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아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리는 난초,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국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대나무를 일컫는 매·난·국·죽(주).

강인함, 지조, 절개, 청렴함 등 각 식물의 특성을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 즉 군자의 인품과 선비정신에 비유한 사군자(四君子)는 전통공예, 그림, 문학,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모티브로 삼을 만큼 대중적인 전통문양이다.

작년 가을 서점의 자기개발서적 코너에 재밌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바로 사람의 기질을 사군자를 이용해 외향매화, 내향매화 등 8가지로 분류하여 알아보는 한국형 심리검사에 대한 책이다. 예를 들어 검사를 통해 이타적이고 배려심이 많은 가을의 국화의 기질을 가진 사람은 논리적이고 도전적인 겨울의 대나무의 기질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매화 기질의 사람은 차갑고 매서운 추위와 역경을 극복하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고난과 역경을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이며, 봄의 꽃, 새벽의 꽃이라 불리는 매화처럼 아침형 인간, 부지런함, 성실함을 상징한다.

만물의 성장이 절정에 이르고 각종 과일과 채소가 풍요로운 여름 식물인 난초 기질의 사람은 충만한 자신감과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유쾌한 기질을 지녔다고 한다. 어떤 심리검사보다 쉽고 단순하지만 친숙한 사군자를 이용해서 그런지 이해하기도 쉽고 의외로 잘 맞는다는 평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꽃은 매화였다. 특히 퇴계 이황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매화 화분에 물주는 일을 챙겼다고 할 만큼 매화 사랑이 각별했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시들해지고 떨어지는 꽃들과 달리 매화는 추위에 부러지고 혹사당하여 울퉁불퉁한 가지에서 피면서도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고 고결하고 은은한 향기를 퍼트린다.

또한 어디 하나 꺽어진 곳이나 흠 하나 없이 뿌리부터 잎까지 쭉 뻗은 모양새로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과 청초함을 지닌 난초는 충절을 중시하는 선비의 표상이자 고결함과 맑음의 상징이다.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과 함께 함은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 같이 좋은 향기가 난다는 지란지교(芝蘭之交)와 같은 사람관계를 이야기하는 사자성어를 통해서도 난초의 맑고 선함을 알 수 있다.

난 재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난초가 애호가들에게 귀한 대접 받으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난초의 고아하고 청아한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는 뜻의 오상고절(傲霜孤節)은 국화를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고려시대 문인인 이규보의 ‘영국(詠菊)’이라는 시에도 국화의 지조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서리를 견디는 자태 외려 봄꽃보다 나은데/삼추를 지나고도 떨기에서 떠날 줄 모르네/꽃 중에서 오직 너만이 굳은 절개 지키니/함부로 꺾어서 술자리에 보내지 마오.

송죽지절(松竹之節, 소나무같이 꿋꿋하고 대나무같이 곧은 절개)이라 하여 소나무와 함께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며 겨울을 상징하는 대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곧게 자라고 잎은 푸르다.

신념이 확고하고 올곧은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대쪽같다’,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진군하는 ‘파죽지세(破竹之勢)’, 비 온 뒤 대나무가 자라듯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일어남을 비유적으로 이로는 ‘우후죽순(雨後竹筍)’ 모두 대나무의 성질을 비유한 말들이다. 중국에는 아주 특이한 대나무가 있다고 한다.

씨앗을 뿌린 후 다섯 해가 지나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며칠 만에 무려 12m가 훌쩍 자라는 대나무인데, 이는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5년이라는 긴 시간을 인고하며 어둠 속에서 준비해왔던 대나무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묵묵히 견디며 차근차근 잘 준비해야 된다는 의미를 전한다.

4가지 식물의 공통점은 강인함, 고결함, 지조, 절개이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군자이지만 정치사회적으로 문제들이 불거질 때 유독 많이 들리는 이유는 권력, 재물 등 어떠한 세파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부재(不在가 안타깝고 반대로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열렬히 염원하기 때문일 것이며, 사군자는 단순히 식물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덕목과 지혜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소중하고도 중요한 존재이다. 매난국죽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요즘이다.

 

자료제공 아리지안 (02-543-1248, www.arij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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