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모습

# 끊임없이 확산된 마약 키워드…지상파 방송 앞서 보도  

[팜뉴스=최선재 기자] 10월 29일, 참사 당일 주요 언론은 '이태원 참사' 뉴스를 전하면서 '마약'이란 키워드를 꺼내들었다.

특히 MBC 앵커는 뉴스특보를 통해 자신을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단순한 압사 사고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돌고 있냐"고 물었다. 그는 "제가 듣기로 이태원에서 약이 돌았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약물이라든가 생화학적인 뭔가가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나오시는 분들이 외상이 크게 보이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이태원 참사가 마약 중독 때문에 벌어졌다고 암시를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태원 참사 원인, 핼러윈 산타가 나눠준 마약 사탕 때문" 또는 "이태원 마약사탕 주의보, 핼러윈 클럽 압사 사고 피해"라는 제목의 글이 다수 등장한 상황이다.

어떤 변호사는 "이태원 압사 사고, 마약 관련성 및 과실 치사 가능성은?"이란 제목의 법률 상담 홍보 게시글을 올리고 '#마약'이란 해시태그를 넣었다.

심지어 법무부 민원 게시판엔 "경사진 쪽에서 4-5명의 남자들이 웃으면서 밀었다는데 분명 마약을 한 사람일 것"이라며 "사망자들 자신도 모르게 마약이 주입됐을 수 있기 때문에 전부 마약 검사를 해야한다"주장도 올라왔다. 

# 팜뉴스 취재진, 마약 진원지 추적 위해 '참사 현장' 찾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를 근거 없는 루머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마약'이 연결된 풍문은 끊임없이 전파 중이다. "현재까지 사고에 대한 마약 관련 보고가 없다"는 경찰 수뇌부의 입장이 나왔다. 서울경찰청도 지난 10월 30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마약 관련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경찰이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면 사그러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대다수 언론이 같은 내용의 보도를 반복 중이다. 

특히 기자들이 브리핑 당시 이번 사고와 마약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 탓이다. 경찰을 포함한 수사기관의 마약 관련 브리핑 내용이 연일 화제를 일으키면서 포털 랭킹 뉴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팜뉴스 취재진이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기로 결심한 이유다. 도대체 마약 음모론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단서라도 잡는다면 지상파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이 연일 이태원 참사와 마약을 연결하는 보도하고, 일부 국민들이 끊임없이 마약 음모론을 제기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아무런 근거가 없는데도 마약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은 고인을 모욕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확인도 필요했다.  

# 국화꽃 '추모 메시지', '끝까지' 자리 지킨 청년

10월 31일 오후 2시경, 기자는 6호선 지하철을 내려 이태원역 1번 출구 쪽으로 향했다. 지상으로 올라선 순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1번 출구 옆에는 국화꽃 수백 송이와 술잔, 음료수, 커피 등과 함께 놓여 있었다. 꽃들 사이로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도 눈에 들어왔다.
 

"같이 있어도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이상 아프지 마세요 -부산청년-"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영혼들이여 부디 편히 잠드소서,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 
 

"아까운 아들 딸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태원 주민으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좋은 곳으로 가거라 얘들아 -이태원 엄마가-"

한 청년은 국화 꽃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눈이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다른 이들이 잠시 추모를 마치고 떠날 동안 그는 두 손을 포갠 채 계속 자리를 지켰다. 흐트러진 모습 하나 없이 꽃을 바라봤다.   

# '비좁은 골목길' 모습 드러낸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추모 공간 옆 사건 현장이 있었지만 폴리스 라인 때문에 시민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경찰은 해밀턴 호텔 옆 사건 현장과 연결된 4차로 전체를 통제하고 있었다.

수십명의 경찰들은 현장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폴리스 라인 밖에서는 사건 현장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자는 취재진들이 운집한 폴리스 라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이 솟은 방송사 카메라 사이로 어렵게 사건 현장을 목격한 순간,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가슴에 '쿵'하고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15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생긴 이유를 단 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파른 오르막에 좁아도, 너무 좁은 골목길이었다. 두 줄로 널린 쓰레기들의 크기가 작았는데도 사건 현장 골목길에 양옆에 가득 들어찰 정도였다. TV 또는 유튜브 영상으로 접한 모습과 차이가 컸다. 

한꺼번에 수백, 수천명의 인파가 좁은 골목길 쪽으로 밀려들면서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단순히 사망자들의 시신에 외상이 없다고 해서 참사가 마약 때문이라고 말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참사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가 '좁은 골목'과 '압사'였다. 현장을 실제로 찾아본 사람 입에서 마약이란 단어가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마약에 취한 이들이 군중을 뒤에서 밀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더구나 해밀턴 호텔 쪽 벽면에는 탈출할 수 있는 상점이나 문도 없었다.

참사 당일 경찰이 인원을 통제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와 4번 출구 사이에 대로를 시민들에게 열었다면 수많은 생명들이 비좁은 오르막길에서 몸이 뒤엉켜 숨을 쉴 수 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 너무나 확연한 FACT…결국 기자는 마약 취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결국 기자는 인근 상점 또는 목격자들을 대상으로 마약 관련 취재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다.

이태원 참사 원인이 명확한데 실체 없는 이야기로 고인을 욕보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마약과 이번 참사를 연결짓는 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성토했다. 

사고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A 씨(27) "저와 비슷한 또래 친구들이 참변을 당해서 참담하다"며 "추모를 하기 위해 나왔는데 비좁은 골목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10만명이 모인다고 예고가 됐는데 꼭 경찰이 아니더라도 용산구와 서울시 민간 공무원만 투입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며 "현장을 직접 보면 누가 봐도 미흡한 대응으로 일어난 사건인데 마약 이야기가 웬 말인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사건 본질을 흐려선 안 된다"라고 답했다.

다른 직장인 B 씨도 "최근에 마약 사건 이슈가 많은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이태원에 모인 10만명 중에 마약 중독자가 있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사건의 본질은 그게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정부가 소방, 경찰은 물론 일선 공무원까지 적극적으로 배치를 하지 않았다. 이것이 참사의 직접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 공론장 향해 '마약음모론' 꺼낸 악마들…'섹스 온 더 비치'를 외친 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마약은 자극적이고 강렬하다. 특히 참사 상황에서 '악마 만들기'에 최적이다. 누군가 마약을 해서 이번 참상이 벌어졌다는 식의 음모론이 퍼지면 '참사를 주도한 악마가 있다'는 프레임이 잡힌다.

그 사이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기관의 책임이 희미해진다. 악마에 시선이 쏠리면 참사를 촉발한 시스템의 오류가 교묘히 가려진다는 얘기다.

음모론이 퍼질수록 정부의 무능한 대응과 경찰력의 부족, 행정안전부와 용산구청의 컨트롤 실패 등의 오류가 사라질 수 있다. 경찰을 투입해달라는112 신고를 무시한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라도 당장 이태원 참사를 언급할 때 '마약'이란 단어를 반드시 제외해야 하는 이유다. 아무런 근거 없이 마약을 이번 사건과 연결짓는 행위는 사건의 본질을 덮고 고인을 능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언론, 포털사이트 등에서 이태원 참사와 마약을 함께 언급하는 것은 그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광기와 다를 것이 없다.

과연 이들이 구급차 옆에서 '섹스 온 더 비치'를 부르는 악마들과 무엇이 다를까. 기자가 마약 음모론을 펼치는 자들에게 간곡히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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