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태 전무(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개발본부장)

2016년 갤럭시 노트7의 클레임 때문에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삼성전자는 모든 대졸자의 선망의 직장이자, 국내 산업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다. 오죽하면 <삼성고시> 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필자가 제약회사에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1983년,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산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설계기술은 미국의 Micro technology로부터, 생산공정기술은 일본의 Sharp사로부터 도입하여 업계에 뛰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설탕이나 조미료 팔아서 번 돈을 모두 다 까먹게 생겼다고 비아냥거렸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인지 제약회사에 다니던 필자의 대졸월급이 40만 원 정도일 때, 삼성의 대졸초봉은 27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4년 뒤인 1987년 창업주가 돌아가시고 이건희 회장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삼성전자는 癌에 걸렸다. 어떻게 하면 체면 안구기고 회사 문을 닫을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라고 진단했다.

他山之石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이 생존하려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선언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사이 일본의 경쟁기업은 파산해 미국 Micron으로 합병되고, Sony Panasonic, National 등의 일본 굴지의 전자기업들의 이익금을 모두 합친 것보다 삼성 1개사의 이익금이 훨씬 커서, 초창기 삼성에게 생산공정기술을 대준 Sharp는 국적기업(國賊企業, Enemy of state)으로 몰려 불매운동까지 일어날 지경이 됐다. 33년이 흐른 지금 전세계 반도체의 70%는 삼성과 하이닉스 등 국내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삼성의 출발과 같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33년의 ‘약밥을 먹는’ 세월이 흐르면서 업종간의 희비가 엇갈리는 걸 보면서, 누가 미래에 대한 慧眼을 가지고, 어떻게 업종을 이끌어 가는가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악가인하, 리베이트 문제 등 약업계가 평온한 한 해를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2016년 많은 제약회사들이 다사다난하고 거친 환경의 변화를 겪으면서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발버둥 치면서 또 연말을 보냈다.

똑같이 출발을 했는데 어떤 기업은 쑥쑥 커나가고, 어떤 기업은 한참이나 달렸다고 생각하는데 제자리를 면치 못하는가? 내부가 잘못 됐나? 환경이 냉혹하기 때문인가? 아마 모든 기업인의 고민일 것이다.

한국제약의 가야 할 길

굳이 경영이론을 끌어대지 않더라도, 기업이 가치 있고, 희소하고, 모방이 어렵고, 대체 불가능한(VRIN : Valuable, Rare, Inimitable, Non-substitutable) 것을 가졌는가 여부에 성패를 나눈다고 한다. 그것이 결속력이 강하고 같은 목적으로 매진하는 단단한 인적 조직이건, 모방 불가능한 제품이건, 그런 것을 갖기 위해 삼성이 그랬듯이 끊임없는 혁신을 하여, 지금의 위치로 간 것이다.

타산지석으로 다른 눈부신 성과를 보인 업종에서 배우자면 한국제약이 발전할 길은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하나는 남들이 갖지 못한 제품을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루빨리 세계시장으로 내다 팔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길이다. 이에 대해 당장 반론이 나올 것이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고.

우리 제약기업은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한국 제약은 제네릭에서 개량신약(IMD, incrementally modified drugs)으로, 그리고 신물질 신약(NME, new molecular entity)으로 꾸준히 진화해 왔다.

기업은 본능적으로 원가우위 전략, 차별화 전략, 집중화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발전할 방법을 모색하지만, 제약에서 원가 우위 전략과 차별화 전략은 근본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물질특허가 만료돼 30여 품목씩 제네릭이 쏟아지는 상황은 정상도 아니고, 끊임없는 리베이트 문제를 야기 시키는 걸 보아 왔다.

세계시장에서는 중국이나 인도의 원료를 사다가 완제품으로 만들어서는 후진국시장에서 중국, 인도의 제품과 가격경쟁을 하기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제약실정을 미뤄보면, 우수하고 얼마든지 있는 사람, 싼 임금이라는 인도식 모델은 통하지 않는다.

제약이 제네릭의 개발경쟁에 매몰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견 제약사에 몸담고 필자로서의 고민은 그렇다면 어느 분야를 할 것 인가였다.

일 년 내내 1,000원을 버는 회사더러 2,000원을 투자해 얼마의 시간을 걸릴지도 모른 채 세계 최초의 혁신적인 신물질(New molecular entity)을 개발해 글로벌을 휩쓸라는 것은, 마당에서 키우는 닭이 황금알을 낳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신물질들이 세계시장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은, 개발된 물질신약이 기존의 약물보다 얼마만큼 효용성이 더 큰가를 글로벌 임상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그 글로벌 임상이라는 것이 우리 규모의 제약회사들이 과감히 결정하기 쉽지 않은 경제성 원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우선 우리의 핵심역량을 잘 파악해 우리가 무엇에 강점이 있고 어느 분야를 잘 할 수 있느냐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했다.

제네릭 의약품의 기본 전략은 특허 만료 이후 타 경쟁사보다 먼저 제품을 출시해 시장 점유율 확보에 유리한 위치에 서고, 원가 절감을 통해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신약의 경우, 기존 제품보다 우수한 효과 또는 안전성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가치를 시장에 제공하고, 특허로 보호를 받아 시장에서 기존 제품보다 높은 가격을 받아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

개량 신약은 제네릭과 혁신신약의 중간 단계로 기존 제품과 차별화 할 수 있는 가치창출을 통해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당사가 개량신약(IMD incrementally modified drug)으로 집중하기로 한 이유이다.

