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주 교수(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면서 미생물을 박멸하고 승리하는 꿈을 꿨고 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제너의 백신, 플레밍의 항생제, 깨끗한 물(위생)이 의학의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로 1960년대 전염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970년대에 반전이 일어나 지금은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이에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에서는 ‘One World, One Health(하나의 지구 하나의 건강)’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사람과 동물과 환경이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생태계인 만큼 서로 조화를 이뤄 인간도, 동물도, 환경도 건강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육식 반대, 감염병에 걸린 닭·오리 등의 살처분 반대, 가축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밀림개발 억제 등 환경보호 등이 이런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무분별하게 개발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이제는 공존을 해야 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만 국한한다면 지난 100년 동안 4번의 팬데믹이 있었다. 1918년 스페인지역에서의 H1N1, 1957년 아시아지역의 H2N2, 1967년 홍콩 팬데믹 H3N2, 2009년 신종플루 H1N1, 올해 메르스 등이 그것이다.

물론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항바이러스제나 백신을 만들지만 바이러스는 변이를 통해 그것들을 피하려 한다. 이처럼 변이를 계속하다 보면 처음 모습과 달라지게 되고 그런 변이들이 축적돼 10∼40년 주기로 크게 바뀌거나 전혀 다른 차원의 인체 감염 바이러스가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사람 간에 원활하게 전파되면 팬데믹이 되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 국가 방역시스템 구축해도 팬데믹은 막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자문에 응할 때 ‘우리만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제적인 것을 봐야 한다. 지구 반대편에 감염병이 생기면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중국은 중국대사관에 전염병 주재관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외교관이 파견돼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감염병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중국 광둥성에 원인 모를 괴질이 돈다고 하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2009년 신종플루도 멕시코에서 환자가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감염된 수녀님이 입국했다. 이건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 벌어진 일이다. 마치 전쟁과 비슷하다. 총칼을 들지 않았어도 조기경보기나 정찰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감염 상황을 미리 감지해야 한다.

확진환자가 나오거나 언론에 보도될 때면 이미 우리나라까지 확산된 것이다. 따라서 주재관이 현지에 미리 가서 루머 서베이런스(소문 조사)를 해야 한다.

감염병 예방 예산에 인색한 정부

감염병과 관련해 정부에 조언을 하다 보면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예산 문제다. 정부에 감염병을 초기에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시스템과 백신 개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했다. 정부의 경우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예산을 책정하는 개념이 없다. 한마디로 유비무환이 안 되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감염병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교육부, 농림축산식품부, 복지부 등은 8,000억 원대의 예산을 마련해 인수공통 감염병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려고 했다.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를 한 끝에 예산이 없어졌다.

2003년 사스나 2009년 신종플루 올해 메르스 등을 겪으면서 느꼈지만 전염병에 대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일정 규모의 예산은 예비비처럼 늘 준비돼 있어야 한다. 2년 전 만 해도 신종 전염병이 3종이나 발생했고 그중 하나는 우리나라까지 전파됐다.

그래서 전염병에 대비해 항상 일정 규모의 예산을 배정해 놓도록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신 개발에 국가 지원 절실

우리나라는 신약개발 부분에서는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하고 있지만 감염병과 관련한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 개발 수준은 2009년 신종 플루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2009년 4∼5월에는 우리나라에 백신이 없어 전량 원료를 수입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2009년 5월 이전부터 계절 독감 백신과 관련해 녹십자하고 진행해오던 임상을 완료해 화순공장에서 백신 개발을 완료했다. 같은 해 7월에 허가를 받아 그 플랫폼을 가지고 신종플루 백신을 개발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녹십자, 전문가들이 매주 만나서 논의를 한 끝에 면역 증가제가 없는 1,250만 명분, 면역 증가제가 있는 1,250만 명분 등 2,500만 명분, 도즈를 만들었다. 그리고 9월에 임상을 거쳤고 10월에 허가가 나서, 10월 27일 의사와 간호사부터 접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6개월 만에 백신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당시 한 언론은 이를 ‘백신주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감염병은 다른 질환과 달리 국가가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신종플루와 같은 감염병은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든 걸릴 수 있는 병이고 개인위생으로 예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더구나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는 엄청난 재원이 투입돼야 하는데 수익을 담보할 수 없어 개인이나 기업이 개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병이 발생하면 전 사회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 만큼 마치 전쟁에 대비해 상비군을 유지하듯 감염병 예방과 대책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손 씻기와 기침 에티켓에 불과하다. 일본에서는 평상시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겪고 보니 본인이 걸렸을 경우 남에게 폐를 안 끼치고 본인이 안 걸렸을 경우 예방을 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고 감염병 시대에는 이런 것이 바로 공중도덕이라 생각한다.

신종 전염병과 국내 방역시스템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플루, 이번 메르스를 포함해 여러 번 큰 국가적 전염병을 거치면서 시스템이 많이 갖춰졌다.

그렇지만 신종 전염병에 대한 완벽한 방역체계는 없다. 다만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다. 전염병 감시 체계, 공항의 검역, 의료기관의 환자 진료 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고,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관이라는 전문가가 자문을 하고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염병이 발생하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SFTS나 H5N8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어디서 시작됐고, 누가 감염됐고, 치사율은 어느 정도고, 전파력은 어느 정도고, 백신은 있는지, 산에는 가도 되는지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럴 때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른바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험에 대한 의사소통)이다. 감염은 대부분 복합적이다. 신종 병원체가 계속 나타날 때마다 부처 간 역할분담을 잘해서 초기에 감염력, 전염력, 예방방법, 병독성 등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언비어가 나돌고 혼란만 더욱 증폭하기 때문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