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개량신약ㆍ제너릭 육성
정원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글로벌 개발본부 전무


자동차 산업에서 배울 점 

“생각의 차이가 기술의 차이를 만든다." 이는 어느 회사의 광고카피다. 뜬금없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의 발전사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필자가 어렸을 때, 자가용이란 최소한 군수(郡守)나 돼야 검정색 관용차를 타는 걸로 알았다.

그때는 미군이 버린 지프를 망치로 두들겨서 자동차 비슷한 것이나 만들고 있던 시절이라, 대량생산의 본 고장인 미국으로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한다는 건 보통사람으로선 꿈도 못 꿀 일이었다.

현실적으로 자동차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차체설계능력, 부품의 제작조립능력, 엔진 설계 능력, 디자인 기술 등등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자동차의 재료가 되는 철강산업이 선행돼야 하고, 연료를 만들어 내는 정유산업 역시 선행돼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추고 설사 자동차라는 물건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다 해도 차를 살 수 있는 국민소득이 있어야 하고, 팔린 차가 굴러다닐 수 있는 도로망과 교통체계라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

차라는 단순한 물건이 World Best를 다투기 까지는 주변산업의 발전속도와 육성정책이 조화롭게 맞아준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 각종 요소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 말한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국민이 끼니 걱정을 했던 그 시절에, 누군가가 우리나라도 노력하면 언젠가 세계를 제패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기 때문에, 지금은 국민을 먹여 살리는 효자산업이 됐다.

이렇게 시작된 자동차가 차차 진화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포니>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자동차는 굴러가기만 해도 되었지, 에어컨을 단다는 것은 사치여서 굳이 원하면 조수석 앞에 커다란 에어컨을 달아서 앞자리는 구겨 앉던 기억이 생생하다.

<엑셀>이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했을 때, 땅덩어리가 하도 커서 차가 없으면 돈을 벌러 직장에도 갈수 없기 때문에, 품질은 열악하지만, 가난뱅이가 <엑셀>을 선호한다는 얘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거린 생각도 난다. 그러다가 디자인이 날렵한 <엘란트라>가 나왔고, 출장을 가면 거리에서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나타>에 이어 <그랜저>, <제네시스>, <에쿠스>까지 상륙하면서 품질대비 가격 면에서는 토요타나 혼다를 제치기 시작한 것이다. 거슬러 생각해보면 부가가치가 높은 대형차의 북미지역에서의 성공은 당장에 처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시작한 <포니>라는 첫 단추를 꿰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너릭과 개량신약

이쯤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눈치를 챘겠지만, 선진국에서 개발된 원천기술과 이태리 디자이너의 힘으로 만들어진 <포니>를 제너릭 의약품쯤으로 비유한다 치자.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가 <포니>의 개발로 안주했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인건비와 원가의 압박을 받는 세계의 저가 차 생산공장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북미시장에서 한국 차가 품질이 업그레이드 됐다고 인정받는 계기는 <엘란트라>였다.

<엘란트라>가 인기를 끈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차체는 작아도, 속은 넓은(less bulky, more roomy)’ 차였기 때문이다. 그게 뭐 대단한 장점일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소비자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품질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굴러만 가면 되는 기능에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개량이 일어난 것이다.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차에 길들여진 미국소비자에게 경박단소(輕薄短小)형 차로 인기를 끌었던 토요타의 <캠리>나 혼다의 <시빅>에다가 “안쪽은 넓은" 개념이 추가된 것이다.
의약품도 이런 사례가 많다. 국내사의 경우를 언급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외국회사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작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수백 년간 입증된 약물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약물이다. 정말 히포크라테스시대부터 사용했다면 수천 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된다. 해열진통기능에다 최근에 혈전예방효과까지 알려지면서 순환기계질환의 증가로 웬만한 곡물생산량보다 더 많이 전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그

런데 위궤양유발 등 위 자극성의 부작용으로 장기 복용을 피해야 했기에,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도록 enteric coating약물로 개량됐고 싸고 효과 좋은 처방율 1위의 약물로 등극했다. 장용화 기술은 원천적으로 바이엘이 개발한 것도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사랑받는 약물에 잘 알려진 제제기술이 가미된 조그만 “진화"가 이뤄짐으로써 더욱 넓게 사랑 받는 약이 된 것이다.

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약물이 없는가? 라는 자성에서 출발된 정부지원과제를 보면 대개 세계적, 독창적, 선도물질을 만든다고 표방한다.

