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9돌 특집Ⅰ] 제약 빅데이터 전략 : 신약 개발과 의약 빅데이터 
서동철 교수(중앙대 약대 약업경영경제정책연구실) 


빅데이터의 개념이 나옴으로써 제약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신약이 개발되는 과정에서도 초기부터 빅데이터 분석은 필수적인 요소이며, 제약산업에 있어 빅데이터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잠재적 자산이다. 단 안정적으로 수집돼야한다.

전국민 단일 보험제도가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청구자료나 건강보험관리공단이 가지고 있는 공공 의료데이터가 의약 분야의 방대하고 안정적인 빅데이터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및 유럽을 비롯한 의약 선진국의 경우, 빠른 속도로 이 분야가 발전해 나가고 있는 반면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른 규제 등으로 우리나라는 아직 의약 빅 데이터 활용이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낡은 규제와 보수적 선입견이 존재하는 한 의약 빅데이터 분야의 진전은 어렵다는 것. 자칫 미래 의약IT 시장을 외국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약업경영경제정책연구실의 서동철 교수를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 보았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제약 R&D 선택과 집중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이미 광범위한 분야를 커버하는 다양한 약물들이 개발된 상태에서 새로운 대형 신약을 만드는데 2조6천억 원 가량의 비용이 투입되고 그 기간도 10~15년 정도로, 과거에 비해 비용은 증가하고 기간은 길어져 생산성이 떨어졌다.

이에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신약과 관련한 R&D 투자에 있어 개발을 추진하는 약물에 대한 시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적극적인 지원이 망설여 질 수밖에 없다. R&D 분야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이 증가해 생산 효율성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빅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

서동철 교수는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한정된 데이터를 갖고 개발이 완료될 신약의 상품성을 판단하기에는 불확실성 리스크가 존재한다”면서 “개발될 신약이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이 약이 과연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느냐, 다시 말해 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해당 마켓의 크기는 변화가 없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신약개발에 투자해야 하는 비용과 지속적으로 비교·검토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거에는 약물 개발에 있어 임상 3상 정도까지 진행되면 이미 상당한 비용이 투여됐기 때문에 끝까지 개발 과정을 진행시켜 제품을 출시하는 추세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3상에 들어가서도 현재 개발 중인 약물의 가치를 훼손시킬 만한 제품이 나타나면 과감히 개발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미 약물 개발에 수천억이 투여된 상황에서도 자본의 비합리적인 추가 투여가 예상되면, 몇백억을 아끼기 위해 개발을 전격 중단하기도 한다는 것. 다만 이는 활용가능 한 빅 데이터가 풍부한 외국의 사례이다.

서 교수는 또 “아무리 우수한 약물이라도 100%의 환자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는 없다. 가령 당뇨병 환자에게 약을 사용하면 언멧니즈(미충족 수요)가 발생한다. 그러면 실제 빅데이터를 활용해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A약물과 B약물을 같이 사용하는 환자들에게서 혈당 조절이 쉽지 않았다든지, A약물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복약 순응도가 떨어진다든지 등 그 원인을 분석해 제약회사는 새로운 약물 개발 및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우리나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암 환자들은 어떠한 치료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례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은 파악하고 있지만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가 확보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분석할 방법이 없다.

미국, 영국 등 이미 활발한 연구 진행

미국의 경우 전문적으로 의료 빅데이터를 취합 및 가공해서 판매하는 회사들도 존재한다. 미국, 영국 등 의료 빅데이터의 활용이 앞선 나라에서는 기본 500만 명에서 1000만 명의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약물 사용 패턴, 치료 옵션, 어떠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에 따른 치료비 지출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분석이 이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의약품이 등장하면 경제성 평가를 실시하는데 환자들의 의료 빅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사회적 비용을 산출해 내야만이 그 약물에 대한 정확한 가치 측정이 가능하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환경으로 표현하면 심평원이나 공단의 데이터를 받아 가공 후 판매하는 회사가 외국의 경우 활성화 돼 있다”면서 “이 데이터에 병원의 임상 데이터들을 연결하면 그 데이터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임상 현장 데이터(Real World Data)를 활용하면 환자들이 어떠한 패턴을 갖고 무슨 약을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우리는 심평원과 건보공단에서 Real World Data를 가지고 있다. 의료 빅데이터의 공개가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차선책으로 마케팅 리서치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부 환자를 표본으로 하기 때문에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글로벌 임상 트렌드는 대규모 임상시험이다. 이것 역시 빅데이터의 개념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서 교수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출시되면 전 세계에 걸쳐 시판 되는데 각각 흩어진 정보들을 한데 끌어 모아 한쪽에서는 계속 데이터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차트 등 환자들의 정보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 특히 분당서울대병원이 대표적인데 의료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앞서나간다는 평가다. 이들 병원의 환자정보와 심평원 등의 데이터를 연구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서 교수는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의미 있는 케이스 스터디를 진행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Real World Data는 양이 방대해 핸들링 방법, 개인정보 문제, 소유의 주체, 각기 다른 장르의 데이터들의 연계 방법 등이 과제로 노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환자 개인정보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장벽으로 와 닿는다는 것이 서 교수의 생각이다.

사회적 논의 동반된 개인정보 보호법 개선 시급

의료정보 활용을 가로막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의료정보 보호가 아닌 활용에 초점을 맞춘다.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명문화해 산업 육성에 힘을 쏟는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는 개인정보 보호법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의료 빅 데이터 접근도 상당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가 강하다는 미국도 환자가 동의하면 구체적인 환자 정보는 알 수 없도록 해 이들의 의료정보 활용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정보는 금융정보 이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 신체 데이터부터 질병, 진료기록 등 민감한 내용이다. 보험 영역으로 확장하면 금융 데이터만큼 중요하다. 이것을 분석하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획기적인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공공 보건 측면에서는 국민 질병을 관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학계의 지속적인 요구로 인해 정부도 조금씩 의료 데이터를 공개하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있어서는 요원해보여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는 게 서 교수의 입장이다.

서 교수는 “데이터에서 환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지역을 제거한 정보만을 가지고 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면 된다. 이마저도 걱정스럽다면 나이도 연령대별로 통합시키고 소득 등도 군별로 분류하면 어느 환자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신약개발에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신약개발 과정에 있어 정확한 수요 예측 및 약물의 경제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빅데이터의 활용이 필수적이며 절실하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의료 빅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외국에 비해 상당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정부가 국민적인 합의를 통해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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