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

전 세계가 기존 항생제에 모든 내성을 보이는 슈퍼 박테리아에 대한 위협에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항생제 관리가 외면당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웹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균인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 신고 건수는 전수감시가 시작된 지난 6월 3일부터 4달 만에 3,343건이 보고된 것으로 집계됐다. 더 이상 우리나라도 슈퍼 박테리아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전세계가 항생제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2년부터 ‘항생제 개발 촉진법’을 시행하면서 신속 허가 및 시장독점권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항생제 약가가 낮게 책정되는 등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국내 제약사들은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회의적인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내 보건당국에서 허가받은 항생제는 6종에 불과하고 이 중 ▲타이제사이클린 ▲도리페넴 ▲자보플록사신 등 3개 품목만이 시장에 출시됐다.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CRE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비유하며 정부가 제2의 메르스 사태로 확산되지 않도록 항생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교수를 만나 국내 항생제 관련 정책에 대한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들어보았다. 



국내 생산 포기하고 해외로 간 ‘시벡스트로’
미국 대비 1/3 수준 낮은 약가 등 저평가 문제


정부가 제약산업 발전을 위해 신약 개발에 목청을 높이고 있지만 중대 질환이나 항암제와 같은 치료제에 혜택이 집중돼 있다. 항생제의 경우 국내에서는 시장성이 낮은데다 약가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많은 제약사들이 아예 신약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개발을 해도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재작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국내 생산을 포기한 동아에스티의 ‘시벡스트로’가 그 대표 사례다. 동아에스티는 ‘시벡스트로(성분명 테디졸리드인산염)’ 개발 중 해외 기술수출에 성공하면서 국내제조가 아닌 해외에서 제조해 수입키로 결정했다. 미국 대비 국내 약가는 1/3 수준에 불과해 국내에 별도의 항생제 제조시설을 짓기보다 해외에서 완제품을 들여오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재갑 교수는 “항생제는 한국을 끼고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해 허가받은 후에 국내로 들어오는 게 제약사 입장에서는 더 편한 상황”이라며 “가뜩이나 국내 시장도 작은데 우리나라는 약가 결정체계가 너무 복잡하고 약가도 인정받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특히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약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출시를 포기하는 약들이 앞으로 계속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타협 불능에 한국시장 포기한 글로벌사
1일 90만원 최소 10일 복용 … 약값 환자 부담 전가


이 교수는 10여년 전부터 감염내과나 순환기내과에서 판막 수술 후 감염됐을 때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현재 판막수술 후 감염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효과가 좋은 약이 ‘큐비신(성분명 답토마이신)’인데 10년째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약가 산정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국 한국시장을 포기해버렸다”고 언급했다.

더 황당한 점은 국내에 해당 항생제의 제네릭이 퍼스트 약제로 들어와 있고 희귀의약품센터에 등록돼 필요한 사람만 사용토록 하고 있다는 것. 비급여라서 하루 약값이 90만 원 정도이고 최소 10일 이상 복용해야 해 환자들이 처방을 받아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는 감기 항생제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재내성 감염 관리부분에는 매우 소홀하다. 중환자실의 다재내성 감염은 일반 감기 항생제와는 접근 틀 자체가 전혀 다르다”며 “감기 항생제는 거시적 측면이 강하지만 다재내성 감염관리는 숫자는 작아도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위험이 매우 높아 초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가능한 항생제가 적어 콜리스틴과 같은 버려진 약들이 다시 재사용되거나 내성 발생 시 두세 개의 항생제를 복합 처방하는 방식으로 치료가 이뤄지고 있어 이미 출시된 항생제로는 치료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열악한 국내 환경에 ‘저박사’ 도전장
항생제 개발·도입 위해 장단기적 투자·논의 필요


또 다른 사례로는 카바페넴 분해 효소 억제제 계열도 신약으로 주목받으면서 미국에서는 1차 약제로 쓰일 수 있도록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차 약제로 묶여 정작 제대로 된 치료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약이 있어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없는 것만 못한 상황이다.

이같이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MSD는 2014년 미국 FDA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은 ‘저박사(성분명 세프톨로잔+타조박탐)’로 국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MSD 관계자는 한국 약가가 다른 국가들에서 약가 기준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만큼 약가협상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세계적으로 슈퍼 박테리아 감염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고 우리나라도 이 상태로 가면 2~3년 내로 전국 각지에서 터질 수 있다”며 “이미 터진 후에는 치료 가능한 항생제가 국내에 없어 우왕좌왕하다 피해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무조건적으로 낮은 약가에만 초점을 맞춰 심평원과 제약사가 서로 진만 빼는 불필요한 소모전에서 벗어나 보장성 강화 측면에서 어떤 부분에 대해 약가를 적용해 줄 것인지에 대한 상호협의가 사전에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미국이 결핵을 관리하는 데만 40년이 걸렸는데 우리나라는 5~10년 이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려고 한다”며 “한시적으로 반짝하는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노하우를 축적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기적으로는 정부와 제약사, 관련학회 등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도입이 시급한 항생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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