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캐나다 약사전문 교육기관 팜스터디 대표


약국의 일반의약품 활성화는 제약사와 일선 약국 모두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과제이다.

대중광고를 통한 활성화는 매출과 브랜드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높은 비용으로 인해 이익률이 감소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약국과 제약사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일반의약품 판매를 활성화하고 약국 경영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약국 디스플레이 개선

첫 번째 방법은 약국의 내부디자인과 디스플레이를 개선하는 것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주말이면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매장은 제품진열과 내부디자인이 소비자 시선과 동선을 고려한 비주얼 머천 다이징(VMD) 기법에 따라 세심하게 설계된 곳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의 쇼핑 경험에 소비자들이 이미 익숙해져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높아진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약국이 맞추지 못하면 약국에서 처방약 외 다른 제품을 판매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품목별로 구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품군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열해 내방객 스스로가 제품을 비교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필자가 캐나다 약국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체험한 경험으로는, 이렇게 셀프셀렉션 공간을 늘렸을 때 소비자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약사 서비스에 대해 느끼는 고마움도 커진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진통제나 종합비타민과 같은 익숙한 일반의약품도 조제대 바깥에 함께 모여 진열되어 있으면, 다양한 종류에 일단 당황하게 되고, 약사의 도움을 청하는 소비자들의 수가 늘어난다. 이 때 약사의 친절한 상담이 소비자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판매 및 재고관리에 경영기법 도입

두 번째로 일반의약품의 판매와 재고관리에 POS를 비롯한 현대적 경영기법을 도입하는 일이다. 바코드를 스캔해서 가격을 합산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에서는 제품 각각의 가격을 물어보는 횟수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현격히 줄어든다. 편의점에서 물건 값을 지불할 때 가격흥정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약국에서 가격을 흥정하려는 고객과 실랑이하게 되는 건 경영활성화에도 반하는 일이지만, 약사의 이미지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의약품 판매에 POS를 활용하면, 우리 약국에서 제품별로 평균적인 회전율이 어떠한지, 고객군 별로 구매패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알 수 있으므로, 소비자의 수요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재고를 관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세 번째로 일반의약품과 처방약, 건기식을 연계하여 환자를 상담하는 것이다. 일부 처방약을 장기복용 시 체내의 영양소나 대사물질이 결핍될 수 있다는 점을 환자들에게 주지시킴으로써, 건기식 또는 보충제의 판매를 늘릴 수 있었다는 경험담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가령 메트포르민 복용자에게 비타민B12를, 스타틴 복용자에게 CoQ10을 권장하는 것은 처방약과 일반약을 연계 상담해 환자의 건강을 개선하고 약의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처방약과 화장품을 연계시키는 방법도 있다.

플루오르퀴놀론계 항생제,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 일부 소염진통제와 호르몬제에는 피부를 자외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하는 부작용이 있다. 이를 복약 상담에 활용한다면, 약국에서 자외선 차단제를 구입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국이 자외선 차단제를 포함한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하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에 적절한 곳임을 대중에 인지하도록 하는 홍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여름이 되면 자외선 차단제를 구입하러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평상시 복약 상담과 보조도구들을 활용해 처방약 복용 시에 자외선 노출을 피하고,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도록 부지런히 상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화장품과 일반의약품을 연계하는 상담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에는 비타민D에 관심을 가진 사람의 수가 크게 늘었다. 대중매체에서 연일 비타민D 결핍 문제에 대해 떠든 탓이기도 하지만, 실제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가 워낙 많고, 일광에 노출되는 시간은 적다보니 비타민 D가 부족되기 쉬운 환경에 놓인 까닭이기도 하다.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 중일 때는 비타민 D를 복용해야 한다는 POP(Point of Purchase)를 약국 진열대에 비치하면 어떨까? POP는 침묵의 세일즈맨이라고도 불리는 비주얼머천다이징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의 시선을 끄는 POP는 판매원을 대신해 제품 정보를 알려주고, 이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욕구를 증가시킨다.

