항암제가 1차 치료제로 승격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키트루다와 옵디보가 각각 급여 확대를 신청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 규제완화 vs. 가격인하, 악순환고리 절단 ‘시급’

이 같이 항암제의 급여등재가 장기간 소요되는 이유로 크게 2가지가 압축되고 있다. 제약사는 정부의 급여 평가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을 주요인으로 꼽고 있으며 정부는 제약사가 제시하는 항암제의 가격이 과도하게 비싼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에 들어온 항암신약은 국내 급여기준인 ‘비용효과성’을 쉽게 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이는 국내 급여구조가 애초부터 제약기업이 제시하는 (비싼)가격을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통과 자체가 어렵다는 게 약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고가항암제에 대해 ‘위험분담제도’를 도입해 신약의 효능·재정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약사가 일부 분담해 약제들의 급여 적용을 통해 환자의 치료접근성을 개선했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가 시행 5년차에 들면서 재계약을 위한 재평가에 들어가는 약제들이 등장하자 이 과정에서 재계약을 위한 경제성 평가를 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 것.

이에 제약사들은 정부에 규제완화 차원에서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대체 약제가 없고 경제성 평가가 어려워 현 제도를 도입했는데 정작 이제 와서 재계약을 위해 경제성 평가를 받으라는 정부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항암제의 허가초과 사용 약제의 급여 확대를 위한 ‘선급여후평가’제도 역시 업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건의되고 있으나 선등재 이후 경제성평가 및 결과의 적용방법, 그리고 제약사의 결과 불수용 시 환자보호장치 마련에 대한 고민으로 정부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제약사가 책정한 항암제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일각의 주장도 정부, 의계, 환자의 공통적 의견이다. 여기서 제약사가 약값만 낮춘다면 경제성평가 등 기존의 급여장벽으로 여겨진 문제점들이 단번에 해결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제약사가 신청한 항암신약 가격 대비 심평원의 평가가격은 평균 63% 수준으로 확인됐다. 즉 제약사가 제시한 가격에서 절반 정도를 삭감해야 급여의 적정성이 인정된다는 의미다.

때문에 국내 항암제 약가에 대한 제약사들의 항변도 일리는 있다. 더욱이 항암신약을 개발하는데 평균 약 10년 이상 걸리며 그 비용은 10억 달러 이상 들어간다는 제약사의 주장을 감안하면 급여등재의 시급성을 언급하는 기업의 논리에도 어느 정도 설득력은 있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약사의 주장에 대해 초기 약가 자체가 신약투자비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데다 R&D 투자의 투명성마저 결여돼 있어 이미 약값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이다.

>> ‘한국형 기금제도’, 정부·기업 동시 충족 ‘대안’

정부는 지난 6월 ‘비급여의 급여화 실행계획’을 세웠고 항암제 48항목에 대해 연차별 추진 로드맵에 따라 항암제를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선별급여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으로 이 제도는 비용효과성 등이 명확하지 않아 비급여로 분류됐던 의약품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높여 건강보험을 적용해 약품비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경제성 평가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 관계자는 “이 제도의 핵심은 기준비급여를 급여권으로 우선 끌고 오자는 것으로, 여기에서도 임상적 유효성이 불확실하고 경제성이 너무 떨어질 경우 비급여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새로운 제도 시행 후에도 여전히 경제성평가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당 제도는 올해 말에서 내년 초 중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약업계는 ‘항암제의 가치평가 차등적 선별제도’ 도입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생존율에 따라 A약 5개월, B약 20개월 등 생존율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거나 보험적용 비율을 달리해 1년 생존에 드는 비용이 1천만 원이라면 100% 적용, 8천만 원이하면 70% 적용 등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다.

별도의 해외 ‘기금 제도’를 벤치마킹하자는 의견도 있다. 영국의 항암제기금 Cancer Drug Fund(CDF)는 환자가 항암제를 복용할 수 있도록 약값을 지원하는 제도로 국가의료보건서비스(NICE)에서 일반적으로 기준을 충족할만한 가능성이 있는 약품이지만 임상적 자료 및 비용효과성 등 불확실성이 있다면 CDF가 지원해주고 있다.

이는 암질환 기금을 통해 항암제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캐나다, 호주 등이 도입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절반에 가까운 항암제에서 기금을 통해 급여를 인정해 주고 보장성을 높이고 있다.

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약 값을 낮추지 않고 정부도 경제성평가를 고수한다면 결국 ‘한국형기금제도’ 도입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항암제 급여화의 신속 도입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적으로 기반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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