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사진. 전북대학교 약학대학 정재훈 교수

"그 때 그 식혜가!어머니가 특별히 식혜를 좋아하신다고 여겼었는데........... 내가 가면, 어머니는 먼저 식혜를 내어 놓으셨다.가끔, 식혜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경우도 보았던 터라 다른 이유를 생각지 않았었다. "

"떨어진 혈당을 가장 빨리 올리는 방법이 식혜였나 보다. 그런데, 무심한 자식은 어머니가 식혜를 너무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

탐라인들에게 벌초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고향을 못 찾더라도 탐라의 아들이면 벌초에는 참여해야 한다. 탐라인은 대처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더라도 벌초에 참여하지 못하면 일가에선 사람구실 못하는 인사(人士)로 간주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사는 탐라인들도 추석이 가까워지면 인사(人事)가 ‘벌초 다녀오셨습니까?’ ‘언제 벌초하러 가십니까?’이다. 코로나를 핑계로 2년이나 벌초를 걸렀기에,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벌초하러 가야 했다. 우리 일가에선 매년 9월 첫 일요일을 벌초하는 날로 정했다. 나는 6월부터 9월 첫 토요일 오후 제주행 아시아나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고, 겸사겸사 고향친구들을 볼 약속도 해 두었다. 

9월 첫 주말이 가까워지면서 일기예보로 자꾸 눈이 갔다. 올해는 꼭 가야하는데.............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오끼나와 남쪽에서 발생한 강력한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향하여 올라온다는 것이다. 고향을 지키는 착한 아우도 바쁜 형이 걱정이 되었는지 “벌초는 아우와 조카들이 알아서 할 테니 모험하지 마시라. 태풍의 예상 속도를 볼 때 제주도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없어도 돌아가는 비행기가 결항될 수 있으니 오지마라. 둘째 형도 월요일 귀경이 염려되어 취소했다.”는 염려였다. 그래도 나는 장남인자라 “발이 묶여도 괜찮고, 2,3일 고향에 더 있어도 큰 문제될 것 없다.”고 동생을 안심시키고 광주 공항을 거쳐 제주로 갔다. 다행스럽게도 태풍은 아직 제주 남쪽 멀리서 북향 중이었고,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와 나와 비슷한 사연을 거쳐 고향을 찾은 친구 셋이서 탐라인으로 고집하고 살아가는 서로의 모습을 격려하며 옛 추억에 젖어 들었다. 친구의 전화기가 자주 울려대는 바람에 아쉽지만 내일의 벌초를 위해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

일요일 새벽, 어설픈 복장에 공복인 상태였지만 오랜만에 친지들을 뵐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조상들의 산소를 향했다. 이미 부지런한 일가 형님들이 조카들을 지휘하며 벌초를 하고 계셨다. 나도 부지런을 떨었다. 애초에 육체노동에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금방 지쳤고, 속이 비어서 그런지 어지럽기까지 했다. 물을 마시고 눈치껏 쉬엄쉬엄하는 데도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공복인 채로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저혈당 상태에 이른 것 같았다. 부랴부랴 단 것을 찾는데, 마침 동생이 준비한 식혜가 눈에 띄었다. 한 캔을 마시고, 조금 나아지는 듯해서 연거푸 두 캔을 더 마셨다. 잠간사이에 어지러움도 가시고 힘이 나는 듯했다. 새삼 식혜의 힘을 실감하면서 다시 부지런을 떨며 어머니 묘를 다듬고 정리하는데, 어머니의 냉장고에 가득 놓여있던 식혜 캔들이 어른거렸다. 

그 때 그 식혜가!

어머니가 특별히 식혜를 좋아하신다고 여겼었는데........... 

내가 가면, 어머니는 먼저 식혜를 내어 놓으셨다.

가끔, 식혜에 밥을 말아 드시는 경우도 보았던 터라 다른 이유를 생각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한동안 다행스럽게도 막내 여동생이 어머니를 보살폈지만, 동생네가 육지로 전근을 떠난 이후 어머니는 고향 집에서 홀로 지내셨다. 근면이 몸에 베인 어머님은 일을 쉬는 법이 없었다. 적지만 매달 생활비를 보내드리고 이제 그만 쉬시기를 간청했지만, 어머닌 바닷가에서 감태 채집을 계속하셨다. “그래, 일을 하시는 것이 건강에 좋을 거야”라며 어머니의 노동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었다. 다만, 찾아뵐 때마다 소일거리로 생각하고 너무 힘들여 하지 마시라고 당부했었다. 그런데, 나의 어머닌 무엇이든 대충하는 법이 없었고, 조금씩 쌓여가는 통장 잔고가 열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나는 이점을 간과했었다.

그렇게 노역을 하다 혈당이 떨어져서 힘드시면 빠르게 당을 보충할 수 있는 식혜를 드셨나 보다. 아니 힘들게 일을 하시고 집에 들어와도 텅 빈 집엔 어머니의 피로를 풀어줄 이가 없었고, 허기진 배와 입맛을 채워줄 음식도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당신 본인을 위해 조리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번거롭다 여겼을 것이다. 막내가 종종 밑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두어도 챙겨 드시는 것을 귀찮아 하셨다. 떨어진 혈당을 가장 빨리 올리는 방법이 식혜였나 보다. 그런데, 무심한 자식은 어머니가 식혜를 너무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들려선 “어머니! 건강에 안 좋으니,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라”고 핀잔까지 했었다. 식혜로 채울 수 없는 영양의 결핍과 과도한 노동이 어머니를 빠르게 치매로 내몰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고향 집을 떠나 우리 형제들의 집을 전전했다.  

치매로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 왔을 때에도 가장 먼저 식혜를 사다가 냉장고에 두었었다. 거기에 건강을 염려한답시고 나는 한마디를 더했다. “어머니! 너무 하영 드시지 맙서!” 아들의 쓸데없는 잔소리에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 어머니는 아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들이 뭐라 할까봐 어머닌 식혜 하나도 편히 드시지 못하였다. 식혜를 꺼내 드시고 드신 것을 숨길 요량으로 빈 병이나 캔을 5층 창문 밖으로 던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고, 베란다와 창문마저 잠궈야 했다. 어머닌 더 이상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눈치 빠른 척 하면서, 정작 가장 소중한 어머니의 상황에 대해선 눈치 채지 못했다. 식혜로 과로의 어지러움과 피로를 달래어야만 했던 어머니의 지친 모습이 어머니의 무덤 위로 뿌옇게 피어올랐다. 그 땐 왜 그렇게 어리석었던 걸까? 가슴이 미어지지만 벌초덕분에 이렇게라도 어머니께 잘못을 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리석은 아들은 가슴에 “식혜”를 깊이 새긴 채로 광주 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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