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는 어느덧 국내 제약업계 필수이며,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 한미약품, 대웅제약, 동아ST, 녹십자와 같은 대형 제약사들은 물론 코오롱제약, 한림제약, 국제약품 등 50여 개 이상의 제약사들이 CP를 선언하고 준법영업을 천명했다.

물론 여전히 대형 오리지널 품목 특허만료 후 수십여 제너릭 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때면 불법 리베이트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나 제약업계 스스로가 준법영업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국내 제약기업들의 CP운영은 크게 2가지 맥락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CP는 리베이트 규제 강화 속 제약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또 국내 내수시장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글로벌 진출을 위한 첫걸음이 바로 CP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투명성은 시대적 흐름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주요 제약사 CP담당자들이 “CP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준법이라는 변화의 태풍의 눈 속에 있는 지금, CP를 도입한 국내 제약사들의 변화상을 살펴보고 전망해 본다.

강력한 CEO의지, 그리고 CP담당자 권한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을 전후로 제약업계는 앞다투어 CP팀 재정비 및 신설에 나섰다. 대부분 제약사들은 과거와 달리 CEO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CP담당자 권한을 대폭 강화시켰다. 과거 유명무실한 존재였던 것과 달리 CP팀이 CEO 직속으로 개편되고 책임자도 임원급이 맡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점이 첫 번째 변화인 셈이다.

실제 올 하반기 CP팀을 재정비한 동아에스티는 지난 7월 대표이사 메시지를 통해 ‘리베이트 투아웃제에 따른 관련 법규 준수’를 강조했고 CP조직을 격상, 대표이사 직속부서로 편입했다. 사실상 동아의 CP관리실은 독립부서 지위를 갖게 됐다. CP관리실 관리자는 박찬일 사장을 중심으로 소순종 상무가 관리실장을 맡았다.

동아에스티에 앞서 전담팀을 출범시킨 대웅제약, 한미약품 역시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고 녹십자 또한 지난 9월 이사회 승인을 받아 자율준수관리자에 장평주 상무를 선임했다.
이렇게 위에서 시작된 준법영업 의지는 교육 및 홍보를 통해 아래로까지 전달됐다.

각 제약사들은 임직원 대상 교육 및 홍보에 열을 올렸다. 시판후조사(PMS) 적정성 판단기준, 강연료 등 가이드라인 개정 교육, 입찰담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실제 교육 현장에서 다뤄졌다. 국내사와 다국적제약사 간 코프로모션 사례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제약사 CP 가이드라인 교육도 선행교육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국내 상위 제약사 CP팀 관리자는 “CP팀이 신설되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남들은 CP를 안 하는데 왜 우리는 해야 하냐’는 직원들의 불평으로 꽉 찬 인식 바꾸기였다.

특히 영업부에서 불만이 많았다. 때문에 회사는 ‘왜 CP를 해야 하는지’ 정당성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강력한 CEO의 의지가 큰 힘이 됐다”고 돌아봤다.

촘촘한 관리, 사후·사전 모니터링 강화

CP팀은 사실 외관상 규제부서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영업 및 마케팅 관련 업무의 철저한 사전 및 사후 관리가 대표 사례이다. 그런 측면에서 CP팀 위상이 강화됐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례로 A제약사는 의사대상 제품설명회 개최 시 보다 꼼꼼한 사전검토와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사전에 제품설명회 타당성을 입증해야 하고 사후에는 증거사진도 제출해야 할 정도로 요건이 빡빡해졌다. 과거 사후관리 과정에서 개최하지 않은 제품설명회가 있었고 참석 인원수를 부풀린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에 마련한 조치였다.

또 내부고발 시스템을 적극 활용 중인 B제약사는 오랜 기간 제약영업 치부로 기록되고 있는 ‘카드깡’ 사례를 적발했다. 익명의 제보가 B사 CP팀에 접수됐고 확인 결과 주기적으로 카드깡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게 해당 제약사 CP관리자 귀띔이다. 카드깡을 하다 적발된 영업사원은 인사조치 됐다. B사와 같이 사내 내부고발시스템을 도입한 제약사는 다수 존재한다.

그동안 많은 문제로 지적됐던 법인카드 사용제한 조치도 마련됐다. 상위 C사는 영업사원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CP Monitoring System 구축, 사전에 법인카드 부정사용을 점검하고 있다.

이보다 더 강력한 CP 운영 사례도 존재한다. 대웅제약과 한미약품은 내부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한 제약사로 유명하다. 양사는 공시를 통해 내부 징계사례를 공개했다. 대웅은 CP위반 사례를 내부고발을 통해 적발했고 CP 위반자 6명을 징계했다. 한미는 인사위원회를 개최, 총 8명의 영업사원을 감급 및 견책 조치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약업계 한 관계자는 “대웅과 한미의 사례는 전체 제약업계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또 각 제약사들은 CP활동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영업행위를 건건이 검증하고 검토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 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후 영업사원 개인차원의 리베이트 행위가 관계 당국에 적발됐을 때 조직적인 행위가 아님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제약사 CP팀 전담자는 “전국 1위 영업실적을 자랑하는 사원도 CP규정을 위반하면 예외 없이 처벌할 계획이다. 그만큼 강력한 CP를 운영 중이다. 자체 CP규정에 불만이 있는 영업사원들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더 이상의 불법행위는 없다는 CEO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준법영업 의지 유지가 관건

준법영업 씨앗은 CP를 통해 뿌려졌다. 문제는 앞으로다. 전문가들이 지속가능한 CP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단 CP를 운영하고 있는 제약사들은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강력한 ‘신상필벌’과 ‘CP 관리자 권한 확대’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영업실적이 좋지 못한 영업사원이 해고에 이르는 경우는 없지만, CP 규정을 위반한 사원은 회사를 떠나야한다는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심리를 무시할 수 없지만, 영업사원 1명이라도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면 제대로 CP가 이뤄질 수없다는 판단에서다.

더불어 CP관리자에 대한 강력한 권한부여도 관건이다. 이미 CP를 도입한 제약사들은 CEO 직속 조직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은 일정 부분 요건을 갖추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이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운영규정 및 법규 위반자에 대한 제재 조치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모두 지속가능한 기업문화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CP 체질화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체질화되면 오히려 회사나, 직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CP팀이 CEO 직속이 되면서 전담자에 강력한 힘이 부여됐다. 긍정적인 측면이다. 전담자를 중심으로 상시 모니터링 및 상담, 내부 감사 및 진단이 실시돼야 한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들 모두 투아웃제 아래서, 더 나아가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 하기 위해서는 윤리경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15년에는 윤리경영 밑바탕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CP가 정착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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