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나 염색체의 변이가 원인이 되어 사람에게 발병하는 병들이 6000 개 이상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개의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거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력의 인자 중의 하나가 된다.

암이나 당뇨병, 심혈관계 질환과 염증성 질환들이 이에 해당한다. 드물게 단 한 개의 유전자의 이상으로 난치성의 질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가 유전성 희귀질환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서, 아기가 정상 발달하여 태어났다는 임상 사례가 2022 년 11 월 발표되었다.

사진. 성은아 박사
사진. 성은아 박사

폼페병이라는 질환을 앓게 될 아기가 출생 전에 미리 치료를 받고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아일라’라는 이름의 아기는 현재 1 년 4 개월이 되도록 정상 발육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모두 폼페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증상이 없을 경우에, 그들은 정상인 아기, 유전자 이상이 있으나 정상으로 보이는 아기, 유전자 이상으로 질환을 앓는 아기를 ‘멘델’의 법칙에 따른 확률로 낳게 된다.

아일라의 부모도 이에 해당해서, 그들에게 정상인 아이가 둘이 있고, 둘이 유산되었으며, 또 다른 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 직후 폼페병으로 사망했다. 아일라를 임신한 중에 태아의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 부모는 치료를 결정했다. 치료 과정은 의외로 간단해서, 태아의 탯줄에 있는 혈관을 통해 약물을 투여한다. 아기는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태어났으며, 이후 다른 평범한 아기들과 비슷하게 성장하고 있다.

폼페병은 4만 명 중의 1명 꼴로 발병한다. 한국폼페병환우회에 따르면 한국에 43명의 환자가 등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약 1천 명의 환자가 있다고 추정한다. 폼페병은 근육이 손상되는 병으로서, 환자는 숨이 차고, 근무력증, 심비대증, 운동 장애를 경험하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기도 한다.

GAA라는 효소가 작용하지 못하여 글리코겐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세포를 손상시켜서 생기는 병이다. 효소가 불완전하게나마 작용하면 발병이 늦고 증상이 비교적 완만하지만 환자의 삶의 질은 떨어진다. GAA의 기능이 크게 손상되면 신생아일 때에 발병하고, 심근이나 골격근의 발달 장애로 인한 조기 사망의 원인이 된다.

폼페병의 치료 방법은 없다.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회복하도록 ‘효소대체요법’을 사용한다. 즉, 환자에게 GAA 효소 기능을 대체하는 유전자 재조합 효소를 투여한다. 마이오자임과 루미자임 등 유전자 재조합 효소 단백질이 허가를 받아 사용되고 있다.

환자에게 투여한 유전자 재조합 GAA는 세포 안으로 흡수되어, 세포 내에서 부족한 효소 기능을 대신한다. 효소 단백질은 분해되어 체내에서 제거되므로, 환자는 약물을 평생 주기적으로 투여 받아야 한다.

아일라는 태아일 때에 루미자임(사노피)을 투여 받았으며, 출생 후에도 루미자임을 투여 받고 있다. 평생 약물 투여가 필요하다. 대체효소 치료제는 비교적 크기가 큰 단백질이기 때문에 아기의 체내에서 면역 반응이 유도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몇 가지 문제들이 파생될 수 있다.

면역 반응이 효소를 제거하기 때문에 투여한 약물이 제대로 약효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으며, 아기가 면역 반응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기는 대체효소와 함께 여러 종류의 면역 억제제를 함께 투여 받고 있다.

또 다른 유전성 질환 중에서, 점액다당질증은 십만 명 중의 하나 꼴로 발생한다. MPS라는 점액다당류를 분해하는 효소의 변이 때문에 독성 물질이 세포 내에 축적되어 생기는 병이다. MPS 변이 때문에 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는 신체와 지능의 발달 장애를 보이고, 신경계 증상, 행동 장애, 신체의 기능 장애 등을 나타낸다.