고객의 구매를 유도하도록 잘 만들어진 POP는 약국에서 일반약, 건기식, 화장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데 필수적인 장치이자 도구이다. 비타민 D에 대해 약사가 직접 이야기를 꺼냈을 때와 내방객이 POP를 보고 먼저 질문을 해서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는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POP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약국에서 또 하나 주의할 점이 생긴다. 무분별한 광고지의 벽면 부착을 막는 것이다. 유리창과 벽면의 절반 이상이 각종 제품의 광고로 뒤덮인 약국도 가끔 눈에 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이야 자기 제품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기분좋을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무질서하게 배치된 광고들로는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될 리 없다. POP의 핵심은 소비자의 눈에 주목받는 신호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잡음이 뒤섞이면 음악을 즐길 수 없듯이 약국에서 POP의 사용 역시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는 약국과 제약회사 간의 유기적인 협력관계 또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비용 절감 인식 필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일반의약품의 활성화는 약국과 제약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이 감기, 두통, 소화불량과 같은 가벼운 질환이 있을 때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해결하고, 병원은 보다 중증의 질환일 때 방문한다면, 전체 의료비용뿐만 아니라 병원 대기시간으로 인한 시간적 손실도 함께 줄일 수 있으므로, 사회적인 비용의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 약사 혼자 좋다고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일반의약품의 활성화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고, 따라서 정부의 지원과 제도 개선도 꼭 필요하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례로 우리나라 일반의약품에 흔히 표시되는 다음의 사용상 주의사항을 읽어보자. “이 약은 유당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갈락토오스 불내성(galactose intolerance), Lapp 유당분해효소 결핍증(Lapp lactase deficiency) 또는 포도당-갈락토오스 흡수장애(glucose-galactose malabsorption) 등의 유전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는 투여하면 안 됩니다." 현재 약국에서 판매 중인 일반약 가운데에는 이런 경고문구가 적혀있는 제품이 많다. 약의 전문가인 약사에게도 생소한 질환들이다.

게다가 이런 경고문구가 굳이 적혀있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갈락토오스 불내성과 포도당-갈락토오스 흡수장애는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문 유전질환으로 초기에 잡아내지 못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갈락토오스 불내성 환자, 포도당-갈락토오스 흡수장애 환자가 아무 생각 없이 확인하지 않고 약을 복용할 일은 적을 거라는 이야기다.

정작 의문스러운 부분은 Lapp 유당분해효소 결핍증이다. Lapp는 라플란드(Lappland)에 사는 랩족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들은 스칸디나비아에 오래 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다. 대체로 유럽인이 성인이 되어서도 유당분해효소를 유지하는데 반해, 랩족은 성인의 60% 정도가 유당불내증을 겪게 된다고 해서 아주 오래 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에 유당불내증이 아시아인들에게 많다는 점이 알려지고 나서 유당불내증 자체가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으니, Lapp는 굳이 번역에 포함시키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오랫동안 오역이 남아있는 셈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성인의 75%가 유당불내증이라는 점이다. 우유 한 팩에 10그램에 달하는 유당이 들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경고문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유당이 들어있는 일반의약품에 사용금기 경고문을 넣는다는 건, 유당이 들어있는 대부분의 전문의약품 정제를 복약 상담할 때에도 매번 유당불내증에 대해 주의를 줘야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알약에 들어있는 유당으로 인해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킬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에, 북미에서는 약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확인은 해줄 지언정, 일반의약품의 포장지에 이를 사용금기로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Lapp 유당불내증은 불합리한 부작용이나 사용상 주의사항 표기에 있어서 하나의 예일 뿐이다. 소비자가 읽고 납득할 수 없는 경고문은 약에 대한 관심을 적어지게 만들고 약사와 소비자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

다행히 2013년 12월 20일 식약처는 아스피린 등 다빈도 일반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 고시했다.(약사신문 2013년 12월 26일 기사) 소비자가 일반의약품을 사용할 때 효능·효과, 용법·용량, 사용상의 주의사항을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로 요약해 기재토록 한 것이다. 이러한 일반의약품 포장의 개선이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증진에 더해, 약국 일반의약품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기초에서부터 시작돼야 성공할 수 있다. 일반의약품 활성화는 약국의 경영에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건강증진과 효율적인 의료자원 활용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과학적인 경영기법의 도입과 비주얼머천다이징의 활용을 중심축으로 하는 약국의 노력과 정부와 제약회사의 협력과 지원이 더해져서, 앞으로 일반의약품 시장을 더욱 확대되고, 이로 인해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개선되기를 기대해본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