특히 항에이즈약물이라든가 미국국립보건원에서 하면 딱일 분야에서 말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듯 ‘Proof of Concept, First in Class, World Best, Global Innovative’를 만들어야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편협한 생각이다. 최강국인 미국조차도 제약분야의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도 신약개발 한계 상황 봉착

미국의 제약의 경우도 First in Class, World Best, Global Innovative을 만들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개발경쟁이 치열해 지고, 점점 더 고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도표에서 보듯이 10년 동안 신물질 신약으로 허가 받은 품목을 몇 개를 보유하고 있는지 회사별로 분류해보면 10년간 딱 1개의 신약을 허가 받은 회사가 50개사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10개 이상, 즉 1년에 평균 1개의 신약허가를 받은 회사는 5개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도 좀 된 통계라 아마 요즘은 더욱 더 신물질의 개발이 어려워졌을 것이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만드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와 같다"는 구절이 연상된다.

게다가 일껏 개발해도 시간이 지나면 제너릭이 등장해 공공재화(公共材化)해 건강보험예산을 절감하려는 정부의 정책으로 시장에서는 가격압박을 받기 일쑤이다. 내릴 수 있는 것을 여태껏 비싸게 팔아먹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국 뉴욕주의 외과전문의이며 하버드대교수이자 제약평론가인 Marcia Angell박사<사진>는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제약산업은 큰 곤경에 처해있다. 새로 내놓을 신약이 없다.

국민들은 과도하게 책정된 약품가격에 분통을 터트리고, Big Pharma의 순이익은 하락세이고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래서 미국제약회사들이 이런 국내적 환경을 극복하고 눈을 세계로 돌리는 돌파구로 삼기 위해서 세계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하려는 지도 모를 일이다.

제너릭의 효용성은 특허보호기간이 지나면 공공화(公共化)해 같은 수준의 기술을 지닌 경쟁자에 의해 더 싼값에 만들어져 국가 건강보험재정을 절감토록 하는 것이고, 개량신약의 효용성은 기술우위자의 선취권(priority)의 독점을 막고 국민에게 더 안전하고 더 편리한 약물을 공급함으로써 기술축적을 해나가는 것이다. 개량신약은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개발되는 개량신약이 훨씬 더 많다.

제도개선 대부분 완료 … 이젠 우리의 몫

필자는 회사에서 앞에서 말한 일들을 하고 있다. 일을 해나가면서 인력문제부터 사회적 인식까지 항상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운 좋게도 오너의 지원과 운도 따라주어서 많은 제너릭과 3개의 개량신약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중에 미국시장을 파고든 세계적 롤모델인 테바(TEVA)에 우리가 만든 개량신약의 기술 라이센싱아웃에도 성공했다. 테바가 왜 우리나라의 롤모델이냐면 우리나라의 구한말에 창업해 낙타와 당나귀로 의약품을 각지로 공급하던 회사가 제너릭의 미국시장 런칭에 성공, 주가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노력과 정책적 도움으로 우리나라도 그 동안 많은 인프라의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실제 일선에서 일하다 보면 아직까지도 맥 빠지는 일도 많다.

‘규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 ‘개(改)만 되었지 량(良)이 된 것이 없다’, ‘경제성(經濟性) 측면에서 나은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 혁신적(innovative)이냐’, ‘그 정도로 약가를 더 줄 수 없다.’ 등등. 더 괴로운 것은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별 대단치 않은 개량아닌가, 기대에 못미치는 금액이라며 비판일색이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만 대답한다. ‘<엘란트라>는 <엘란트라>로 팔면 된다. <엘란트라>의 개선점은 소비자가 가장 잘 안다. 그걸 찾아내고 극대화 하는게 내 임무 아니냐고. 앞서 말한 바이엘의 경우나 국내회사의 염변경 개량신약으로 인한 독점파괴 등의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생략하고 다음의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예전에 어느 기고에서 정책적 지원책으로 우선신속심사제도(priority process)의 도입, 미국의 자료독점권에 상응하는 재심사(PMS)의 부여, 국가적 차원에서 약가우대(藥價優待)등 3가지를 건의한 적이 있는데, 현재 거의 다 실현된 느낌이라 이제는 지켜봐 달라고 하고 싶다.

일선에서 일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남겨진 숙제는 우리나라 제약이 항상 안방장군, 골목대장으로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자동차 산업이 깡통 차로 놀림을 받다가 북미를 정복한 후에야 효자산업으로 박수를 받듯이 우리 제약도 World Best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일이 제약산업에 몸담은 자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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