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R&D 오픈 이노베이션 필요성
김성곤 종근당 효종중앙연구소장 

신약개발은 과제 선정부터 출시까지 막대한 자금과 시간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이 과정은 다양한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각 단계마다 요구되는 전문성이 변하고 한 단계 안에서도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이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업을 이루어 내지 못 하면 절대로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없다.

대부분의 제약사의 연구/개발 인력은 의학, 약학, 화학, 생물학, 약동학, 독성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데, 글로벌 제약사의 경우 허가/규제 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설득력 있게 작성하는 작문 전문가마저도 포진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초기 단계부터 산학 협업 관계 구축

과학의 발달로 복잡한 기전의 타깃을 목표로 하는 신약 개발이 가능해지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후보물질이 허가를 받기 위한 약효 및 안정성 기준도 매우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에 신약개발 성공률은 감소하고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과거에는 ‘스타틴(statin)’ 계열의 약물처럼 출시하면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보는 거대 품목들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환자 군을 위한 맞춤형 약물 및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수행해야 할 신약과제의 수적 증가로 이어지고 더 이상 제약사가 모든 신약개발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감당하는 것에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은 과제 도출 및 탐색 단계에서 외부 연구기관과 초기부터 협업하기 시작했다. 이는 학교나 국책 연구소가 보유한 신규 약물 타깃 발굴 역량과 제약사의 약물 개발 노하우를 공유해 학교는 제약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제약사는 혁신적인 약물 타깃 발굴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win-win 전략을 근간으로 하는데 이를 개방형 혁신 또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OI)이라 한다.

기존의 산학 협업은 제약사가 논문이나 특허로 공개된 외부기관의 연구 성과에 대한 합의된 대가를 지불하고 지적 재산권을 제약사가 공유하는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이럴 경우 이미 도출된 학계의 연구 성과는 제약사 입장과는 동떨어진 시장성 및 상품성을 지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구를 위한 연구’ 수준에서 사장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픈 이노베이션에 근거한 협업은 연구 초기부터 산학 간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초 연구가 신약 출시라는 상업화 가능성을 높여 가는 형식을 띠고 있다.

학교 연구자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확신하는 약물 타깃도 제약사에서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신약 연구로 이어질 수 없고, 학교에서 도출한 물질이 유망한 타깃에 대한 약효가 뛰어나도 도저히 약물로는 개발이 될 수 없는 물성이나 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산학 협업이 초기부터 진행돼 제약사의 의견이 수렴된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조기에 해결할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다양한 형태의 오픈 이노베이션

오픈 이노베이션 협업은 제약사가 학교에 연구비를 제공하고 연구 결과에 대한 검토를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권리만을 확보하는 유형부터 대형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수십만 종의 물질을 포함하는 화합물 라이브러리뿐만 아니라 임상에 실패했거나 임상이 진행 중인 구조적으로 최적화 작업이 이루어진 화합물들을 학교에 제공해 유망한 타깃 도출 시 스크리닝까지 허락하기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형태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화이자는 미국 보스턴 지역에 Global Center for Therapeutic Innovation이라는 대학 연구소를 설립했고, AstraZeneca는 오픈 이노베이션 파트너쉽을 맺은 다수의 대학에 25만종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제공한 결과, 현재 25개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straZeneca의 경우 대학 연구인력이 영국에 소재한 AstraZeneca 연구소 내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연구 과정에서 제약사의 신약개발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단일 제약사와 대학 간의 협업에 그치지 않고 제약사 간의 적극적인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현황과 전망

시각을 해외에서 국내로 돌려보자.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도 발전을 거듭해 신약개발 과제로 연결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논문 등으로 발표되고 있다. 하지만 상기한 바와 같이 타깃의 상업성 또는 도출된 선도 화합물(lead compound)의 문제점 등이 심도 있게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또한 연구 결과를 학회 등에 투고하기 앞서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제한된 소수 국가에만 출원해 연구 결과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연구 결과에 비해 특허 범위를 너무 넓게 청구해 후속 연구를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제약사의 연구 인력 및 역량을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해 보면 적극적인 산학연 협업이 왜 필요한지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대형 제약사의 경우 과제를 진행하는 팀에 의학을 전공한 인력도 참여해 과제 초기부터 임상까지 고려한 약효평가 및 바이오마커 개발 등 translational research를 수행하고 있으며, 한 과제 당 투입되는 의약, 약리, 약동, 독성 인력이 중소 국내 제약사의 신약개발 전체 연구원 수에 버금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국내 제약사의 경우 신약개발 연구원이 개발단계에 있는 과제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수적 열세는 더욱 커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유망 타깃을 자체 발굴해 first-in-class 혁신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질적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산학연 협업은 필수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 산학연 각 측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연구를 집중함으로써 협업의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한다. 신규 과제를 시작해 비임상 후보물질을 도출하기까지 많게는 수천 종에 이르는 신규 화합물이 합성되는데 화합물 최적화 과정에서 각 화합물에 대한 약효평가는 물론이고 유망 물질에 대한 약동 및 독성 평가도 시기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대학에서 유망 타깃을 발견했으나 화합물 최적화 작업을 하려면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는 제약사의 영역이다. 즉, 대학은 유망한 타깃을 발견하고 그 타깃에 대한 유효물질을 도출하면 제약사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한국 제약사와 대학 간의 협업은 제약사가 보유하지 않은 환자 샘플 또는 동물모델을 이용한 약효평가를 위탁연구 형태로 수행하는 형태가 주종을 이루었다. 당연히 연구결과에 대한 지적 재산권은 제약사가 갖은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단순한 협업에서 탈피해야 하고, 이를 위해 제약사도 대학 연구진에 연구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제약 산업이 규모에 있어 전자, 자동차, 철강 산업을 크게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너릭 시장에 그 역량을 집중했던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신약연구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글로벌 제약사 대비 수적, 질적 열세를 극복하려면 산학연의 오픈 이노베이션 협업이 절실하다.

국내 제약사도 이제는 신약개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고, 한미약품이 지난 1월에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을 개최해 산학연 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천명한 바 있으며 한국화학연구원 및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이 이미 비슷한 형태의 산학연 협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국내 제약사 동향에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이 있다면 글로벌 신약개발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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