글로벌로의 혁신 


스위스는 국토의 크기나 국민 수, 내수의약품의 시장규모 등에서 우리나라에 훨씬 못 미치지만 노바티스나 로슈 같은 세계적인 제약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 의약품 생산은 10%가 내수용이고 90%가 수출용이다 보니 지구반대편인 우리나라까지 지사를 만들어 사람을 파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그만큼 매력적인 시장인 것이다.

우리나라 제약은 90%가 내수용으로 국내에서 수많은 제약회사가 경쟁하고 복작거리다 보니 안방대장, 골목대장을 면하지 못하고 있고 내수형 산업으로 가끔 매스컴의 지탄을 받기도 한다.

지금 우리 제약이 할 수 있는 혁신은 눈을 세계로 돌리는 것이다.
손쉬운 제너릭의 개발이나 내수시장에서의 과당경쟁, 다국적사의 신약 도입으로 도매상으로 전락하는 것 등은 당장은 생존하겠지만 장기적인 大計는 아니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려고 대한민국 사상최대 규모라는 조 단위의 라이센싱-아웃의 큰 발은 내디딘 곳은 한미약품이였다. 시샘 어린 부러움을 받으며 제약산업이 드디어 삼성이나 현대 같은 효자산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하는지, 또 얼마나 경험이 쌓여야만 하는지를 느끼게 됐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유나이티드제약은 아직 중견기업의 규모이지만 셋방살이 와 비슷한 라이센싱-인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잘할 수 있는 강점분야인 개량신약 개발에 집중하고, 개발된 제품은 50% 이상의 매출비중을 높이자는 독특한 목표를 설정했다.

개량 신약의 개발에 힘입어 2012년 1,348억 원의 매출에서 2016년 1,764억 원(추정치)으로 연평균 7%의 성장을 이루었다. ‘실로스탄CR정’은 당사 대표 품목으로 성장해 올해 국내 매출 200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개량신약으로 해외로 진출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과 한계가 따르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조사와 국가별, 지역별 전략 수립이 매우 중요하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진출 국가 DMF 등록 원료 사용, 지역 특성에 따른 안정성 시험(Zone IVb stability), 기술 표준 문서 작성 등 추가의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시간과 돈이 넉넉하지 않은 중견기업의 입장에서는 실패하면 안 되기 때문에 사전에 사업성을 봐서 투자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중견 기업의 애로점은 대기업에 비해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며,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임상 시험에 너무 많은 비용과 자원을 투자해서는 사업성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개량 신약을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제조소의 품질 문서 관리, 진출 국가 DMF 원료확보, 국가별 요구에 부합하는 임상시험 자료 등 내부적으로 산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벌화하기 위해서는 타깃 지역에서의 임상-개발-허가에 이르는 투자도 당연히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비용을 파트너 없이 독자의 자원으로 해결하기에는 큰 리스크를 수반할 수밖에 없어,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분담할 파트너가 필수적이다.

개발시간상의 문제도 있다. 주로 허가를 주는 당국으로부터 많이 요구 받지만, 개발 초기부터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을 진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며 국내 발매 지연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도 직면하게 된다. 자국에서 지연된다면 세계적인 개발경쟁에서도 이기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개발 구상 단계에 철저한 시장 조사와 국가별 가이드라인 파악을 통해, 품목별로 국가를 선정해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당사도 이러한 전략을 통해 시장을 확대해 왔고, 글로벌화를 할 수 있고 우리제품을 원하는 빅파마 파트너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3년에는 이스라엘 글로벌 TEVA와 ‘클란자CR정’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TEVA와 협력해 러시아 및 동유럽, 남미 시장까지 ‘클란자CR정’의 공급 계약을 확대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16년 11월 당사 1호 개량신약인 클란자 CR이 우크라이나에 현지 허가를 획득했고, 2017년에는 러시아에서 허가를 획득할 전망이라 본격적인 수출을 기대하게 됐다.

또 우리와 이웃한 중국은 지금까지는 저렴한 원료의약품(API) 공급기지 역할로 우리 제약산업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그들의 내수 의약품 시장규모 면에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2015년 말 기준으로 이미 15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세계 단일국가 세계 2위의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됐다. 당사는 2016년 11월 중국 제약사인 메이원(Beijing Meone Pharma)사와 15년간 총 6,435만 달러 규모의 `실로스탄 CR정` 수출 계약을 체결됐다. 앞으로 Meone은 중국에서 ‘실로스탄CR정’의 임상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맺는말

중견기업으로서 당사의 이런 성과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정부 및 민간단체에서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많은 정보와 다양한 지원을 해준 덕이 크다.

특히 정부의 연구과제 지원이나 상품화 과제의 지원, 식약처가 글로벌 팜엑스를 출범해 수출 기업의 애로 사항에 적극적인 피드백을 통해 지원해준 점등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특히 기업의 건의를 받아들여 글로벌화를 위한 전세계 전문가를 한국으로 초청해 기업에 자문서비스를 제공하는 보건산업진흥원의 GPKOL이나 해외전문가활용 프로그램 등은 정말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정부가 이렇게 도와준다면 기업은 반드시 해외에서 더 많이 벌어서 기쁜 마음으로 또 다른 투자가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제약 기업에 종사자들은 한국제약발전을 위해 힘을 쓰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 및 정부 관계자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2017년에도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해 본다.

References 

1. 본원적 전략의 동태적 결합 - 조동성, 이동현 (1995) 경영학연구, 24(3), 33-64.
2. Firm Resources and Sustained Competitive Advantage, Jay Barney, Texas A&M University Journal of Management, 1991, Vol.17, No.1, 99-120
3. Porter, Michael E., "Competitive Advantage". 1985 The Free Press. New York.
4.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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