세포 내에 여러 종류의 MPS가 있어서, 어느 유전자에 변이가 있느냐에 따라 헌터 증후군, 헐러 증후군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치료 방법은 없고, 효소대체요법을 사용하여 환자의 증상 완화와 삶의 질을 도모한다. 변이가 있는 MPS의 종류에 따라 그 기능을 대체하는 알두라자임, 나글라자임, 엘라프라제, 멥세비, 울트라제닉스 등이 허가를 받아 사용되고 있다.

아일라의 치료를 주관한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에서 헌터 증후군을 가진 태아에게 알두라자임 (사노피)을 투여하여 치료를 했으며, 이에 대한 보고서를 학회에 제출했다고 알려져 있다.

선천성 기형을 태아일 때에 치료한 사례가 있다. 외배엽이형성증이라는 희귀질환은 십만 명 중의 1 명 꼴로 발생하며, 모발과 치아 발달에 이상이 생긴다. 특히 땀선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땀을 흘리지 못하여 체온 관리가 어렵고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아직까지 치료제는 없다.

이 기형은 태아의 신체 발달에 관여하는 EDA라는 유전자에 이상이 생겨서 발병한다. 태아의 발달에 필요한 EDA의 기능을 대체하도록 만든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을 투여함으로써, 발달 장애를 교정한 사례가 2016년에 독일에서 있었다. 치료를 받은 3명의 아기 모두에게서 땀선이 정상 발달하고 치아 발달도 개선되었다. ‘에디머 제약회사’가 EDA의 유전자 재조합 단백질을 약물로 개발 중이다.

특정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도 유전자의 산물이 기능을 부분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발병이 늦거나 증상이 완만하지만, 변이가 유전자의 기능을 완전히 무력하게 하는 경우에는 증상이 심각하다. 유전 질환은 가급적 일찍 치료를 해야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변이에 따른 유전자 기능 손상이 심각한 경우, 아기가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 태아에 대한 치료를 수행함으로써 아기가 정상 발달하도록 도우며,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삶의 질을 돕는다. 그래도 위에서 언급한 폼페병이나 점액다당질증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약물을 평생 투여 받아야 한다.

유전성 희귀질환에 대한 또 다른 선택지는 유전자 치료이다. 한 개의 유전자의 손상에서 기인하는 질환일 경우, 그 유전자의 기능을 보충해 주면 된다. ‘리소젠’이라는 회사가 점액다당질증 환자의 뇌신경계 증상 개선을 위해서 MPS의 기능을 보완하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아미쿠스’라는 회사는 지질 대사와 관련된 효소의 변이에 의해 유발되는 뇌신경계 희귀질환인 바텐병에 사용할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치료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시험에서 난조를 보이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는 환자의 체내에서 면역 시스템에 의해 이물질로 인지되어 제거됨으로써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수 있다. 뇌신경계에 작용하는 유전자 치료제는 특히 ‘뇌혈관장벽’이라는 신체의 구조적 특이성을 뚫고 뇌에 도달하기 어렵다.

유전자 치료제가 목표 세포에 도달해도, 세포 내에서 안착하여 작용하기 어렵다. 유전자 치료제가 목표로 하지 않는 다른 장기에서 부작용을 나타낼 우려도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에 사용하는 졸겐스마와 같이 개발에 성공한 유전자 치료제도 있으나, 이들 약물은 발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태아일 때에 유전자 치료를 하는 가능성이 동물 실험 단계에서 검토되고 있다. 면역 시스템이 성숙하지 못하고 한참 증식과 성장이 왕성한 태아일 때에 치료를 하면, 유전자 치료가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태아의 치료는 긍정적인 효과만큼 부정적인 영향도 심각하며 그 결과는 아이와 부모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기술적인 불확실성과 함께 윤리적인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한편, 아일라의 치료를 주관한 샌프란시스코 의료팀은 폼페병, 헌터병 및 유사한 종류의 유전성 희귀질환을 가진 아이들의 부모 16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부모들 중 삼분의 2가 태아일 때에 수행하는 효소대체치료에 찬성하며, 비슷한 비율의 부모가 태아의 유전자 치료에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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