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릭 의약품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에서 ‘제너릭 의약품(Generic drug)’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 2000년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였으니 이제 겨우 10년 남짓 된 셈이다. 아직도 일반인들이 보는 신문에서는 주필이나 편집장 같은 사람이 오리지널 약이니, 복제 약이니 짝퉁 약이니, 국민들이 읽으면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질 용어를 혼용하고 있다.

오리지널 약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명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신문사설에서 “핸드백도 명품 백을 살 계층이 있고 또 짝퉁 백을 살 계층이 있듯이 의약품도 오리지널을 선호할 사람이 있고, 또 싼 짝퉁 약을 살 사람이 있다"는 내용을 읽고 아연실색 한 적이 있다. 단박에 드는 생각이 ‘그럼 루이비통이나 샤넬 백을 들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국민의 건강보험금으로 오리지널 명품 백을 사줘야 하는가?’ 였다.

실제 처방권자는 어차피 내 돈 드는 것이 아닌데 완제수입 약으로만 처방한다면, 끊임없는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결국 정책입안자는 의사나 약사에게 주는 보험수가를 후려쳐서 재정을 절감할 것인가, 제약업계에 보험약가를 후려쳐서 절감할 것인가, 그것도 임계점에 달하면 어느 정권에서 건강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하는가의 눈치 보기 게임이 그리 먼 일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결과 조작 파문, 리베이트 문제 등 온통 부정적인 인상을 끊임없이 주어 온 제약업계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또 언론뿐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이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까지 잘못된 인식을 가져도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 있게 말하지 못한 약업인들의 책임이 클 것이다.

그동안 안이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제너릭 약가가 전세계적으로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렇게 남는 돈이 엉뚱하게 흘러간다’는 인식이 팽배해 왔다. 완전히 터무니없는 얘기도 아니라서 제자리에서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제약인들은 뭔가 구린 데가 많은 집단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당해 왔다.

제너릭 의약품의 필요성

제너릭의약품의 전망에 관한 원고를 써달라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우리 회사가 개량신약도 여러 품목을 개발했는데 그런 원고를 쓰면 제너릭만 전문으로 만드는 인식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말렸지만 그래도 승낙하고 말았다.

이는 제너릭의약품을 생산하는 것은 동대문 지하 골방에서 몰래 남의 상표를 도용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국의 제약산업은 다 죽어버리고 온통 시장에서 다국적 거대 공룡만이 지배하는 나라는 많다.

필리핀에 가보니 국민의 평균수입은 우리나라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다국적기업이 완제 수입한 단순 항생제 연고가격이 우리의 4-5배인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 꼴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너릭을 만드는 것은 국가산업을 지키는 일이고 건보재정에 기여하는 일이다.

국내 제약산업이 지금 당장은 수출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제약입국(製藥立國) 보건보국(保健報國)의 효자산업은 못됐다 할지라도, 과거에는 포니나 엑셀로 미미하게 시작했지만 이제 북미시장을 장악한 현대자동차나 전쟁통에 설탕 수입으로 시작했지만 세계 일류를 실현한 삼성처럼 혁신자(innovator)는 못되더라도 개량자(modifier)는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제너릭 의약품의 추이 

우리나라에서 제너릭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된지 10년 남짓 동안 국내 제약산업은 안방장군, 골목대장들의 싸움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세계시장으로 나가느냐가 흥망을 좌우할 것이다.

정부도 <콜럼버스 프로젝트>,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등 여러 가지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정책목표는 단순하다. 국내 과당경쟁으로 인한 유통왜곡보다는 연구개발을 통해 글로벌화하라는 요구이다.

우리 제약산업이 세계 11위 규모라고 하지만 아직 세계 시장크기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글로벌데이터가 아시아에서 일본시장을 따로 다루고, 모든 다국적 기업이 새로운 약물의 런칭은 중국부터 하려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그냥 아시아시장 속에 일개 나라로 분류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제약선진국인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 정부의 제약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재의 약은 더욱 싼 가격에, 미래에는 더욱 좋은 약을(cheaper drug today and better drug tomorrow)’ 이다. 이 정책의 근간이 된 것이 해치-왁스만 법(Hatch-Waxman Act)이다. 이 법은 한미 FTA협상과정에서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마치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법 같지만, 실은 각각의 의원이 서로 상반된 입장에서 발의한 것과 이후 일어난 특허침해사건의 판결을 조화한 법안이다.

1980년 오린 해치(Orrin Hatch) 상원의원이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는데 있어 임상시험과 허가기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한정된 특허기간을 잠식하므로, 임상과 허가기간만큼 특허의 존속기간을 연장해 주자는 취지로 특허기간연장법(Patent Term Restoration Act)을 발의했다.

1983년 헨리 왁스만(Henry Waxman) 하원의원은 제너릭 의약품의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특허가 끝난 의약품은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제너릭이 시장에 출현하게 함으로써 시장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겠다는 취지로 의약품가격경쟁 법 (Drug Price Competition Act)을 발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84년 4월 4일 일명 해치-왁스만법, 즉 “Drug Price Competition and Patent Term Restoration Act (Including experimental use exemption)"이란 긴 이름의 법안이 제정됐다.

오늘보다 나은 신약이 계속 개발되도록 특허제도가 존속되며, 특허보호 하에 개발된 의약품은 독점적으로 시장을 늘려 가다가, 특허가 만료되면 경쟁사에서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bio-equivalence test) 거쳐 허가 받은 제너릭 약품이 출시되면서, 대조약물과 똑같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가진 약물이 국민에게 더욱 값싸게 공급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료비용을 절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약을 저가화하는 간단한 방법은 제너릭의 개발을 촉진하고 대체조제를 허용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미국기업들이 제너릭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고 실제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또한 우리보다 후진국이라 치부하던 인도의 Ranbaxy나 Cipla가 미국 사람들이 만든 그 법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배울 점만 따서 빨리 숙지했다. 지금은 축적된 기술력과 미국 내 개발자-허가당국-의사로 이뤄진 진짜 인디언 인맥(Indian network)을 이용, 제너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영국의 제너릭 성장률은 대조약이 8%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38%에 달하고 있다. 



제약업계가 당면 숙제

우리나라 제약기업이 개발에 노력하는 원동력은 신제품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런칭됨으로서 얻을 이익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원리는 한국의 제약기업이나 미국의 제약기업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국 기업이 흘린 땀과 피가 한국에서 소홀히 여겨지지 않고, 한국 사람이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과 피도 역시 미국에서 똑같이 존중받으면서, 어느 기술이건 그것이 자국민에게 이익이 된다면 차별 없이 교류하자는 것이 자유무역(free trade)의 근본정신이다.

또 의약품은 개발자의 이익만을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보건에 기여할 수 있고, 공공재(公共材)적인 성격마저 있는 새로운 약물이 부단하게 개발되는 모티브가 되도록 ‘특허제도’라는 것이 양국에서 똑같이 유지돼야 한다. 이와 같이 정당하고 건전한 개념에서 약물연구-개발-판매-회수의 선순환구조를 이뤄내야 하는 것이 지금 제약인이 당면한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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